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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장미, 피보다 붉은 017
2부 노근리, 2008 189 3부 유민遺民의 순정 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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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갑남을녀의 힘과 결정으로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대가는 이를 결정한 국가나 정치 권력이 아니라, 이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갑남을녀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침략국이건 피침국이건, 승전을 했건 패전을 했건 피해가 없을 수 없을 터인데, 아무튼 그 피해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한국전쟁을 치른 국가와 정치 권력은 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을 교전 상대국이었던 북한과 민간인 개인(학살된 양민과 부역자 처벌을 생각해보라)에게 돌렸다. 훈장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받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이런 무도無道한 상황에서 남북 어둠의 세력들이 또 다른 전쟁을 주절대고 있다. 끔찍하지 않은가.
---p.7 「작가의 말」중에서 그러고 나서 10년이 흘렀다. 1만 5,000피트 아래 구름 틈으로 반토막 난 반도가, 사우스 코리아의 밑자락이 그의 시야에 잡혔다. 466고지가 저 아래 어디쯤 있을 것이다. 하지스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앞 좌석 등받이에 붙은 모니터가, 14시간을 날아온 비행기가 58년 전 뱃길로 건넜던 동해를 우회하여 인천 국제 공항으로 북진 중임을 알려줬다. ---p.21 「장미, 피보다 붉은」중에서 처음에는 제 발로, 나중에는 미군의 강압적 의도에 따라 쌍굴다리 안으로 몰려 들어온 500여 명의 피난민은 덫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미군은 서둘러 쌍굴다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앞뒤로 100여 미터 지점에 각각 참호를 파고 기관총을 설치했다. 그러고는 피난민들이 뒤엉켜 들어앉은 쌍굴 안에서 인기척이 날 때마다 총격을 가했다. 한두 발 쏘는 위협 사격이 아니라 수백 발의 총격을 20여 분 가까이 쏟아붓고는 했다. 그러고도 탄창을 새로 교체해 다시 수백 발의 총격을 더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고함을 내지르며 사격을 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사격만 가했다 ---p.284 「노근리, 2008」중에서 바커가 개머리판으로 캐롤의 가슴팍을 내질렀다. 캐롤은 악, 하고 비명을 질렀으나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꼿꼿한 자세를 지켜냈다. “흰옷만 입고 있다고 해서 다 민간인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저 민간인들이 우리 전우들을 죽였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해줬는가 말이닷!” 바커가 안타깝다는 듯이 소리쳤다. “어, 어떤 민간인이요? 비무장한 저, 저들 민간인이 대체 무엇으로 우리 저, 전우들을 죽였답니까? 도, 도끼로? 토, 톱으로? 나, 낫으로?” 캐롤이 소리치며 바커에게 대들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p.302 「노근리, 2008」중에서 봉자는 총탄의 물증은 진상 규명의 시작에 불과할 뿐 끝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조사반들끼리 공감하고 공인했을 원형 표식들을 바라보며 속이 메슥거렸다. 원형 표식이 된 수백 발의 총탄이 노근리 학살을 규명할 일부 증거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전체 증거는 될 수 없었다. 철둑과 쌍굴다리에서 300여 명의 생목숨이 죽어 나갈 때, 수천, 수만 발의 총탄을 퍼부었다. 전투기가 쏟아부은 포탄과 기총 소사, 박격포탄과 캐리버 50 기관총의 탄흔들과 그 주검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왜 여기 보이는 것만이 노근리 학살의 전부이고, 끝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가. ---p.394 「노근리, 2008」중에서 그리고 당신이 언론에 나와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인터뷰를 봤어요. 진실과 정의에 대한 당신의 용기에 감사와 존경을 표해요. 그때 난 당신이 나를 살려준 사람이 확실하다는 것과 내가 알고 사랑한 그 진실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었어요. 그 인터뷰를 보면서 피난민을 향해 단 한 발도 쏘지 않았을 당신(나는 그렇게 믿어요)이 자랑스러웠고, 당신의 무죄는 묻어둔 채 학살 만행을 증언하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너무 아파 많이도 울었답니다. 내 울음이 당신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래요. 그리고 당신이 한강 다리 위에서 왜 차를 세웠는지도 알고 있답니다. ---p.469 「유민遺民의 순정」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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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듯 촘촘한 캐릭터,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와 몰입도,
한때 역사의 베일 속에 가렸던 사건을 문학적으로 복원하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인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북한군의 공세가 매섭던 한국전쟁 초기, 경부선 철로를 따라 남하하던 피난민들에게 미군의 항공기 폭격이 가해졌다. 일명 쌍굴다리라고 불리는 철도 교각 아래 숨은 피난민들에게 미국 7기병연대 병력이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기관총 사격을 가했고, 약 400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피해자인 정은용 선생은 1960년 미국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를 주도했지만, 기각되었다. 그는 1994년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소설을 출간했고, 아울러 ‘노근리 미군 민간인 학살 대책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대책위 기획위원이자 대변인이었던 정구도 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정은용 선생의 아들)는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노근리 학살의 증거를 찾아내는 한편, 국내외 언론사를 상대로 진상 알리기에 매진했다. 마침내 1999년 AP통신에서 사건에 대한 심층 기사를 내놓았고, 이것을 기점으로 국내외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함으로써 노근리 사건은 마침내 일반인들의 시야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1999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유감 표명, 국내에서는 2004년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현재 학살이 일어났던 쌍굴다리는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된 상태로, 당시의 탄흔이 일부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평화공원이 들어섰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저자 고광률은 정은용 선생의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읽고 노근리 사건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취재 도중 우연히 만난 정구도 이사장에게서 사건에 관련된 여러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사건 피해자 유족들과의 인연으로 시작되고 완성된, 각별한 작품이다. 소설에서는 7기병연대 소속 미군 병사인 맥 라마르 하지스, 노근리 사건 생존자인 하봉자, 그의 아들인 하남득, 그리고 또 다른 생존자인 도완구 네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넷 모두 소설적인 인물이지만, 그들이 밟는 삶의 궤적은 앞서 이야기한 역사적 진실의 레일 위에 있다. 소설은 2008년 한국 정부로부터 충무무공훈장을 수여 받게 된 한국전쟁 참전군인 하지스가 비행기 위에서 58년 만에 다시 한국의 산천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노근리 사건 관련자로, 해당 사건이 진실임을 인정하는 양심선언으로 자국 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편으로 한국전 참전 당시 약탈한 한국 문화재 밀매로 한몫 크게 잡 아 대학교수까지 하는 등 인생 역전을 한 과거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하지스와의 과거가 있는 하봉자는 현대사의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자신을 꿋꿋이 지켜 온 당찬 여성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하나뿐인 자식 남득에게 다분히 무정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하지스와 봉자의 아들인 남득은 과거 한국에 만연했던 혼혈 차별의 피해자로 자랐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예인의 길을 그대로 걸으며, 경제적으로 난처한 중년을 보내는 중이다. 도완구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 타이틀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과거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하던 위인이었다. 그가 독립군과 친형까지 팔아넘겨 획득한 재화를 가지고 1950년, 하봉자가 살고 있는 영동의 고향 마을로 찾아오면서 네 사람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설은 자신의 핵심 사건인 노근리 학살을 묘사하며, 그 배경과 전개 과정을 서사적으로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세계대전에서 승리 후 일본에서 나태한 생활을 하던 미군은 북한군을 얕보면서 동해를 건너 한반도로 들어오지만,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전쟁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큰 피해를 입고 패주하게 된다. 미군은 후퇴 과정에서 피난민을 소개하기 시작하는데, 북한군이 피난민을 이용한 포위·기만전술을 쓴다는 사실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자신이 만들어낸 피난민에게 공포심을 가진다. 이 결과 방어선을 넘는 피난민에 대한 사살 명령이 떨어지고, 노근리 쌍굴다리 밑에서 지옥도가 펼쳐진다. 미군을 믿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하봉자는 이 비극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가 되어, 노근리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한다. 이처럼 소설은 가해자인 미국 입장에서 역시 노근리 사건을 치열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그들의 범죄적인 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이런 소설의 태도는 인물에 대한, 그리고 사건에 대한 탁월한 입체성을 창출한다. 역사 사건을 재창작하는 윤리에 비춰 볼 때나, 서사기법적인 측면에 비추어 볼 때나 그 역량이 요모조모 뛰어남을 독자는 체감하게 된다. 역사소설이자 추리소설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노근리 사건에 대한 르포르타주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연애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김미옥 서평가의 말대로, 역사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빠지지 않은 미덕을 보유한 드문 작품이다. 612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이나 전혀 지루하거나 늘어지지 않게 하는, 스토리텔링의 역량도 탁월하다. 한국전쟁 당시는 물론이고, 전후 미군 기지촌을 배경으로 한 사회상의 추억을 향유하고 싶거나 한·미·일의 정치사회적 역학 관계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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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률은 한국 문단에서 입담과 필담 좋기로 유명한 작가이다.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에 대한 소설을 쓴다고 할 때 사건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고광률이 쓴다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 그대로 전혀 상상 밖의 이야기를 상상 밖의 규모로 펼쳐냈다. 과거와 현재의 숨가쁜 연결고리가 이것이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억울할 정도도 재미있고 의미가 깊다. -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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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소설은 다르다. 흔히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소설은 허구의 기록이라고 한다. 역사는 사실 자체를 기록하고, 소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할지라도 소설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를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도 어쩌면 역사 기록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 역사 기록자도 있었던 사실 모두를 그대로 적는 게 아니라 취사선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든 소설이든 진실을 추구하면 같을 수도 있다! - 박상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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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반전 걸작 중 하나인 [한국에서의 학살]은 전쟁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묘하게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 그림의 국내 전시가 수차례 무산되었던 것처럼, 노근리 양민학살사건도 오랫동안 역사의 베일에 가리어져 있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그것을 문학적으로 복원해낸 드문 사례라는 것이다. 물론 소설로서 갖추어야 할 살아있는 듯 촘촘한 캐릭터,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와 몰입도는 말할 것도 없겠다. 모처럼 귀한 소설을 만났다. - 김미옥 (서평가, 문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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