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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당신도 삼십춘기인가요
봄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 - 당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취향과 사치 - 당신의 최대 사치는 무엇인가요? 쑥국을 남김없이 떠먹는 나는, 어른이 된 것 같다 - 당신은 못 먹는 음식이 있나요? 벚꽃의 꽃말은 - 당신은 봄이 오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나를 갉아먹는 습관을 멈추기 - 당신에게도 고치고 싶은 습관이 있나요? 예민함 탈곡기 - 살면서 당신의 고집을 깨 주는 사건이 있었나요? 평범해서 위대한 - 당신은 백반집에 가본 적이 있나요? 여름 젖은 다음 스며들기 - 당신의 어떤 여행을 좋아하나요? 오랜만에 본진에 간 이중언어 구사자의 안도 - 당신은 고향이 어디인가요? 자구리 해안에 가면 편지를 쓰자 -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손 편지를 썼나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맥모닝을 먹는다 - 당신만의 휴일 힐링법이 있나요? 성인 ADHD라도 괜찮아 - 당신은 어떤 성격의 사람인가요? 특출난 게 없어 슬픈 제너럴리스트를 위한 위로 - 당신은 어떤 일들을 하나요? 취미에도 소생밸이 필요해 -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가을 나의 박쥐병 퇴마기 - 당신은 청소를 좋아하나요? 라떼와 나때를 좋아하는 여자 - 당신은 라떼를 좋아하나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찾은, ‘살아야 할 이유’ -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당신만의 희망은 무엇인가요? 내가 따라가야 할 길은 - 당신은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방향을 찾나요? 주인공으로 돌아오기 - 당신은 저 사춘기 타입 중 어디쯤인 것 같나요? 사우나 카르텔 입성기 - 당신은 공중목욕탕에 가나요? 가을을 역으로 타는 사람의 이야기 - 당신은 찬 바람이 불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겨울 각자 덜 좋아하는 만두를 먹는 일 - 당신은 어떤 때 사랑한다고 느끼나요? 열 손가락 ± 한두 개 - 당신의 삶을 5년 주기로 나누어 그려 본다면? 고장 난 세차기 - 당신은 요즈음의 상황에 만족하나요? 불량 통조림의 다이어트기 - 당신은 단단한 삶을 위해 놓치고 싶지 않은 루틴이 있나요? 스님이 불러준 찬송가 - 당신은 길가에 핀 장미꽃에 감사하나요? 아무도 묻지는 않지만 -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NO 후회 KEEP 사랑 - 당신이 이번 생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마치며 | 오늘 밤만 삐딱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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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나를 이해해 줬던 사람은 이십 대 초반에 만났던 인생 두 번째 남자친구였다. 나와는 두 살 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으나, 이십 대 중반의 그를 나는 아주 ‘현명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때때로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래간 익숙해져 버린 내 삶의 숙제들을 그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주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가치들은 엄마가 말했던 가치와 정면 대치되는 것들이 많아 혼란스러웠다. 술이 인생에 어떠한 재미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착하기만 한 착한 사람이 얼마나 실은 불행한 사람인지. 그와 연애하는 동안 엄마의 가치와 그의 가치가 정반합을 이루어, 감히 내 인생관이라 일컬을 만한 작은 의미들이 내 안에 퐁퐁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인간은 나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타인은 어찌 되었든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타인을 이해하기 마련이니까. 종일 빈둥대는 주말이면, 엄마는 나를 ‘할 일 없이 인터넷만 하는 중’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은 너무 많은 할 일 앞에서 잠시간 숨을 고르는 중인데 말이다. 혹은 너무 큰 슬픔에 잠기어 오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일 수도 있는데. 무용히 시간이 흘러가는 주말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생체리듬을 가다듬는 일은 결국 나만이 내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봄 |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 중에서 “저녁은 쑥국이야.” “아 왜! 쑥국 진짜 싫다고!” “쑥국이 어때서?” “으,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아. 냄새도 싫고 느낌도 싫고! 그냥 다 싫어. 나 안 먹어!” “그럼 국은 네 것 안 뜰게. 다른 반찬이랑 밥 먹어.” “다른 반찬? 뭔데?” 행복했던 지난 주말 꽃 나들이의 감정은 월요일 아침 알람 소리와 함께 물거품같이 사라졌고. 마주한 시간 앞에는 현실만이 일렁였다. 아침부터 새 업무와 지난주에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렇지만 봄은 봄인지. 4월의 어느 날인 오늘, 회사 급식에 쑥국이 나왔다. 쑥국이라니. 절대로 스스로 요리할 일은 없다. 쑥은 어디서 사며 쑥국은 또 어떻게 끓인담. 제철 음식을 내어놓고자 하는 취지인가. 으, 옛날 생각이 났다. 이상한 향과 미끄덩거리는 젖은 풀의 식감. 식당 가까이에 가자 잊고 지냈던 그 냄새가 났다. 줄기째 숭덩숭덩 썰려 푹 삶아진 쑥도 숟가락으로 떠 입에 넣었다. 몇 번 씹을 새도 없이 미끈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매끈하고 부들부들한 식감은 맞았지만 ‘미끄덩거리는 젖은 풀’로 격하할 만큼 나쁜 식감은 아니었다. ---「봄 | ‘쑥국을 남김없이 떠먹는 나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중에서 태규는 인도 배낭여행에서 만난 친구다. 시간과 돈 가운데 하나만 있다만 여행을 떠났던 그즈음, 인도 역시 그럭저럭 잘 여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떠났지만. 세간의 소문만큼 인도 여행은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동갑이던 태규와 나는 각자의 밥벌이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 그 무렵 태규의 인생에는 작고 큰 시련이 이어졌다. 그중 가장 가공할 만한 사건은 ‘태규가 인턴십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끊었으나 비자 신청을 깜빡해 티켓을 날린 일’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적잖이 충격을 받은 태규는 요즘 본인 정신머리가 심각하다며 제 발로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 태규의 진단명은 ‘성인 ADHD’. 예상했지만 기대보다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태규는 약을 처방받아서 당분간 매일 한 알씩,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한 알 더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약 먹으니까 어때? 괜찮냐?” “야, 남들은 이런 차분한 기분으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지나온 인생 완전 손해 본 기분이다. 진짜 모래주머니 떼고 달리는 기분? 너도 한번 가서 검사받아봐.” “나?” “그래 너도 나랑 비슷하잖아.” 다음날 다시 생각해 보니 성인 ADHD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무언가 즐거워 보이면 곧장 시도해 보는 나와 태규의 삶의 태도는, 깊지는 않지만 폭넓은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줬다. 무작정 도전한 뒤 정작 끝맺은 것은 별로 없지만 그건 재능이 없는 분야라 합리화하면 되었고, 많이 재어보지 않고 뛰어들었기에 마냥 즐거웠던 시간은 좋은 추억이 되었다. 태규와 나는 한 나무를 100번 찍는 대신에 여러 나무를 한 번씩 찍어보는 방식으로 살아왔지만, 종종 한두 번의 도끼질에도 넘어오는 나무가 있긴 했다. 무언가 인생이 답답해 인도까지 날아와 미로 같은 바라나시 골목길을 헤매다 만난 우리. 결국 태규와 나는 각자의 경중대로 마주한 인생을 그럭저럭 잘 꾸려나가고 있다. ‘성인 ADHD스러운’ 증상 때문에 손해 본 면도 있었겠지만, 덕 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에게 남은 어수선한 성격이 그리 원망스럽지만은 않았다. ---「여름 | ‘성인 ADHD라도 괜찮아」 중에서 커피 믹스는 가능한 지양하려 하지만, 회사에서 지칠 땐 또 그만한 자양강장제가 없다. 회사 밖으로 뛰쳐나갈 여유가 없을 땐 노란 커피 믹스 두 봉을 뜯어 뜨거운 물에 녹이고 얼음을 탄다. 믹스 두 봉으로 만든 K-회사원 카페라떼야말로 21세기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시대의 기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급조된 K-회사원 라떼로 반짝 에너지를 당기면, 또 그럭저럭 남은 하루를 버틸 기운이 생긴다. 엄마가 그랬듯. 이미 한물간 표현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 때는 말이야~’의 ‘나 때’도 개인적으로 그리 밉지만은 않다. ‘추억으로 산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그네들의 ‘나 때’를 들어보는 일은 종종 흥미롭다. 세상 무섭게 생긴 부장이 대학 시절 밴드부 보컬이었다는 이야기는 소름 돋게 놀라웠고, 회사에 말도 없이 동네 전국 노래자랑 예선에 나갔다는 소식은 더 충격적이었다. 무심결에 ‘나 때’를 외치며 아저씨들은 종종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급격히 초롱초롱해진 그들의 눈빛과 함께 짧은 과거 여행을 떠나, 그 시절에 내려 그들과 마주한다. 유난히 생생한 추억 조각 몇 개를 끝없이 곱씹으며 내가 오늘을 버티듯. 그들도 이 추억으로 오늘을 버티고 있겠구나. 이 세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도 추억 여행의 목적지에서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너무 잦지 않은) ‘나 때는 말이야~’를 싫어하지만은 않는 이유다. 이렇게 오늘도 라떼와 나때의 힘으로 버틴다. 이 두 축은 회사에 잠긴 3N살의 도시인을 달래는 당근이요 채찍이다. 라떼로 장작을 넣어 준 오늘이 먼 훗날에는 기분 좋은 ‘나때’가 되어야 할 텐데. 쉽지는 않겠지만,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가을 | ‘라떼와 나때를 좋아하는 여자」 중에서 요 며칠 감기를 호되게 앓았다. 괜찮겠지 싶어 꿀물 한 잔 타 먹고 잠든 다음 날 아침. 간만에 아프다 소리도 못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코안이 부었는지 숨쉬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입으로 숨을 쉬자니 입이 바짝 말랐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만두전골 가게에 갔다. 오늘도 저녁 식사 시간엔 호떡집 아니 만두전골 집에 불이 났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 골목을 크게 세 바퀴를 돌고 나서야 겨우 차를 댔는데, 스무 개도 넘는 테이블은 거의 만석이었다. 그 틈바구니에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물과 컵을 가져다주며 종업원이 ‘전골 2개죠?’를 물어왔다. 고민할 게 없어 더 좋다. 주문한 지 3분이나 지났을까, 커다란 전골냄비가 나왔고 한번 훅---「끓으면 불을 낮추고 바로 먹으라고 했다. 만두는 고기와 김치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대부분이 하는 대로 반반으로 주문했다. 먼저 간이 덜 강할 고기만두를 앞접시에 덜었다. 많이 씹을 것도 없이 훌훌 넘어가는 것이 죽만큼이나 편안하게 들어간다. 오늘 메뉴 선택이 훌륭했다. 다음으로는 김치만두를 떴다. 본래 다른 만두라면 고기만두보단 김치만두를 선호해온 나지만, 이 집은 고기만두가 더 내 입맛에 맞다. 한 알 한 알 고기와 김치만두를 번갈아 가며 먹었더니, 마지막으로 냄비에는 고기와 김치가 한 알씩 남았다. 남자친구는 김치만두를 내 앞접시에 떠 주었고, 나는 그도 이 집 고기만두가 입맛에 맞는구나 싶어 잠자코 김치만두를 먹었다. 그렇게 너덜거리는 목구멍 안을 달래주는 듯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약 기운 때문일지, 든든한 국물 때문일지 조금은 말할 힘이 생겼다. “자기는 저 집 김치만두랑 고기만두 중에서 뭐가 더 맛있어?” “나는 김치만두.” “응? 근데 왜 나 아까 마지막에 김치 준 거야?” “김치가 더 맛있잖아.” “나는 저 집은 고기만두가 더 맛있던데?” “그래? 너 평소에 김치만두 더 좋아하길래.” ---「겨울 | ‘각자 덜 좋아하는 만두를 먹는 일」 중에서 공용 욕실을 써야 하는 건 물론이요, 늦게 씻으면 차가운 물만이 나오는 선암사 템플스테이. 그런데도 이곳에서의 1박 2일이 예상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진 이유에 대해 고찰해 보려 한다. 우선 입소와 동시에 법복으로 갈아입은 뒤, 패션에 대해 일체 고민하지 않아서 좋았다. 가꾸는 데에 재주가 부족해 나를 그럴싸하게 꾸미는 모든 과정이 만만찮은 과업처럼 느껴지는 나. 여름이면 모시 법복을, 겨울이면 누비 법복만을 걸치면 되는 이 안의 삶이 무척 가뿐하게 와닿았다. 더 중요한 수행에 집중하기 위해, 덜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기. 이를 위해 체험객은 법복을 입고 생활하는 정도였지만 진짜 스님은 머리를 민다. 현생에 돌아와 가장 진하게 남은 기억은, 템플스테이 막바지에 모든 참여객과 함께 편백숲을 걸었던 시간이다. 마지막 공양을 마치고 차담을 함께한 스님이 길잡이가 되어 선암사 근처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주친 내내 근엄했던 스님이 갑자기 덥다며, 계곡으로 무리를 이끌었다. 스님이 아이처럼 계곡에 손을 담그고 손수건도 적셔 민머리를 닦는 모습에,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반환점을 돌 때까지 따로 또 같이 걷다가, 편백 숲의 끝쯤에서 스님의 권유로 데크에 둘러앉게 됐다. 스님이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겠다며 갑자기 노래하겠다고 선언했다. 얼마 전 템플스테이를 온 다른 사람에게 배웠다며 반주도 없이 부르기 시작한 노래는 바로 찬송가였다. ---「겨울 | ‘스님이 불러준 찬송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