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간 적이 있어요. 보고 즐길 것이 많았던 그 곳에서 제일 먼저, 가장 오래한 일은 보르헤스의 흔적 위에 서있는 것이었어요. 그가 살았던 곳, 일했던 곳, 걸었던 곳, 차를 마셨던 곳, 그의 이름이 남아 있는 곳, 그의 사진이 붙어 있는 곳들을 찾아다녔어요.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죠. 한 명의 죽은 작가를 살려, 심지어 그의 모국어로 완벽하게 구사할 대화할 기회를 준다면 저는 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로 루이스 보르헤스를 부활시켜 아르헨티나말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대화까지는 바라지 않을게요. 그저 그의 말을 직접 듣고 싶어요. 그의 단편들을 사랑합니다. 『불한당들의 세계사』, 『알렙』, 『칼잡이들의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기억』, 『픽션들』은 멈추고 생각하고, 다시 읽게 만드는 그래서 다시 멈추고 생각하고 ‘공부’하게 만드는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상상동물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보르헤스를 처음 만났던 20대 때, 철모르고 무식하고도 용감하게 ‘제 방식대로’ 보르헤스 따라 하기를 해본 것들의 결과물이 『상상인간 이야기』였습니다. (제목에서부터 느낌이 오시죠?) 지금 생각하면, 사실 그 때에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시도였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감추고 싶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