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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러시아
1장 바쿠닌의 유산 / 16 2장 바쿠닌과 미국 / 35 3장 바쿠닌과 네차예프 / 64 4장 크로포트킨의 윤리적 아나키즘 / 97 5장 미국의 크로포트킨 / 137 6장 폭풍의 새 : 아나똘리 젤레즈니아코프 / 186 7장 네스토르 마흐노 : 사람과 신화 / 193 8장 V. M. 아이헨바움(볼린) : 사람과 그의 책 / 215 2부 미국 9장 프루동과 미국 / 244 10장 벤자민 터커와 그의 딸 / 256 11장 C. W. 모브레이: 미국의 영국인 아나키스트 / 272 12장 사코와 반체티: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의 배경 / 287 13장 미국의 유대인 아나키즘 / 309 14장 알렉산드르 베르크만 : 스케치 / 351 15장 감옥에 갇힌 리카르도 플로레스 마공 / 363 16장 몰리 슈타이머 : 한 아나키스트의 삶 / 373 3부 유럽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 17장 파리꼬뮨과 그 유산 / 396 18장 폴 브루스 : 현실주의적 아나키스트 / 413 19장 순교자, 구스타프 란다우어 / 423 20장 브라질의 아나키스트들 / 436 21장 오스트레일리아 아나키스트 : J. W. 플레밍 / 445 옮긴이 후기 : 유령처럼 나를 깨우는 아나키스트의 |
이전에 내가 아나키즘의 역사를 다뤘던 글들처럼, 이 책도 엄선한 아나키스트 활동가의 삶을 통해 아나키즘 운동의 향기를 발산하는 전기적인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몇몇 인물들(예를 들어,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흥미로운 삶을 살았고 비범한 인간적 자질을 타고났다. 나는 그들의 오류와 모순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비범한 자질을 짧게나마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이들 아나키스트들의 경력을 살펴볼 때, 다른 무엇보다도 한 가지 점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즉 이들은 부조리와 모든 형태의 압제를 열렬히 증오했으며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중앙집권적인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려 했다. 그들은 경찰국가의 성장, 개인의 종속, 노동의 탈인간화, 언어와 문화의 타락으로 규정되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최초의 형태이자 가장 철저한 전체주의[볼셰비즘과 파시즘] 속에서 살았다. 즉 그들은 한 세기 전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다가오는 야만의 시대”라고 묘사했던 시대를 살았다.
일반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권위, 특히 국가사회주의에 관한 스펜서의 예언은 우리 시대에 충분히 증명되었다. 근대의 독재체제 아래에서 진리와 정의, 품위와 명예,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는 무참히 짓밟혀 왔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에 대한 아나키스트의 비판을 곰곰이 생각하면 전체주의를 “영원히 인간의 얼굴을 짓밟는 군화발”로 묘사했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떠오른다. 또 해방 없는 사회주의는 최악의 노예제가 되리라는 프루동과 바쿠닌의 경고도 떠오른다. --- 서문중에서 |
1) 왜 ‘아나키스트의 초상’인가?
‘초상’이라는 말이 알려주듯 이 책에서 다뤄지는 아나키스트들은 모두 죽어버린 과거의 인물들이다. 하지만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아나키즘의 소멸’을, 그 치열했던 삶의 기록들이 묘지의 비명으로만 남게 되는 ‘쓸쓸한 몰락’을 암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의 육체적인 죽음이 그들을 ‘살아있게 했던’ 열정까지 모두 묻어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나키즘이 배반과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며 몰락한 듯 보이지만,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와 자본이라는 괴물에 맞선 사람들에게 하나의 ‘유령’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을 그리는 애브리치의 세심하면서도 담백한 붓질은 각각의 아나키스트와 관련된 상반된 여러 정보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드러내다. 이렇게 그려진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화려한 귀족 저택에 걸린 가계를 ‘과시’하는 초상화나 승자의 위엄을 과시하는 기념비가 결코 아니다. 이 초상은 ‘감상용’이 아니라 아나키스트라는 오늘날의 ‘유령’과 만날 수 있는 거울이다. 여전히 반세계화 운동이나 지역자치운동, 교육운동, 환경운동, 반전운동, 꼬뮨운동과 같은 전 지구적 자본을 공격하는 자율적이고 다양한 운동들에서 드러나듯이, 억압과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유령의 ‘출현’과 ‘부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무정부주의, 테러리즘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아나키즘의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나키즘하면 무정부주의자이거나 테러리스트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아나키스트의 초상}이 가진 장점은 이런 생각들을 불식시킨다. 애브리치는 우리가 잘 아는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만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아나키스트들을 통해 아나키스트들의 다양한 삶과 아나키즘 운동의 다채로운 면을 볼 수 있도록 한다. 각각의 아나키스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내는 아나키즘 운동의 대의와 방향, 노선, 갈등들은 아나키즘을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이런 구체적인 서술 속에서 우리는 흔히 아나키스트들을 구분짓는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개인주의자와 같은 추상적이고 고정된 잣대들이 왜 위험한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바쿠닌과 크로포트킨, 네차예프, 젤레즈니아코프, 마흐노, 아이헨바움 같은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을 다룬다. 그리고 제2부는 미국에 영향을 미친 아나키스트들, 프루동과 터커, 모브레이, 사코와 반체티, 유대인 아나키스트들, 베르크만, 마공, 슈타이머 같은 아나키스트들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제3부는 유럽과 다른 지역을 포함해 파리꼬뮨의 의미와 브루스, 란다우어, 브라질 아나키스트, 플레밍을 다룬다.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개인적인 테러행위에서 공동체적인 꼬뮨주의 운동까지, 급진적인 이상주의에서 현실적인 개혁주의까지 아나키즘의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다. 3)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직접행동’과 ‘실행에 의한 선전’, ‘꼬뮨주의’라는 아나키스트의 개념들을 통해 해방을 향한 싸움은 뛰어난 영웅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다중(多衆)의 몫임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여러 인물의 삶을 그리지만 {아나키스트의 초상}에서 드러나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직접행동’과 ‘실행에 의한 선전’이다. 그리고 이 두 개념은 ‘꼬뮨주의’라는 큰 틀로 묶여진다. 아나키스트들은 강요되거나 재단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이론적인 주장이나 논증보다는 직접 몸으로 실행하며 자기 사상의 올바름을 증명하려 했다. 누가 나를 대신해 주길 기대하지 않고 직접 맞서 스스로 싸우는 것,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다중들의 그런 힘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유대인 아나키스트들과 이탈리아 아나키스트들은 피크닉(picnic)이라는 독특한 대안문화활동을 즐겼다. 그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먹고 마시며 춤을 췄지만, 행사가 끝날 무렵엔 강연회나 책자를 발행하기 위한 기금을 모았다. 그들은 이탈리아 왕을 암살한 아나키스트의 미망인이 여는 찻집에서 옛날 신문을 뒤적이며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는 동시에 미망인의 생계를 도왔다. 그들은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연극을 자체적으로 공연했고, 국가가 정한 휴일이 아니라 파리꼬뮨 기념일이나 헤이마켓 순교일 등을 기념일로 삼았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저녁이나 공휴일에는 자신들의 신념을 주장하는 책자와 잡지를 만들며 힘을 얻었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아나키스트들이 어떻게 ‘일상에서의 아나키즘’을, ‘가정에서의 아나키즘’을 조직해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4)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오늘날과 같은 전 지구적 전쟁 시대, 야만의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시해준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이 다루는 시대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이다. 즉 그 시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격동적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시기 동안 파리꼬뮨, 러시아 혁명과 크론슈타트 봉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 스페인 시민혁명 등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류의 진보라는 이상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아나키스트들이 이러한 전쟁에 맞서 어떻게 주장하고 싸웠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지, 아나키스트들은 전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지 등의 쟁점이 여러 아나키스트들의 대립적인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오늘날과 같은 전 지구적 전쟁의 시대에야말로 대량파괴를 위한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경고하며 “과학에 대항하는 삶의 반란, 과학의 지배에 대항하는 반란”을 주장했던 바쿠닌을 비롯한 아나키스트들과 아나키즘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은 절실하게 필요한 작업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라크 전쟁 파병이나 한반도의 위기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아나키스트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주장했던 것보다 더 분명하고 강력한 반전의 메시지가 있을까? 폴 애브리치는 잊혀져가는 아나키스트들의 삶을 되살려 냄으로써 정치적?사회적 부조리와 전쟁에 맞선 전 세계적인 투쟁에서 아나키즘이 어떠한 참조를 줄 수 있고 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제시해준다. 이 책은 오늘날처럼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고무하는 데에 꼭 필요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