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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4
한비자와 저작 7 한비자는 어떤 사상가인가 9 일러두기 14 제01장 초견진(初見秦) 18 제02장 존한(存韓) 30 제03장 난언(難言) 41 제04장 애신(愛臣) 46 제05장 주도(主道) 50 제06장 유도(有度) 57 제07장 이병(二柄) 68 제08장 양권(揚權) 74 제09장 팔간(八姦) 84 제10장 십과(十過) 91 제11장 고분(孤憤) 118 제12장 세난(說難) 127 제13장 화씨(和氏) 135 제14장 간겁시신(姦劫弑臣) 139 제15장 망징(亡徵) 156 제16장 삼수(三守) 164 제17장 비내(備內) 168 제18장 남면(南面) 174 제19장 식사(飾邪) 179 제20장 해로(解老) 191 제21장 유로(喩老) 224 제22장 세림 상(說林上) 241 제23장 세림 하(說林下) 260 제24장 관행(觀行) 278 제25장 안위(安危) 281 제26장 수도(守道) 287 제27장 용인(用人) 292 제28장 공명(功名) 299 제29장 대체(大體) 302 제30장 내저설 상(內儲說上) 칠술(七術) 306 제31장 내저설 하(內儲說下) 육미(六微) 342 제32장 외저설 좌상(外儲說左上) 370 제33장 외저설 좌하(外儲說左下) 407 제34장 외저설 우상(外儲說右上) 433 제35장 외저설 우하(外儲說右下) 465 제36장 난일(難一) 490 제37장 난이(難二) 511 제38장 난삼(難三) 526 제39장 난사(難四) 545 제40장 난세(難勢) 556 제41장 문변(問辯) 564 제42장 문전(問田) 567 제43장 정법(定法) 571 제44장 설의(說疑) 576 제45장 궤사(詭使) 590 제46장 육반(六反) 597 제47장 팔설(八說) 608 제48장 팔경(八經) 619 제49장 오두(五?) 632 제50장 현학(顯學) 653 제51장 충효(忠孝) 667 제52장 인주(人主) 675 제53장 칙령(勅令) 680 제54장 심도(心度) 684 제55장 제분(制分) 688 한비자 연보 693 참고문헌 695 찾아보기 698 |
金海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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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는 법가를 집대성한 저작이다. 한비가 활동했던 전국시대는 역사상 제후국들이 서로 정벌 전쟁을 일삼은 혼란의 시대였다. 또 각국에선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들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런 시대에 한비의 조국 또한 늘 외세의 침략을 받아 쇠퇴 일로를 걸었다. 한비는 기존의 방식과 체제론 나라가 부강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법치란 이념으로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
한비(韓非)는 법가(法家)사상가다. 법가는 크게 3개의 계열로 구분한다. 첫째, 법(法)을 강조한 상앙, 둘째, 술(術)을 강조한 신불해, 셋째, 세(勢)를 강조한 신도다. 상앙의 법(法)은 민중들의 사익(私益) 추구를 막고, 국가의 공익(公益)을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다. 신불해의 술(術)은 신하들이 내세우는 이론과 비판을 그들의 행동과 일치시키는 기술이다. 신도의 세(勢)는 군주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세(權勢)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한비자(韓非子)는 ‘법’의 상앙(商?), ‘술’의 신불해(申不害), ‘세’의 신도(愼到) 등 이 3개 학파의 주장을 두루 수용해 발전시켰다. 특히 법(法)과 세(勢)를 중시했다. 군주는 그것을 확고하게 지녀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법’과 ‘세’만으론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신불해의 술(術)을 받아들여 법술(法術)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한비자』란 책에 ‘법술지사(法術之士)’란 말이 많이 나오는 이유다. 한비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荀子)의 제자다. 하지만 그는 유가(儒家)를 비판하고, 오히려 도가(道家)를 수용했다. 유가를 비판적으로 보았다는 것은, 한자(韓子)로 불리다 한비자(韓非子)로 이름이 바뀐 것만으로도 짐작이 된다. 당(唐)나라 때까지만 해도 한자(韓子)로 불렸던 그가 유가의 정통이 아닌 법가로 분류되면서, 유가의 도통(道統)을 이은 한유(韓愈)에게 한자의 이름을 넘겨주고, 한비자로 변경된 이유다. 『한비자』 55장의 내용은 선행 법가사상을 중심으로 당시 사상가들의 다양한 이론을 수용했다. 따라서 전국시대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를 다방면에 걸쳐 생동감 있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한비자』 55장은 다양한 범주의 철학사상과 변법의 정치적 실천을 결합해 법치주의를 지향하는 일관된 내용을 담고 있다. 서한(西漢)시대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한비자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즉 한비자의 사상은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신불해(申不害)를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서 함께 논하며, 한비자를 “형명(刑名)과 법술(法術)의 학설을 선호하나, 그 학설의 근본은 황로사상[黃老思想 :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시조로 하는 도가사상(道家思想)의 계열]에 있다.”라고 했다. 주지하듯 한비가 활동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는, 노예제(奴隸制) 사회에서 봉건제(封建制) 사회로 막 변혁(變革)되던 시기다. 따라서 한비는 상앙(商?)의 일상(壹賞), 일형(壹刑), 일교(壹敎)의 법치사상과 신불해(申不害)의 군인남면지술(君人南面之術), 무위이치(無爲而治)의 술치사상(術治思想), 신도(愼到)의 도법론(道法論), 인순론(因循論), 세치론(勢治論) 등 선행 법가사상을 종합해 기존의 통치이념인 신권법(神權法)과 종법예치(宗法禮治) 사상을 대체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당시에 활동한 사상가들은 정치적 성격이 보다 강할 수밖에 없었다.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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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00년 전, 인류가 생산한 지적자산을 동일한 만큼 양적(量的)으로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요즘은 인류가 생산한 지적자산을 동일한 만큼 양적으로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불과 3시간이면 가능한 시대다. 일찍이 경험(經驗)해보지 못한 세상에서 우리는 호흡(呼吸)하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선 ‘속도보다 방향’이란 말이 회자(膾炙)되곤 하나 ‘넋 놓고 살 수 없는 시대’에 있는 것이다. 엥겔스가 1844년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후, 토인비가 이를 대중화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부터 2차와 3차를 거쳐 어느새 4차 산업혁명 시대, 즉 메타(Meta) 시대로 깊숙이 들어왔다. 메타의 시대는 ‘인문학과 과학이 통섭되는 시대’다. 컴퓨터 기술 기반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Cloud),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 등이 신대륙인, ‘디지털 생태계’로 전환(轉換)시킨 것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지식(知識)이 존재’한다. 하나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의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알고 있는 느낌의 정도가 아닌, 설명도 가능한 지식이다. 사실 지식은 설명까지 가능해야 살아있는 지식이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 지성인(知性人)들은 어떤 지식을 흡수(吸收)하고 소화시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선현(先賢)들의 사상(思想)을 올바로 받아들이는 자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움직인다. 미래는 ‘지금 바로 여기’다. 윌리엄 깁슨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란 주장도 있으나, 이전에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디지털 신대륙’이란 곳에서 호흡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신대륙으로 들어가는 디딤돌’인 인문학(人文學)을 읽어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나 자신만의 삶이 아닌, 공동체의 항구적인 발전과 보전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오늘날 가장 널리 퍼진 사상 가운데 하나이고, 대부분의 사람에겐 철학과 사상적 관심이 없더라도 법가(法家)의 가르침이 실생활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비자(韓非子)』는 ‘법가’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법가의 사상과 문화, 역사, 철학적 접근 방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론적인 지식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사는 데 ‘도움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한비자(韓非子)』는 법가(法家)를 처음으로 접하는 분들이나 이미 ‘법가’에 대한 지적 역량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학습서가 되리라 확신한다. ‘법가’의 사상과 문화적 가르침이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한비자』를 통해 ‘법가’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洞察)을 바라며, 이를 통해, ‘더욱 지혜로운 삶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2024년 12월 송죽동(松竹洞) 승영철학사상연구소에서 김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