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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이사
창문을 여는 일
물왕멀
낙원맨션
최소화의 순간
행갈이
ㅂ의 유실

해설 : 필연적 사건에 대한 고찰 _소유정(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전북특별자치도 전주 출생. 2014년 단편소설 「이사」로 ‘제2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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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1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12g | 130*200*14mm
ISBN13
9791194523161

책 속으로

그 밤 내내 남자는 아내에게서 어떤 냄새를 맡았다. 평소 아내 몸에서 풍기던 달달하고 진득한 체취와는 달랐다. 다른 냄새와 뒤섞인 냄새는 아니었다. 아내의 체취의 결정적 요소였던 무엇을 한 꺼풀 벗겨낸 듯한 냄새였다. 아내는 자신의 일부를 어느 곳인가에 덜어내고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 「이사」 중에서

자리에 앉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여는 일이다. 창문은 총 삼중으로 되어 있다. 건물 밖 유리창과 건물 안 덧창, 그리고 세상과 나를 경계 짓는 창이 하나 있다. 바로 두 눈이다. 내가 여는 것은 덧창이다. 덧창을 열며 두 눈도 함께 연다.
--- 「창문을 여는 일」 중에서

다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과 다르다는 것인가. 이곳은 다른가, 다르지 않은가. 다르게 보아야 하는가, 다르게 보지 않아야 하는가. 그런데 다르게 보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다르게 보되 ‘다르다’는 말로 끝낼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르게 보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다름 자체가 아닐까.
--- 「물왕멀」 중에서

어떤 순간을 기억으로 저장하지 않기 위해서는 바로 다음 순간 기억을 소등하면 되었다. 기억하지 않으면 애써 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차피 어떤 기억도 완벽한 진실이 아니다. 기억도 글자처럼 변형되기 때문이다. 완벽한 기억의 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칸마다 정확한 기억을 정확한 자리에 끼워맞추어야 하는데, 기억할 때마다 크기도, 모양도 달라지는 것이 기억의 속성이었다.
--- 「낙원맨션」 중에서

삶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단순해질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크기로 축소될 수 있을까. 인터넷 창의 최소화 버튼을 누르듯 삶을 최소화하면 줄어들다 못해 아예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삶에 꼭 있어야 할 최소한의 것들만 남긴다면 어떨까. 그렇게 줄어들 대로 줄어든, 더이상 줄어들 수 없을 만큼 줄어든 면적에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이라는 것이 지속될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 「최소화의 순간」 중에서

가장 강하게 실감하는 것은 대상 모를 상실감이었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 몰라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 「행갈이」 중에서

독백은 고백의 형식이다. 아무런 언쟁도 갈등도 폭력도 없이 관계의 항상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침묵으로서의 소통 방식. 병은 나의 밥을 차려주고 속옷과 이불을 빨고 내 방을 청소하는 틈틈이 독백을 하고, 나는 병의 말을 받아 적으며 그의 독백을 견딘다. 나는 병의 죽음을 바라면서도 그의 영생을 빈다. ㅂ으로 시작되는 모든 글자들처럼 그가 돌연 내 눈앞에서 사라질까봐 두렵다.

--- 「ㅂ의 유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정서적?시간적 흐름을 가르는 경계
“유리문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안에 남았고
유리문을 넘을 수 없는 사람은 밖에 남았다”


방우리 작가는 현대인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공허감, 불안, 단절감, 고립감 등의 보편적인 정서를 섬세한 언어로 그려내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김승옥 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받은 「이사」다. 옆집 아이 수아의 부탁으로 엉겁결에 맡은 개를 잃어버리는 사건을 계기로 부부 사이에 미묘한 갈등과 균열이 생긴다. 그동안 남자가 유예라고 이름 붙이고 제멋대로 일시 정지 버튼을 눌러놓았던 시간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흐르면서 현실과 마주한 남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미세하게 틈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를 작가는 냄새와 경계로 그 징후를 보여준다.

“그 밤 내내 남자는 아내에게서 어떤 냄새를 맡았다. 평소 아내 몸에서 풍기던 달달하고 진득한 체취와는 달랐다. 다른 냄새와 뒤섞인 냄새는 아니었다. 아내의 체취의 결정적 요소였던 무엇을 한 꺼풀 벗겨낸 듯한 냄새였다. 아내는 자신의 일부를 어느 곳인가에 덜어내고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_20쪽

이러한 징후는 「창문을 여는 일」에서도 나타난다. 내가 사무실 자리에 앉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창을 여는 일이다. 그때 세상과 나를 경계 짓는 또다른 창, 두 눈도 함께 연다. 창밖의 한 연인을 보며 상상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멋대로 끼어든다. 「창문을 여는 일」은 안과 밖을 가르는 창에 빗대어 보이지 않는 벽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절감을 묘파한다.

잊히고 사라진 공간, 기억의 진실
“앉아서 올려다보면 보이는데, 일어나면 사라지는 풍경
일어나면 보이는데, 앉으면 없어지는 풍경”


한편으로 「창문을 여는 일」은 사무실과 아파트 공터가 이야기의 주무대인 만큼 장소성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물왕멀」과 「낙원맨션」도 마찬가지다. 「물왕멀」은 1960년대에 형성된 성매매 집결지 미림촌을 배경으로 한다. 도시 재생사업으로 낯선 냄새를 풍기며 이방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을은 그 이전부터 “끊임없이 무언가 다른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마을의 현재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미림촌에 정착한 화자인 나의 시선을 통해 한 지역의 사람과 삶을 이해하는 동시에, 도시의 변화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어차피 어떤 기억도 완벽한 진실이 아니다. 기억도 글자처럼 변형되기 때문이다. 완벽한 기억의 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칸마다 정확한 기억을 정확한 자리에 끼워맞추어야 하는데, 기억할 때마다 크기도, 모양도 달라지는 것이 기억의 속성이었다._102쪽

「낙원맨션」의 계단이라는 공간은 기억 속의 장소 낙원맨션으로 이어진다. 낙원맨션은 화자인 지나가 아홉 해 동안 살며 계단 오르내리기 방법을 터득했던 곳이다. 위층과 아래층을 나누는 벽이 없는 가장 평등한 곳, 하지만 하나의 난간으로 이어진 곳인 계단은 지나에게 매우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다. 기억의 연속성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각자가 선택한 진실을 진짜 진실이라 믿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불완전한 기억의 진실에 대한 진실과 선택한 진실에 대한 삶의 방식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은 여전했다
실체 없는 상실감까지 서랍 속에 봉하지는 못했다”


특별히 불행해서 불운을 겪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운수다. 「최소화의 순간」은 평범한 가족이 교통사고, 실직, 실명 등 사소한 불운을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 근수와 선혜를 통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운을 겪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차근차근 무언가를 하나씩 잃어버”리고 최소한의 것들만 남았을 때 그것을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 삶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사전적 의미로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없어졌거나 지나간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를 뜻하는 흔적은 이미 상실을 내포하고 있다. 존재해야 할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이러한 상실의 흔적은 「행갈이」 「ㅂ의 유실」에서도 드러난다. 「행갈이」의 등장인물 현수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 몰라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즉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것에 대한 흔적과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ㅂ의 유실」에서 나는 ㅂ이라는 글자가 사라짐으로써 자신의 언어 체계가 금이 가고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이 무너지고 나서야 버리고 싶고 떠나고 싶은 모든 것이 자신을 지탱해주었음을 깨닫는다. 그중에는 “저채도 저명도 인간”으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 사라질 수조차 없었던 병도 있었다. 병의 유일한 동생이자 세탁소집 막내인 정인 나는 ㅂ을 되찾고 병이라는 글자가 병이라는 사람의 총체임을 깨닫는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소유정은 “정에게 병은 가족으로서도, 이해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존재로 유효”하고 애증 섞인 감정으로 점철된 아이러니한 정 자신을 돌아보려는 시도라고 해석한다.

추천평

방우리 소설 안에 사는 사람들과 개들은 서로를 향해 게두덜거리지 않는다. 사물 혹은 한 컷의 사진처럼 그냥 그렇게 있다. 그렇게만 있는데도 소설을 관통하여 모든 흐름을 장악한다. 어미의 젖을 문 강아지와 성견, 제 긴 혀를 한입에 머금지 못하는 늙은 개의 시선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방우리는 첫 책을 내는 신인다운 패기로 그 방백의 자리에 개들의 눈빛과 사람들의 침묵을 부려놓는다. 저녁 어스름한 빛을 따라 사물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개 짖는 소리가 유난히 진하게 들리는 그때가 바로 방우리의 소설을 펼쳐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 이은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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