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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연구 기자의 이상한 하루_박생강
귀향_백이원 삼색 고양이를 따라가면_김경희 긴 코와 미스김라일락 강병융 구름기期_김학찬 최애의 후배_김의경 두 겹의 웃음_전석순 안부_정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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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양수연 편집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사연구》의 오랜 전통은 취재가 끝나면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일 취재 사건에 대해 보고하는 것이다. 수사팀의 팀장에게 보고하는 식으로. 그 사건의 흥미로운 점이라거나, 그 사건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 같은 것들. 특별한 게 없을 때면 그 경찰서 주변의 밥집 정보 같은 거라도 보고했다.
“박기자님, 취재는 잘 마무리하셨어요?” 양수연 편집장님의 목소리는 약간 쉬어 있었다. “잘 끝났습니다. 파출소 탐방이라 특별한 사건에 대한 이슈는 없었고요. 이곳에서 관리하는 항구 주변을 오가는 배가 워낙 많아서 선박사고나 이런 것들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네요. 또 여름부터 갈치낚시 축제가 있어서…….” 그때 나는 근대문화 거리를 따라 구 일본영사관, 현재는 근대역사관 건물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나무숲에 둘러싸인 그 붉은 건물이 있었다. 사진으로 찍으면 판타지 속의 마법학교처럼 보일 것도 같았다. 실제로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배경지로 유명해진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전화통화를 하면서 내가 계단에 발을 내딛는 사이 뱃고동보다 낮고 어딘가 목이 쉰 울음 같은 것이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그 소리는 사라졌다. 다만 내내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검은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사연구 기자의 이상한 하루」중에서 여자가 제주에 있다 다시 양동으로 나왔을 때 그 애는 정명여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느냐고 여자가 묻자 그 애는 조금 망설이다가 배운 것을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뭐든…… 좋겠다고 우물거렸다. 이번엔 그 애가 물었다. 무엇을 하겠느냐고. 여자는 나도 그 비슷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 비슷한 것. 배운 것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일. 제주의 혹독한 바다에서 배웠던 것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호흡하던 것. 그것을 반드시 써먹고야 말겠다는 비릿하고 지독한 의지가 여자에게는 있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애를 본 일도, 양동에 머물렀던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극단에 들어갔고, 막간 무대에서 노래하다가 오사카의 음반회사 사람에게 발탁되었다. 그 기회를 잡아 오사카로 넘어간 여자는 정식 가수로 음반을 취입했다. 데뷔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여자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호흡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창법은 뭇사람들의 귀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어 낸 음반으로 여자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막간 가수에서 조선 최고의 디바가 되기까지 크고 작은 부침이 없었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양동에서 겪은 가난과 제주에서 했던 물질에 비하면 지금의 일들이야 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당차고 당돌한 구석이 있는 여자의 성격과는 별개로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애달픈 정서를 속절없이 일으키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울음을 우는 듯한 바이브레이션과 맑고 가는 목소리의 조화가 그랬다. 여자의 노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서글픈 파형의 울림이 식민지 조선의 비애를 타고 팔도를 유랑했다. ---「귀향」중에서 중국집 주인장이 불쑥 말을 걸었다. 나는 그만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눈에 보이고 손이 닿으며 입 안에 고이는 침까지, 모든 것이 가짜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까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서둘러 중국집을 나섰다. 문밖에서 가게를 힐끗 돌아보았다. 어느새 손님들로 가득 찬 내부는 꽤나 분주해 보였다. 그 순간 창가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중깐 두 그릇을 놓고 마주 앉은 중년의 아버지와 어린 딸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문 채 오로지 먹기만 했다. 조명 때문인지 아버지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훔쳐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중년의 남자치고는 순진무구한 눈빛이었다. 나도 그를 따라서 어색하게 웃었다. 수미야, 가볍게 살아. 그제야 허공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비를 피하려 중국집 간판 아래 서 있는데 사라진 삼색 고양이가 어디선가 훌쩍 나타났다. 고양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가짜 하품을 했다. 이 순간이 어색하거나 지루한 거겠지. 나는 천천히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돌연 하품을 멈춘 고양이가 낮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냐- 냐- 간헐적인, 그러나 규칙적인 울음소리였다. ---「삼색 고양이를 따라가면」중에서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노이즈 캔슬링을 캔슬시켜버리는 굉음을 내며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기차는 그렇다. 높이가 아닌 길이와 속도와 소리로 웅장미를 준다. 그 앞에 서면 더욱 추해지고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 웅장함 안으로 어서 들어가 하나가 되어버리고 싶게 한다. 비교를 할 수 없도록, 그 대상 안으로 사라져버리는, 숨어버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기차는 그렇다. 옆자리인 복도 측에 아무도 앉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창 측에 앉아 코를 차창에 묻는다. 9시 46분이 되자, 차창 밖 풍경이 천천히 움직인다. 영등포역을 떠난 기차는 4시간 54분 후에 목포역에 도착할 예정이다. 밖은 아침부터 무덥지만, 객차 안 공기는 과하게 차다. 차가운 공기는 살며시 아래로 가라앉는다. 바닥의 먼지 송이들이 찬 공기를 머금고 스멀스멀 위로 상승한다. 그리고 코끝을 다소 불쾌하게 자극한다. 불쾌함이 긴 코를 타고 올라온다. 코끝이 찌릿찌릿해진다. 몸이 살짝 뒤틀리면서 재채기가 나오려 한다. 코가 파르르 떨린다. 어금니를 꽉 깨문다. 양팔에 닭살이 돋는다. 아무리 애를 쓰고 참아보려 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참다 참다 터진 것들이 다 그렇듯, 꽉 다문 입을 통해 터져 나온 재채기는 지나치게 과하다. 재채기답지 않게 기괴한, 꽤 비정상적인 콧소리를 내며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키우라! ‘키’는 크고 높은 톤으로, ‘우’는 짧게, ‘라’는 들릴 듯 말 듯 하게. 재빨리 입을 닫아보지만, 코는 닫을 수 없다. 비정상적인 재채기는 객차 곳곳으로 퍼진다. 사람들이 재채기에 불편한 표정을 보이진 않지만, 나는 그들의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객차 안 차가운 공기와 타인들의 불편함과 나의 미안함을 싣고 기차는 움직인다. 목포행이 시작된다. ---「긴 코와 미스김라일락」중에서 협박과 회유, 거래와 흥정 다음은 착각과 기만인가. 착각과 기만도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필요악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달산과 구름이라니, 이 무슨 뜬구름……. 설마 나를 이 기회에 멀리 내다 버리려고? 여행은 갈 수 있다 치고, 왜 목포일까. 고령군은 대구의 서남쪽에 있다. 여행이 목적이라면 동해도 있고 남해도 있고 속리산도 있다. 고령에서 목포는 너무나 멀어서 (최대한 멀리 가서 버릴 계획인가?) 고령과 목포의 관계는 비르 타윌과 페가수스 별자리의 닮은꼴 관계와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합천에 들러 해인사를 보고-진주에 들러 남강을 구경한 다음-하동을 거쳐-보성 녹차밭을 지나-강진에서 다산 초당에 인사를 드리고-월출산 국립공원을 걸어본 뒤-목포로 가겠다고 했다. (3박 4일 동안? 여행과 원정을 혼동하는 걸까?) 계약대로 3박 4일을 버티면 되는 일이었지만, 실직 직전인 1998년의 아버지는 확실히 이상하거나 어색했다. 노령산맥 마지막 봉우리의 유달산이 어쩌고……. 물론 2014년의 아버지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고 2023년 지금의 아버지는 달라질 수도 없지만 1998년의 아버지는 분명히 그냥 그런 아버지였다. (김 작가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버지에 대한 불손한 농담을 늘어놓고 있지만 사실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포장해줄 순 없을까? 누가? 물론 당신이?) ---「구름기期」중에서 드라마에서 봤던 건물이 위용을 뽐내며 눈앞에 서 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계단을 두 칸씩 오르는 그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역사관 앞에서 숨을 고르던 그는 내게 아이폰을 건네며 건물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역사관 안으로 들어서며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장만월이 “어서 오세요. 델루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며 맞아줄 것 같았지만 목포의 역사가 전시된 역사관 내부는 경건한 분위기였다. 그동안 목포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목포가 항구도시라는 것뿐이었다. 역사관에는 일제에 수탈당한 목포의 슬픈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목포는 개항 이후 항구도시로 발달하면서 다양한 노동자 계층이 형성된 도시였다. 일제 치하 노동자의 현실은 열악했으므로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노동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목포는 노동운동의 성지이자 항일민족운동의 성지였다. 내가 목포의 역사를 곱씹으며 역사관을 돌아보는 동안 아저씨는 옆에서 아이유의 역사를 읊었다. “아이유는 오디션에 여러 번 떨어졌지만 어린 나이인 열다섯 살에 데뷔했어요. 데뷔무대에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현재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녀가 오랫동안 노력해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그녀가 처음으로 주연으로 발탁된 드라마는…….”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 줄거리까지 줄줄 외는 아저씨 덕분에 목포 근대역사관이 아니라 아이유 역사관을 돌아본 기분이었다. ---「최애의 후배」중에서 여기서부터는 차량으로 서산동 시화마을이나 북교동으로 움직이면 나쁘지 않을 듯했다. 시화마을에서는 일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가장 빠른 길과 오래 걸리는 길을 따로 살펴보기로 했다. 아래에서 봤을 때는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어딜 가나 사람 하나 지나다닐 만한 틈은 있었다. 나와 헌은 각자 다른 길로 들어서서 돌아봤는데 끝에 가선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서로 엇갈려서 다른 길로 내려오다 보니 후미진 모퉁이에서 또 마주쳤다. 아래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가팔라서 나는 중간중간 멈추고 숨을 골라야 했다. 계획 없이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그래선지 길이 일정하지도 않고 꼬불꼬불했다. 일부는 누가 함부로 구겨놓은 듯 우둘투둘하기도 했지만 길은 결국 다 연결되었다. 그사이 시멘트 위에 그대로 굳은 발자국이 몇 개 보였다. 다 마르기도 전에 밟은 탓인 듯했다. 나는 혹시 골목 어딘가에 여전히 덜 마른 시멘트가 있을까 싶어 까치발을 하고 경계하듯 걸었다. 시멘트가 단단하게 굳기도 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자유롭게 둘러봐도 좋을 듯했지만 정미의 생각이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북교동으로 이동해 작가 이름을 달고 있는 거리를 찬찬히 걸으면서 생가까지 들르면 문학기행의 의미도 더 단단해질 것이었다. 옥단이길을 통해 수업 시간에 조별로 연구했던 문학작품 속 인물을 되새겨보는 것도 중요한 과정으로 느껴졌다. 길 중간중간에서 물지게를 지고 있는 옥단이 표식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때라도 물지게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정확히 수평을 맞췄다. 그동안 나와 헌도 길이 좁아지거나 경사가 달라질 때는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기도 했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두 겹의 웃음」중에서 노조 활동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봤던 상담원들은 근속 수당과 명절 상여금 지급이 처음으로 이뤄지자 화들짝 놀랐다. 긍정적인 변화가 피부로 와 닿자 노조 가입을 원하는 상담원이 늘어났다. 그때도 나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노조가 콜센터와 싸워 얻어낸 복지와 혜택은 비노조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됐으니까. 누군가가 나서야 하는 일이지만, 그게 굳이 나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윤하 또한 내게 노조 가입을 강요하지 않았다. 앞날이 밝아 보였던 노조의 행보 앞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A시가 느닷없이 민간위탁 운영하던 콜센터를 직영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A시 퇴직 공무원 출신 인사가 신설된 콜센터 본부장 자리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이후 노조원은 고용 승계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윤하는 A시에 소문의 진상을 밝히라고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A시는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라며 항의를 일축했다. 이 과정에서 불안을 느낀 노조원 상당수가 노조에서 발을 뺐고, 윤하는 고립 상태에 놓였다. 고용 승계 과정에서 윤하를 포함한 노조 간부 출신 상담원 전원이 서류 미비 및 근태를 이유로 해고당했다. 윤하는 SNS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해고는 노골적인 노조탄압이라고 맞섰지만, A시는 공정한 면접을 거쳐 고용을 승계했으니 노조탄압이란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윤하는 거리에서 홀로 직영화와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지만, 아무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윤하를 외면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뒤 윤하는 거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목포로 되돌아갔다는 소문만 남긴 채. ---「안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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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걷는 도시 목포에서 길어 올린 여덟 편의 아름답고 아련한 ‘우리들의 이야기’
여덟 명의 소설가가 꾹꾹 써 내려간 여덟 편의 이야기가 때로는 서글프게,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펼쳐진다. 『소설 목포』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목포를 방문해 느낀 감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고유한 정서와 색깔로 소설을 완성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나며 현재를 걸어 나가는 도시 목포. 그 목포에서 일어나는 색색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나’의 지난 시간과 지금을 마주할 수 있다. 잊고 지낸 꿈을 떠올리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희망을 품어본다. 부디 이곳에서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들, 혹은 잊고 있던 우리의 꿈을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꿈이 머무는 목포! 시원한 바닷바람이 치달아 올라오는 유달산 정자에 앉아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자! 이제 당신의 소중한 꿈을 들려주세요. 목포는 꿈이 머무는 도시이니까요. ─ ‘기획의 말’ 중에서 “시간을 걷는 도시 목포와 소설이 만났다” 박생강 작가의 〈수사연구 기자의 이상한 하루〉는 작가 특유의 위트를 살려 현실 속에 비현실적인 소재를 자연스레 녹여내고 있다. 수사 전문 잡지 『수사연구』의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취재차 떠난 목포에서 벌어진 일을 실감 나게 풀어내고 있다. 목포역에 내려 작가로 활동한 초창기부터 알게 된 지인을 만나 나누는 이야기, 남항해양파출소에서 취재하며 만난 막내 순경이 전해준 순경의 할머니에게 들었다는 20세기 초에 목포에서 유행한 복권을 추첨하는 만복동 고개에서 들렸다는 괴물 달의 울음에 대한 이야기, 취재 내용을 전하려 편집장과 통화하며 나누는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펼쳐진다. 이 소설에는 작가 자신을 포함해 문학평론가, 잡지사 편집장 등 등장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하는데,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을 바로 옆에서 들려주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 기울이는 사이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에 스며들 듯 빨려들어 만복동 고개에 오르면 소설에 나오는 ‘달’이라는 괴물을 마주칠 것만 같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달,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다른 한 가지를 앗아간다는 달. 백이원 작가의 〈귀향〉은 탄탄한 구성으로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가 돋보인다. 목포 하면 떠오르는 노래 ‘목포의 눈물’. 목포시 죽교동 유달산 중턱에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으로 1930년대에 발표된 이후 나라를 잃은 한을 담아낸 가사와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난영의 애달픈 정서를 일으키는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소설은 이 노래가 나오기까지 일어난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그려내고 있어 영화를 보는 듯 장면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목포 유달산 북쪽 마을 양동에서 태어나 “여자는 물질만 배우면 그만”이라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란 여자. 학교에서 만난 동생이자 동네 친구가 사라졌다. 준인지 준코인지라는 이름으로 독립운동을 한다는 소문만 남긴 채. 여자는 준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준을 떠올린다. 준의 꿈을 떠올려본다. 자신은 극단에 들어가 음반을 취입해 비음 섞인 목소리와 자유로운 호흡을 구사하는 창법으로 조선 최고의 디바가 되었지만 그 아이는……. 배운 것을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뭐든 좋겠다던 그 아이는 자신의 꿈을 펼치며 살았을까. 김경희 작가의 〈삼색 고양이를 따라가면〉은 담담하게 풀어내듯 들려주는 문장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날 우연히 아파트 공동 현관에서 만난 삼색 고양이. 애초에 고양이에 관심이 없는 여자였지만, 자신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고양이를 집으로 들인 여자.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사이가 되어버린 남편이 이에 발끈하고, 여자는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안은 채 집을 나선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방문한 목포를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홀로 다시 찾은 것. 신기하게도 아버지와 묵었던 목련하우스가 여전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아파트에서 만났다 잃어버린 삼색 고양이를 닮은 고양이가 목포에 나타났다는 사실. 놀라움도 잠시, 고양이를 따라가자 나타난 중화식당.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들렀던 곳인데, 시간이 멈춘 듯 그때 먹은 메뉴도 음식 가격도 그대로다. 여자는 아버지의 권유로 먹었던 중깐을 먹으며 아버지와 나눈 추억을 떠올린다. 중년의 아버지와 어린 딸을 그리며 떠난 여행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를 응원한다. 강병융 작가의 〈긴 코와 미스김라일락〉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만큼이나 제목과 구성이 재미있다. 부분적으로 한 행씩 죽 나열된 글이 있는데, 각 행의 앞 글자를 세로로 읽어도 글의 내용이 연결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나’는 늘 나의 긴 코로 인해 괴롭다. 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중학생들에게 긴 코 때문에 걸려서 맞는 대신 할아버지에게 받은 용돈을 뜯기고, 소개팅을 하기 위해 탄 열차 안에서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바람에 재채기를 참아내지 못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다. 이러한 과정에서 난감해진 나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한 글을 읽다 보면 주인공인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자꾸 웃음이 난다. 아, 물론 당연히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길 걱정하는 마음을 동반한 웃음이다. 이처럼 코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내다 엄마가 간절히 소개팅을 제안해 목포행 기차를 탄다. 미스김라일락 카페에서 만난 미스 김. 놀랍게도 ‘나’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는 미스 김을 만난 후 돌아가는 기차 안, 설렘으로 가득하다. 앞으로 둘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질까? 김학찬 작가의 〈구름기期〉는 주인공의 속마음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오래전 ‘나’의 여정에 동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누나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가족이 흩어지기 전에 목포로 가족여행을 떠나자는 아버지의 제안에 여행 최종 목적지인 목포도 여행 목적도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게임기를 사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에 넘어가 3박 4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난다. 경상북도 고령에서 전라남도 목포로 떠난 여행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들었던 지역감정으로 인해 불편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지역보다는 오래된 캐피탈이 굴러간다는 것에 더 관심 있어 한다는 걸 경험하며 사라진다. 그보다는 여행 내내 어디서 마련했을지 모를 떡볶이를 먹고 있는 누나가 신기했을 뿐. 이후 누나는 수업이 없는 날과 주말이면 집에 머물렀고, 나 역시 공익근무 요원으로 집에서 출퇴근했기에 나의 가족은 아버지의 걱정보다 오래 함께 살았다. 아버지가 떠나고 아버지가 향한 곳이 왜 목포였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아내와 함께 목포로 떠난다. 내가 찾는 것은 아버지가 목포를 선택한 이유일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일까. 김의경 작가의 〈최애의 후배〉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차분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어 그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팬으로서 품은 마음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만이 아니라 그 주변까지 밝게 만드는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소설을 보며 새삼 느낀다. 싱가포르에서 찾아온 아이유의 팬이자 인스타그램 친구인 외국인 아저씨가 한국에 찾아온다. 아이유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다는 이유로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어 아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게 전부인데, 아이유가 다닌 고등학교에 데려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아이유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았던 나는 불편한 마음이 들지만 실직 상태이기에 가이드를 해주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아저씨의 말에 집을 나선다. 상기된 얼굴로 학교를 구경한 아저씨가 이번에는 아이유가 등장한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인 목포 여행에 가이드해줄 것을 부탁한다. 둘은 그렇게 목포를 향해 떠나는데, 차 안에서 그리고 드라마 촬영지인 목포 근대역사관에서 좋아하는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전석순 작가의 〈두 겹의 웃음〉은 아픈 상처를 지닌 후배를 조심스럽게 배려하는 태도로 차분히 써 내려간 글에서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로 없어진 문학기행 일정이 다시 잡히는 바람에 얼떨결에 사전답사를 맡게 된 나와 후배 헌의 목포 여행이 시작된다. 과거에 나는 남자친구인 정훈과 내장산에 가려고 탄 기차에서 다투는 바람에 종착역인 목포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헌은 어떤 흔적을 찾아 혼자 갔었는데 아픈 상처와 마주할 자신이 없어 차마 가지 못하고 가려던 곳 주변만 어슬렁거리다 떠났다. 둘은 기차에서 내려 목포역 주변을 둘러보며 그 주변이 과거와 같은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기억을 더듬는다. 문학기행의 목적인 목포문학관과 예술인 거리를 중심으로 주요 관광지를 세심히 살핀다. 과거에는 예정에 없었거나 혹은 계획과 어긋나게 돌아다닌 장소를 이번에는 확실한 목적을 두고 찾은 셈이다. 둘은 함께 걷다 때로는 엇갈리다 다시 마주치며 동행한다. 과거에 헌이 차마 닿을 수 없었던 장소까지……. 정진영 작가의 〈안부〉는 우리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한 대상을 세심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써 내려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좋은 가정환경도 좋은 학벌도 없는 여자인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다 콜센터에 취직해 통제된 환경에서 종일 울리는 전화를 받는다. 회사가 제공하는 단 하나의 숨통을 트일 곳인 흡연실로 나를 이끌어준 윤하와 친밀한 사이가 된다. 윤하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란 후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콜센터에 취직했다. 어느 날 콜센터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베테랑인 경희 언니가 민원인의 욕설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후 콜세터를 떠난다. 이 일이 있은 후 윤하는 ‘살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다. 꾸준한 활동으로 근속 수당과 명절 상여금이 나오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지만 콜센터가 민간에서 위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윤하는 해직된다. 윤하가 주도하는 노조활동에도 또 윤하가 해직된 후 거리에서 철야농성을 할 때도 동참하지 못한 데 대해 내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나는 윤하가 떠난 뒤 술을 좋아하는 본부장의 성추행에 휘말려 쫓겨나듯 회사를 떠난다. 무거운 짐을 지고 무척이나 외로웠을 윤하를 떠올리며 나는 그렇게 윤하가 있는 윤하의 고향인 목포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