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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왕과 여인
왕과 여인/3천 금으로 천하일색을 구하다/조선을 치고 명에 들어가 대륙을 호령하리/홍순언, 나라의 역사를 바로 잡다 2장 폭풍전야 도요토미 히데요시/둘로 나뉜 조정/이순신, 바다로 나서다/다시 시작하는 벼슬길 부록 조선군의 편제, 군기, 갑옷 / 한국 역사소설의 거작, 《임진왜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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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황윤길은 부산에서부터 장계를 올렸다.
'왜국의 조선에 대한 정세는 반드시 병화(兵禍)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 사신들이 한양으로 돌아온 뒤에 임금 선조는 궁금하여 이들을 만나 보고 왜국의 자세한 동향과 정세를 물었다. 정사 황윤길과 서장관 허성은 부산에서 올린 장계와 똑같은 대답을 올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얼굴이 검고 몸집이 조그마하여 추루(醜陋)하나 눈에는 광채가 반짝반짝하여 사람을 쳐다보면 정기가 쏘는 듯하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치고 명나라를 쳐서 대륙을 침범하려는 야욕이 있으니, 오래지 아니하여 군사를 움직일 듯 보였사옵니다. 나라에서는 긴급히 이에 대한 방책을 세우는 것이 마땅할 줄 아뢰오.” 그러나 부사로 갔던 김성일은 황윤길과는 판이한 대답을 올렸다. “아니옵니다. 정사 황윤길과 서장관 허성의 말은 틀리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하잘 것 없는 용속한 인물이옵니다. 왜적은 절대로 우리 나라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정사 황윤길과 서장관 허성은 공연히 태평세월의 인심을 소란케 하니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하옵니다.” 황윤길과 허성은 기가 막혔다. “아니옵니다. 부사 김성일은 정세를 잘못 판단하였사옵니다. 저희 보기에는 왜인은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하고 다시 김성일의 복명(復命)을 논박하였다. “아니올시다. 정사 황윤길의 머리가 이상한가 보옵니다. 왜병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옵니다.” 하고 김성일은 우겨댔다. 두 사람은 최후까지 어전에서 다투었다. 슬프다 황윤길은 서인의 당파요, 김성일은 동인의 당파였다. 김성일은 나랏일을 하러 간 사람이 아니라 서인 황윤길을 반대하기 위하여, 적의 정세를 짐작했으면서도 다만 황윤길 서인 측을 반대하기 위하여 끝끝내 반대를 주장하였다. --- p.88-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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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벌어지듯 생생하게 되살아난 역사
장장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벌어진 전쟁을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는 박종화의 탁월한 표현력에서 그가 진정한 역사소설의 대가라는 사실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전쟁이 시작되는 부산진이나 동래성 전투, 전쟁이 길어짐에 따른 백성들의 고통 등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그 울분과 전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강가에 떠 있는 저 배들은 모두 다 무엇을 실은 배들입니까?”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젊은 여인이 모기 소리보다도 더 가냘프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옆의 사람에게 물어본다. 품 안에는 갓난아이를 껴안고 젖을 물리고 있다. “저것이 모두 다 쌀을 실은 배라오.” 대답하는 사람은 누렇게 부황이 들어 난리에 쫓기는 늙은 사람이었다. 역시 기운 한 푼어치 없는 기진맥진한 목소리다. “아유, 저 배가 모두 다 곡식을 실은 배…….” 여인은 힘이 없어서 말끝을 맺지 못한다. 여인은 난리통에, 고양으로 피란해서 헤매다가 남의 집 외양간에서 몸을 풀었다. 미역 한 오라기 얻어먹을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전쟁의 비참한 상황을 생생히 묘사한 장면에서 당시 백성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묘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사라진 아름다운 우리말과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 주는 예스러운 문체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대대로 내려오는 그의 가훈이 조금 세력이 있다는 일가붙이나 건건찝찔하게 되는 사돈 나부랭이들에게 등을 대고, 머리를 숙이기 싫어하는 맑고 깨끗한 전통……. 그가 찬동하는 말을 들으니 유성룡은 마음이 헝그럽게 좋다. 촌수가 아주 멀거나 친분은 있으나 가깝지는 않다는 의미의 ‘건건찝찔하다’나 여유가 생겨 마음이 가볍다는 뜻을 지닌 ‘헝그럽다’ 같은 예스러운 단어들의 사용은 작품의 색깔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한다. 피바람을 뚫고 다시 돌아온 역사 속의 영웅들 임진왜란은 뛰어난 어느 한 영웅의 힘으로만 치러낸 전쟁이 아니다. 7년에 걸친 기간 동안 침략군에 맞서 수많은 영웅이 목숨을 바친, 임금을 위해서가 아닌 나라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 전쟁이었다. 월탄 박종화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 계월향, 바다에서는 결코 한 치의 침략도 허용하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 원수를 갚기 위해 적장과 함께 물속으로 뛰어든 논개, 붉은 옷을 입은 장군 곽재우, 억울하게 죽은 천하장사 김덕령 등 수많은 영웅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생생히 그려냈다. ‘역사소설’ 하면 떠오르는 작가, 월탄 박종화 6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끝없이 솟아오르는 창작력과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으로 많은 작품을 생산해 낸 월탄 박종화. 그의 대표작이 바로《임진왜란》이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작가가 다루고 싶었다던 임진왜란을 소재로 하여, 3년여에 걸쳐 장대한 필치로 펼쳐진 작품이다. 월탄이 후기에서 “내가《임진왜란》을 소설화하고 싶은 것은 필생의 대원이었다. 이제 이 작품을 끝내 놓고 보니 내 원은 얼마쯤 이룬 셈이라 스스로 어깨가 거뜬해짐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쓴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