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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출간기념 파티 | 부희령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 | 이경란 이것은 소설인가 | 고은규 2부 설탕공장이 있던 자리 | 반수연 우스운 사랑들 | 박이강 편지의 시절 | 하명희 시립 도서관의 이면 | 이상욱 가정식 레시피―이별하는 밥 | 한지혜 3부 ㅂ의 유실 | 방우리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이 | 김학찬 시간유영담 | 채기성 도서관의 괴물 | 정명섭 〈변강쇠가〉 해설 | 김종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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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소설 쓰는 사람이나 소설을 읽으니까. 수녕은 쓸쓸한 기분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요즘 붓과 물감으로 미술 하는 사람이 어딨나. 요즘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는 사람이 어딨나. 모두 지난 세기의 유물이야. 이런저런 트집을 잡다가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끼리끼리 모이는 거지.
---「출간기념 파티」중에서 책장을 주워 남자에게 내밀었다. 흠, 하고 책장을 받아 든 남자는 옆에 준비된 풀을 발라 벽에 붙였다. 풀을 바르기 전 잠깐 손을 멈추는 걸 보았다. 양면에 활자가 가득 인쇄된 책장의 어느 면이 뒷면이 되어야 마땅한가, 같은 별것 아니지만 진지한 고민이 느껴졌다.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중에서 나는 나미의 책이 집에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장을 뒤졌다. 책 먼지를 양껏 들이마신 후 나는 나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혐오를 느꼈다. ---「이것은 소설인가」중에서 애나는 시집일 거라 확신했다. 방에 그걸 가져다놓고 잠들기 전에 한 번씩 꺼내 보았다. 언젠가 한글을 알게 되면 읽기도 하고 외우기도 해야지. 월급을 받아 갈피 사이사이 돈을 끼우며, 어쩌면 그리움에 관한 시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애나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아니 그런 것이길 바랐다. 그런데 이건 그런 게 아니다. 이런 걸 책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설탕공장이 있던 자리」중에서 잘못된 약속. 남자는 그 약속 때문에 일이 꼬여갈 때마다 자신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약속이 고약한 우연과 겹칠 때 인생은 우리에게 혹독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걸 그는 알지 못한 것이다. ---「우스운 사랑들」중에서 들어주고 받아주고, 쓸어 담아야 할 것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면서도 저녁마다, 밤마다 쌓이는 외로움이 아픔인지 고통인지 몰라 헤매며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털어놓고 있었다. ---「편지의 시절」중에서 사람들은 느리고 무거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느리고 무거운 시간 속에 파묻혀, 느리고 무겁게 책을 읽었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립 도서관의 이면」중에서 혼자는 태어나도 혼자는 죽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버려진 삶을 구하는 이들은 있어도 버려진 죽음을 맡으려는 이들은 없어 보였다. 가족이란 건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돕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정식 레시피―이별하는 밥」중에서 걸음을 뗄 때마다 물러나는 지평선에 다가가는 심정으로 평을 바라보며, 병은 처음으로 마음이라는 부위의 위치를 감각했다. 숨이 턱 막힐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다. ---「ㅂ의 유실」중에서 저는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당신이 저를 바라보는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해보려는 사람은 반드시 저를 찾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직 저만이 줄 수 있는 충만함이 그리웠을 겁니다. 환영합니다. 당신에게 제가 품고 있는 무수히 많은 키(key)를 내어드리겠습니다. 만족스러운 순간도 남겨드리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이」중에서 시간에 대해 말하자면 무력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수현이 존재했던 시간과 가까워질 수 없다. 그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어떤 가능들에 대해 떠올리는 순간조차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까. ---「시간유영담」중에서 “얼음 세상은 너무 싫어. 따뜻한 세상이 올 거야. 언젠가 언젠가 그날이 올 때까지, 꽁꽁 얼지 말고 버텨요. 우리 모두 그때까지 반드시 버텨요.” ---「도서관의 괴물」중에서 남자는 옹녀와 관계를 가지면 당연히 죽었고, 피부 접촉만 있어도 죽었고, 심지어 옷자락을 스치기만 해도 죽었다. 몇 년 동안 너무 많은 남자가 죽어 반경 120킬로미터 안에 성인 남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변강쇠가 해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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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너머 이야기의 하모니
‘당신이 생각하는 책은 무엇인가요?’ 이번 소설집에서는 작가들이 ‘책’과 관련하여 어떤 독창적인 상상을 펼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설가들이 떠올린 책은 모두 다른 모습이다. 지난 세기의 유물처럼 여겨질 정도로 읽히지 않는 물건이기도 하고(부희령, 「출간기념 파티」), 정말 지난 세기의 유물이 되어 핵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으로 쓰이기도 하며(정명섭, 「도서관의 괴물」), 이색 카페의 벽지 퍼포먼스에 활용되고(이경란,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채기성, 「시간유영담」).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교유의 수단이기도 하지만(하명희, 「편지의 시절」 / 이상욱, 「시립 도서관의 이면」), 반대로 갈등을 조장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며(고은규, 「이것은 소설인가」 / 박이강, 「우스운 사랑들」), 가난한 자가 그리던 이상이자(반수연, 「설탕공장이 있던 자리」), 인생의 은유(한지혜, 「가정식 레시피」)이기도 하다. 각 작품은 독자에게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삶을 새롭게 해석하게 한다. 책이란 단순한 정보의 저장소가 아니라 우리 존재와 연결된 다층적인 사물이다. 직접적으로 책을 겨냥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책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문장이 많다. “숱하게 시간을 유영해 그 사람을 향해 가는 건, 동시에 나의 존재와 의미를 알아가는 거였어”(「시간유영담」)는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잘 보여준다. “늘 어딘가 다른 곳에 존재하리라고 막연히 믿었던 자신의 진짜 삶을 향해 한 발 내디딘 듯했다(방우리, 「ㅂ의 유실」)”는 책을 읽으며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세계와 진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책은 미지의 다수에게 남긴 편지와 같다. 편지를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도, 읽고 무엇을 느낄지도 읽는 사람 마음이다. 쓰는 사람들은 온전한 마음을 담아 읽는 이들에게 가닿길 바랄 것이다. 여전히 읽고 쓰는 사람들이 있기에 교유서가는 이렇게 초대장을 띄운다. 10주년을 기념하는 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우리가 만난 시간이 빛처럼 깜빡일 때가 있어요. 문득 안부 인사 내려놓고 가려고요. 다 달빛 때문이에요.”(「편지의 시절」) ※ 교유서가는 2014년 3월 문학동네출판그룹의 임프린트로 시작하였습니다. 거리의 역사학자 故 이이화 선생께서 조선 중기의 학자 허균의 호 교산(蛟山)에서 ‘蛟’를,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의 당호 여유당(與猶堂)에서 ‘猶’를 집자하여 브랜드명을 지어주셨습니다. 교유서가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 〈교유서가 첫단추〉, 〈교유서가 어제의책〉, 〈교유서가 다시, 소설〉 시리즈 등과 문사철(文史哲) 분야의 인문교양도서를 꾸준히 펴내고 있습니다. 2019년 6월에 ‘서로 사귀어 놀며 오가는 집’이라는 뜻의 교유당(交遊堂)이라는 법인으로 전환하였으며, 에세이 및 환경·종교 분야의 ‘싱긋’, 영유아 분야의 ‘꼬마싱긋’, 경영과 자기계발 분야의 ‘아템포’라는 출판브랜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