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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조선왕조실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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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조선왕조실록 4
세종 문종편
박시백
휴머니스트 200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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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시사만화가. 1964년 제주도박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면서 총학생회 신문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1996년 한겨레신문의 시사만화가로 데뷔했으며, 만평 〈한겨레 그림판〉을 통해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사 풍자를 보여줬다. 이듬해부터 연재한 〈박시백의 그림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려내 많은 독자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그 외에도 〈말〉, 〈출판저널〉, 〈뉴스피플〉 등의 매체에 만평을 연재한 바 있다. 박시백의 연재만화는 네컷 만화나 한컷짜리 만평이 아닌, 시사 만화로서는 지면이 넓은 편인 페이지 만화이다. 한 이슈에 대한
시사만화가. 1964년 제주도박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면서 총학생회 신문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1996년 한겨레신문의 시사만화가로 데뷔했으며, 만평 〈한겨레 그림판〉을 통해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사 풍자를 보여줬다. 이듬해부터 연재한 〈박시백의 그림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려내 많은 독자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그 외에도 〈말〉, 〈출판저널〉, 〈뉴스피플〉 등의 매체에 만평을 연재한 바 있다.

박시백의 연재만화는 네컷 만화나 한컷짜리 만평이 아닌, 시사 만화로서는 지면이 넓은 편인 페이지 만화이다. 한 이슈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희화화하거나 패러디를 하는 보통의 다른 만평들과 달리, 그의 만화는 사건의 전후관계 및 배경과 진행, 그리고 작가의 논평 등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줄거리 시사만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만화는 부드럽고 유연한 제시방식과 긴 호흡을 가진 '수필만화'의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사만화로서의 본질적 임무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가 〈한겨레신문〉, 〈출판저널〉, 〈말〉, 〈뉴스피플〉 등에 연재했던 시사만화들은 『박시백의 그림 세상 -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2000년 《조선왕조실록》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이를 만화로 만드는 구상을 하고, 2001년에 그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200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첫 권이 출간되었고, 그해 대한민국 만화대상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후 10년간 조선시대 사관의 심정으로 500년 역사를 20권의 책에 담아내 2013년 완간했다. 13년간의 대장정을 마친 그해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했다.

2020년 일제강점사를 다룬 《35년》(전 7권)을 내놓았다. 2022년 《박시백의 고려사》 첫 권을 출간하며 한반도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나라 고려의 500년 역사를 탁월한 서사와 독보적인 작화로 생동감 있게 되살려내는 데 전념했고, 2024년 전 5권으로 완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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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시백
1964년 제주생. 시사만화가. 1996년 한겨레신문 만평담당자 모집에 응모하여 당선됨. 1997년 6월부터 2001년 4월까지 한겨레신문에서 '박시백의 그림세상' 연재. 그외 『출판저널』,『말』,『뉴스피플』등에 연재하였으며, 현재는 『민족21』,『월간성서』, '민주개혁 국민연합 홈페이지'등에 연재하고 있음.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8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09쪽 | 590g | 190*258*20mm
ISBN13
9788958620112

출판사 리뷰

조선왕조실록을 살아있는 만화로 즐긴다
원전을 바탕으로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본격 역사 만화이다. 또한 오늘날에도 반추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인물과 사건, 처세가 등장하는 살아있는 교양 만화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읽을 수 있고, 즐기면 공부할 수 있는 체험 학습 만화이다.

기획 기간 3년, 제작 기간 5년, 총20권 분량의 대하 역사 만화.

박시백 화백은 2002년부터 3년 동안 하루 12시간, 조선왕조실록과 관련 역사책을 보며 연구하고, 시안을 그려보는 작업을 거듭했다. 전 20권 분량으로 조선 왕조 500년사를 새롭게 조명하게 될 <만화 조선왕조실록>은 앞으로 3개원에 한 권씩, 5년에 걸쳐 완간될 예정이다.

50여 명의 독자들이 먼저 읽고 평가.

한 달 동안 일반 독자와 역사 전문가들에게 모니터링와 검증을 부탁했다. 일반 독자들은 초등학생, 주부, 직장인, 대학생, 중학생 등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보통 사람들로 구성했고, 역사 전문가로는 중, 고등학교, 대학교 한국사 전공 교사, 역사 평론가 등 총 50여 명이 먼저 보고,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었다.
1. 우리는 이 시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집현전 학사에게 용포를 벗어주는 자상한 임금, 백성들을 사랑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애민의 군주 세종, 그 뒤를 이은 병약하고 요절한 임금 문종.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역사 ‘상식’들 중 상당 부분은 야사에 기대거나, TV 드라마나 급조된 역사책이 만들어낸 허상들이다. 우리 역사의 ‘황금 시대’라 칭하는 이 시대에 정확히 접근하기 위해 작가는 통상 제작 기간의 2배 정도의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고증하여 생생하게 이 시대를 복원했다. 《국역 조선왕조실록》을 기본으로 30여 권의 관련 도서를 참고했으며, 최근 역사학계의 성과를 적극 차용해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접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또한 만화라는 미디어의 장점을 백분 발휘해 두꺼운 역사책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재미와 박진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세종ㆍ문종편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빛나는 책 중의 하나가 될 거라고 자평한다.

2. 세종의 리더십
우리는 ‘세종대왕’이라 부르며 칭송하지만 인간 세종의 능력이나 업적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다. 이 책에서는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그의 시대를 조명함으로써 사실에 가까운 세종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세종의 리더십이다. 장인의 억울한 죽음에 연루되어 있는 인물들을 오히려 중용하고, 태종의 신하들을 우대하여 진심에서 우러난 충성을 유도했다. 어렵고 멀지만 피를 부르지 않고도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한 것이다. 또한 철저히 능력 위주, 현장 위주, 전문가 위주의 인사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면서도 황희로 대표되는 노대신들을 우대해 이들과 서로 견제와 균형을 도모했다. 그리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토론을 중시했다. 토론을 명분 확보를 위한 장치 정도로 생각한 태종과는 달리, 세종은 가장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해 신하들과 기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진정한 의미에서 ‘토론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며, 끊임없는 사고로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솔선수범하여 이를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임금이었다.

3. 문화적 자주, 정치적 사대의 시대
세종 시대에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학문과 과학 기술이 융성했다. 훈민정음 창제, 《고려사》와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팔도지리지》, 《국조오례의》, 《동국정운》, 《자치통감 훈의》, 《삼강행실도》, 《농사직설》 편찬 등 저술 활동이 활발했고, 그만큼 인쇄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과학 기술 분야에선 조선의 독창적인 역법서《칠정산 내외편》을 편찬했고, 자격루, 측우기 등을 제작했으며, 화약 및 화포 기술은 중국을 앞질렀다. 또한 아악을 정비하고, 새로운 악보법인 정간보를 세종 자신이 직접 창안하는 등 우리 고유의 음악을 발전시켰다. 이렇듯 세종 시대에는 문화 분야에서 우리 독자적인 길을 가면서 어떤 면에서는 중국을 앞지르는 자주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정치 외교 분야에서는 태종대 못지않게 지성사대의 길을 따랐다. 명나라의 무리한 요구나 조선 출신 칙사들의 횡포에도 지성으로 명나라를 섬긴다는 입장을 끝까지 견지했던 것이다.

4. 훈민정음은 세종의 작품이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이라 할 만한 훈민정음은 세종의 명을 받은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게 통설이었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집현전 학사들의 작품이 아니라 세종 자신의 작품이었다. 실록에도 세종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명기되어 있지, 집현전이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거나 도움을 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 사대주의가 팽배해 있던 당시 상황에서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글을 공론화해서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최만리가 집현전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있는 상황에서 집현전 내에서 비밀리에 만들 수도 없었다. 이를 잘 알았기에 세종은 직접 비밀리에 창제 작업을 했다. 그런데도 집현전 학사들이 창안한 것이라 알려진 이유는, 집현전 학사들이《훈민정음 해례본》을 편찬했고 이후 보급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증유의 문자 체계를 만드는 엄청난 일을 세종이 직접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외에도 세종의 천재성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뛰어난 기억력과 타고난 총명으로 과학, 농업, 의학, 군사,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쳐 최고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곳곳에 나와 있다.

5. 북방을 개척하다
태종의 대마도 정벌과 그 효과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세종은 북방 영토의 개척을 일궈냈다. 사실 세종 이전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이 희미하게나마 조선의 국경선이기는 했다. 그러나 중앙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해 야인(여진족)들의 도발이 잦았다. 이에 세종은 최윤덕을 압록강 쪽에 보내 4군을 정비했고, 두만강 쪽에 김종서와 이징옥을 보내 6진을 설치했다. 이는 오늘날의 국경을 확정지은 국방 분야에서의 큰 업적이다. 그러나 북방 개척을 위해 무리하게 백성들을 국경으로 이주시키는 사민 정책의 결과, 백성들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6. 황희 정승은 청백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조선 시대의 재상하면 황희를 떠올린다. 무려 24년을 정승 자리에 있었고, 그 중 19년을 영의정으로 재직했다는 전무후무한 기록 덕이기도 하지만, 온화하고 두리뭉실하고 청렴결백하다는 일화가 전해 오면서 청백리의 표상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록에 기록된 그는 이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아들들과 사위 등은 불미스런 사건에 연류되었고, 황희 자신도 적지않은 매관매직과 수뢰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런 그를 세종은 끝까지 신뢰했다.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흠이 많은 황희를 왜 세종은 총애했을까? 이는 황희가 바로 세종의 견제자이자 보완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세종은 자신의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선 즉흥적이고 감정적이지 않으며 원칙과 현실 사이에 적절한 지점을 찾아낼 줄 아는 조언자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황희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황희는 여러 가지 흠에도 불구하고 24년간 정승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7. 그 당시 백성들의 삶은?
세종 시대는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빛나는 업적들을 남긴 황금 시대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에서도 역시 그러했다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여러 왕들과 비교해 선진적인 인권 및 복지 의식을 지닌 세종이었지만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앞서 말한 명나라와의 사대 관계로 인해 백성들은 끊임없이 고통을 받았고, 북방 개척의 산물인 사민 정책 때문에 고향을 떠나 유랑민 신세가 되기도 했다. 또한 세종의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정책은 백성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짐을 지우는 형세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상공을 천시하고 농업을 우대하는 경제 환경이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무리하게 감행된 화폐 정책이다. 그리고 ‘수령고소금지법’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급격한 보수화는 사대부들에겐 태평성대를 안겨주었을지 몰라도, 백성들에게는 그나마 있던 억울함을 풀 길조차 막아 버린 악법에 지나지 않았다.

8. 문약(文弱)한 임금 문종(?)
문종은 짧은 재위 기간(2년 3개월) 때문인지 우리에게는 어린 단종의 아버지, 수양대군의 형 정도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종은 짧은 재위 기간에 반해 조선의 어느 임금보다도 긴 군왕 수업을 받았다. 세자로 지낸 기간만도 무려 30년이고, 마지막 8년은 병든 세종을 대신하여 정무의 대부분을 처리하기도 했다. 개국 이래 한 번도 장자 계승이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세종은 장자 향을 미래의 성군으로 키우기 위해 완벽한 준비를 시켰다. 세종을 꼭 빼닮은 뛰어난 자질, 착실한 후계자 수업, 잠저 말년엔 행정 경험도 풍부했던 ‘준비된 임금’이 바로 문종이었다. 또한 문종은 각종 기술에도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는데,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라는 측우기도 세자 시절 문종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 실록에 전해 온다. 그리고 문약(文弱?)한 임금이라는 수식어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문종 재위기 문종 자신이 가장 역점을 두었고 성과를 낸 분야는 다름 아닌 군사 분야였다. 문종은 세자 시절부터 병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연구했고, 직접 설계한 화차를 변경에 배치하기도 했다. 즉위 이듬해에는 직접 진법을 저술해 편찬하니 《오위진법》이다. 이는 향후 조선 전기 군사 조직의 기본 체계를 이룬 것이다. 너무도 짧았던 재위 기간이 안타까운 임금, 문종이다.

9. 살아있는 캐릭터
만화는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묘사한다. 작가는 최근의 국적 불명의 학습 만화 캐릭터와는 차별화된 한국적 용모의 캐릭터를 창출했다. 작가가 해석한 인물의 성격과 실록의 묘사를 적절히 배합해 아이콘화하여 캐릭터로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면, 보수주의자 허조는 ‘마르고, 젊어서 허리가 굽었다’는 실록의 기록과 타협을 모르는 원칙주의자의 이미지에서 민주당 전 대표 조순형 씨의 얼굴을 차용했고, 강직한 김종서, 담백한 무장 이징옥, 영리한 정인지 등 생생한 캐릭터를 창출해냈다. 황희는 현존 초상화를 참고했고, 세종, 문종, 단종의 경우에는 실록에 나와있는 기록을 충실히 반영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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