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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지하철 유령·코미디의 왕·차이와 반복, 요컨대 TV적인 것과 리모컨적인 것이란·메모리즈 아 메이드 오브 디스·이메일·애로부인傳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 : 심부름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남자에게 어느 날 남해의 외딴섬으로 동행을 해달라는 젊은 여자의 의뢰가 들어온다. 젊은 여자와 섬으로 동행하는 과정에서 남자는 이 여자가 정신병을 앓고 있고, 1년 8개월 된 태아를 임신했으며, 2년 전 그 섬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남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섬에 도착한 남자와 여자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겪게 되는데 사고 후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에게는 여자가 낳고 간 아기만이 남게 된다. 지하철 유령 : 샐러리맨인 나는 퇴근길에 지하철의 철로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한 사내를 목격한다. 그런데 그 사내가 오전 출근길에 승강장 구석에서 우연히 만났던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승강장, 그리고 불과 140센티미터 아래인 철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일상적 공간인 지하철에서 한 사내가 자살을 하는 장면이 유대 전쟁사에서 처참한 비극으로 기록된 ‘마사다의 비극’과 오버랩 되면서 숨 가쁘게 전개된다. “모든 죽어 간 것이 그렇듯 삶도 기억되는 순간들의 과거에 불과”하다는 진술이 기억으로 인한 삶과 죽음을 정의해 낸다. 코미디의 왕 : 유흥업소 밤무대에서 일하는 코미디언이 대부호 문 여사를 만나 동거에 들어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무대 생활을 그만두고 부유함이 주는 안락과 여유를 만끽하던 어느 날 그 자신이 과거에 섰던 무대 ‘초원의 집’에서 추억에 어린 눈빛으로 코미디를 하게 되는데, 관객들의 완전한 냉소와 무관심으로 절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코미디를 할 수 없게 된다. 전직 코미디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작중 인물이 파티에서 만난 젊은 소설가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코미디언이 처한 상황은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우리 시대 소설가와 소설가의 존재 방식에 대한 알레고리적 비판을 담고 있다. 차이와 반복, 요컨대 TV적인 것과 리모컨적인 것이란 : 휴가차 리조트에 놀러 온 네 명의 청년, 이와 차, 정과 주는 콘도 거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리모컨 때문에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다. 일 때문에 서둘러 떠난 주를 빼고 콘도에 남게 된 세 청년은 리모컨을 찾기 위해 두꺼비집, 전기밥통, 양변기 저수조와 같은 기상천외한 구석까지 뒤지게 된다. 떠난 주의 가방에 딸려 갔을 거라는 추측도 어긋나자 리모컨 찾기를 포기하려는데, TV 아래 마룻바닥에 얌전히 놓여 있는 리모컨을 발견하고 셋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메모리즈 아 메이드 오브 디스 : 출판사에 근무하는 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환절기’라는 여자를 만난다. 한때 영화배우 리자 버틀렛을 닮은 여자를 사랑했던 이 남자는 그 사랑이 실패하고 난 후 “세상의 여자는 리자 버틀렛을 닮은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로 나뉘었”다는 양도 논법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남자는 환절기를 만나는 동안에도 “리자 버틀렛을 너는 닮았어”라고 하며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재의 사랑에 거듭 실패한다. 이메일 : 36세의 성이철에게 어느 날 한 남자로부터 모임을 알리는 이메일이 도착한다. 모임에 나가기로 한 성이철은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기 전 모임 장소로 안내하겠다는 20대 초반의 자신과 이름이 같은 한 청년을 만난다. 그로부터 안내를 받아 ‘天王城’에 가보니, 그 모임에 참석한 여덟 명의 남자는 생일과 이름이 같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들이다. 그런데 이 모임의 주최자라고 할 수 있는, 그를 천왕성으로 안내한 22세의 성이철은 보이지 않는다. 모임의 최고 연장자인 68세는 방금 전에 22세의 그가 자살했다는 것과 그 이유를 알리고, 모임에 온 사람들은 일순 충격에 빠진다. 애로부인傳 : 철쭉 카페를 운영하는 애로부인은 경국지색이라고 일컬어지는 미모를 지녔다. 그런데 이 애로부인은 숱한 남자들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 준 자칭 ‘기사’라고 하는 한 남자와 열애에 빠진다. 그런데 그는 애로부인의 미모와는 대척점에 있는 보잘것없는 외모의 소유자. 애로부인과 이 기사는 열렬한 사랑을 나누지만, 이 기사의 화재를 가장한 돌연한 실종으로 애로부인은 절망에 빠지고, 그 후유증으로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뒤틀리는 미모의 완전한 파괴라는 결과를 맞는다. 그리고 이 기사는 전생에 애로부인의 조상인 선덕부인을 사모했다 미쳐 죽은 ‘지귀’의 후세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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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기억의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기억과 망각의 변주를 통해 유지되고 있는 우리의 일상과 실재하는 시공간을 해체시킨다. 그래서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이 뒤섞인 기묘한 만화경 같은 풍경 속으로 우리를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든다. 일상에서 흔히 겪게 되나 지나치기 쉬운 상황들을 순발력 있게 포착, 예견된 혹은 그 자체로 고착되는 결말 대신 ‘반복’ 혹은 ‘뒤집기’를 시도함으로써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해명해 낸다. 결국 작가는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인간은 있을 수 없으며 인간의 삶은 기억과 망각을 통해 무수히 일어나는 차이와 반복으로 생산되는 세계라는 점을 일깨운다.
표제작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 : 과거에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의 기억에 완전히 매몰되어 삶을 저당 잡힌 여성과 그녀의 삶에 끼어들어 가게 된 한 남자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인간, 거기에 더하여 불필요한 것을 ‘망각’하는 기술을 상실한 인간 삶의 단면을 보여 준다. 소설에서 여성이 앓고 있는 정신병과 1년 8개월째 임신하고 있는 태아가 바로 그 상징. 작가는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일상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체득한 기억을 둘러싼 ‘보존과 폐기’의 동력학이 균형을 잃게 되었을 때 삶은 연옥에서의 고통에 허우적거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차이와 반복, TV적인 것과 리모컨적인 것이란」 : 리조트에 휴가차 놀러 온 네 청년이 머물고 있던 콘도에서 멀쩡히 존재했던 리모컨이 감쪽같이 보이지 않아 벌어지게 되는 기막힌 소동을 다루었다. 기억이라는 문제가 다소 코믹하게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교향악적인 갈등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게 이 소설이다. 사소한 사물에 대한 기억의 상실이 초래해 낸 갈등의 파노라마가 유쾌하게 잘 묘사된 작품이다. 「이메일」 : 기억의 문제를 그야말로 전면적인 실존의 문제로 설정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다가, 오히려 그것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진행시키게 만드는 기묘한 매력이 풍기는 작품이다. 생일과 이름이 같은,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들인 아홉 명의 남자, 그리고 한 남자의 자살을 통해 “기억으로부터의 죽음”이라는 진술에서 드러나듯 ‘자살’은 육체적 소멸이 아니라 기억으로부터의 단절이라는 메시지를 읽어 낼 수 있다. 「애로부인傳」 : 시간대를 현대로 옮긴 ‘고전 해학극’처럼 느껴지는, 작가의 걸걸하고 거침없는 입담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경국지색의 미모인 애로부인은 선덕부인의 후세이며, 애로부인이 유일하게 사랑에 빠진 추남 기사는 선덕부인을 사모하다가 죽은 지귀의 후세였다는 설정을 통해 작가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상실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과는 애로부인의 종말처럼 존재감의 완전한 상실로 귀착된다. 그러나 애로부인의 처참한 전락을 가중시킨 것은 실제로 젊은 기사와의 사랑의 상실 후 더욱 생생해진 그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