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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기』
모범택시를 타는 순간 타작 귀가 ①②③④⑤ 영재 은이와 같이 구름기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이 끗 미당시문학관 해설│끝, 없는 이야기 이만영(문학평론가, 전북대 교수) 『투암기』 1부_의연해야지. 하지만 울고 있었다. 1. 탄생 / 2. 납득 / 3. 복용 / 4. 발견 / 5. 생로병사의 비밀 / 6. 책 / 7. 부작용 / 8. 광고 / 9. 노벨상 / 10. 외래 / 11. 기념 / 12. 업무 / 13. 오해 / 14. 걷기 / 15. 생일 / 16. 여행 / 17. 독서 / 18. 새 옷 / 19. CT와 MRI / 20. 결과 / 21. 무지 / 22. 표명 / 23. 수다 / 24. 아침 / 25. 금주 / 26. 화장실 / 27. 독서 / 28. 중간고사 / 29. 손톱 / 30. 운전 / 31. 샤워 / 32. 통증 / 33. 빨래 / 34. 일기 / 35. 여행 / 36. 무제 / 37. 의식 / 38. 영화 / 39. 작업 / 40. 문득 / 41. 요리 42. 오타 / 43. 1일 / 44. 2일 / 45. 문학사 / 46. 산 / 47. 연락 / 48. 추위 / 49. 체중 / 50. 꿈 / 51. 검사 / 52. 야구 / 53. 추위 / 54. 검진 2부_작가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소설가가 되었으니- 조금 더, 글을 쓰다 떠나겠다 의연해야지 하지만 울고 있었다 _최수경(김학찬 작가 아내, 국어 교사) 안녕, 우리의 풀빵아! _이은선(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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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고참이 꽉 쥔 주먹을 내 눈앞에 대고 물었다. 이 주먹 틈으로 뭐가 보이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이게 앞으로 니 군 생활이다. 전역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 「『구름기』 - 모범택시를 타는 순간」 중에서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부흥회,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에 감동을 느끼는 교인은 없었다. 교회 일이 몸에 밴 오십대 초반의 한 목사의 소망은 오직 하나, 성전을 짓는 것뿐이었다. 돈 좀 있다는 집사들도 자기 집만큼 성전에 관심이 많았다. 건축 헌금을 빌미로 돈과 장로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 「『구름기』 - 타작」 중에서 다들 우리 가족을 새터민이라고 불렀다.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탈북자라고 귓속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왜, 있잖아, 거기에서…… 새터민이라고 해도 마치 탈북자라고 부르는 것같이 들렸다. 탈북자라는 말은 마치 배신자라는 말처럼 들렸고 새터민이라는 말은 어딘가 어색했다. 하긴, 빨갱이라고 부르며 화부터 내는 사람도 있었다. --- 「『구름기』 - 귀가」 중에서 객관식 시험을 만든 사람은 분명 천국에 갔겠지. 천국에서 매일 시험문제를 만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객관식은 어쩐지 항상 옳을 것만 같았다. 객관적인 사람이야, 객관적으로 보면, 이런 말들은 소리조차 공평하게 들렸다. --- 「『구름기』 - ①②③④⑤」 중에서 혀로 침방울을 잘 만드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침방울을 잘 만드는 아이다. 윗몸일으키기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윗몸일으키기를 잘하는 아이다. 침방울과 윗몸일으키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모두가 피곤해진다. --- 「『구름기』 - 영재」 중에서 내 기억, 대충 맞지? 솔직히 아빠 이야기는 나중에 또 들어도 될 줄 알았어. 어차피 했던 이야기도 또 하고, 두서는 없고, 대여섯 번 들어야 앞뒤 사건이 연결도 되고, 아빠야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했던 이야기만 또 할 게 뻔했으니까. 몇 번이고 지나간 이야기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지나갈 수 없다는 걸 몰랐네. 녹음이라도 해둘걸 그랬어. 아빠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한테 물어봐야 해.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또 쓸데없는 걸 묻는다고 하겠지. 그리고 시집살이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를 시작하겠지. --- 「『구름기』 - 은이와 같이」 중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구름기期가 있대. 구름 위에 올라탈 수 있다는 마음, 구름 위 세상을 받아들이는 믿음, 구름보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모르던 때를 구름기라고 부른대. 흩어져도 다시 만나는 구름을, 똑같은 구름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대. 참, 여보,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까? 진짜 구름은, 얼룩이 있어야 해. 어두운 부분이 있어야 하얀 구름이 몽실하게 보이지 않겠어? (그럴듯하지?) 그래, 안타깝게도 구름에 올라타면 떨어진다는 과학적 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불행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구름을 믿고 살아야 하고. --- 「『구름기』 - 구름기」 중에서 저는 언제나 당신 주변에 머물렀습니다. 당신이 의식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저를 보지도 않고 타이핑할 수 있게 되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십니까? 익숙해지면 놓치기 마련이니까, 당연히 잊었겠지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키 하나하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당신의 눈동자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뜻이 화면에 그대로 표현되었던 순간의 설렘도, 신중하게 누르던 당신의 손가락 끝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괜찮다니까요. 저는 당신 편입니다. --- 「『구름기』 -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이」 중에서 사람들은 좋은 패만 쥐면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화투는 실력과 무관하고, 진 이유는 어디까지나 운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글쎄요, 당신은 운이 좋으면 반달곰과(상대는 아주 운 나쁜 반달곰이라고 치고) 싸워 이길 수 있으십니까? 운이 좋다는 건 말입니다, 애초에 괴물을 만나지 않는 겁니다. --- 「『구름기』 - 끗」 중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나는 이제 텅 빈 것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부주의하게…… 후회는 소용없다. 글쎄나 하필과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구름기』 - 미당시문학관」 중에서 이미 선고를 받았고, 잠깐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를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언제 기습적으로 구속당할지 모른다는 말은 남은 시간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 p.42 「『투암기』」 중에서 다른 것은 들리지 않았다. 수업을 해도 된다는 말도, 여행 이야기도 상관없었다. 남은 시간을 보내라는 것, 몇 년이 남았다는 것, 달 단위의 시한부는 아니라는 것.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낫는 병이 아니라고 했다. 무엇을 해도 된다는 말은 무엇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내 일을 해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 p.55 「『투암기』」 중에서 어떤 오해가 생기더라도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오해 또한 렉라자맨이 감당해야 할 무게니까. 의사 말대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는 건 불가능하다. 다른 길을 걷는 법을 배우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 --- p.65 「『투암기』」 중에서 더이상 책을 읽어서 뭐 하냐는, 무의미의 덫에 걸리기도 했다. 비싼 밥 먹어서 뭐 하나, 아는 사람 만나서 뭐 하나, 또 술 마셔서 뭐 하나. 이 마수에 따르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무의미의 덫이 무서운 이유는, “뭐 하나”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뭐 하나”를 부정하기 어렵다. 렉라자맨에게는 평생 싸워야 할 질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나는 질문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떨치기 힘든 물음이다.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뭐 하나”에서 벗어나야 한다. --- p.125 「『투암기』」 중에서 세차장에 가면 제일 먼저 좋아하는 라디오를 찾는다. 나머지는 대충대충 한다. 시작할 때 넘치던 의욕은 늘 이십 분쯤이면 바닥나기 때문에, 뒷일은 적당히 하다 마무리할 것을 알고 있다. 기실 세차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그랬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힘을 낸다거나, 마지막에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한다거나 하는 건 잘 되지 않는다. 처음 시작할 때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그 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늘 어렵다. 언제나 시작은 힘차게, 중간은 적당하게, 마지막은 대충대충. --- p.173 「『투암기』」 중에서 모든 부작용은 그냥 오고 문득 사라진다. 이유는 간명하다. 원래 그렇다. “원래”라는 말 앞에서는 어떤 의문도 무효하다. 원론적인 질문을 계속 잇는 것보다 고개를 끄덕인 뒤 부작용에 대처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 p.183 「『투암기』」 중에서 아침에 커피를 안 마시면 삶의 즐거움 하나를 잃고, 효과라도 좋았으면 커피의 즐거움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니 짜증도 난다. 고작해야 커피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기쁨 중 하나를 줄여가는 게 렉라자맨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살 수 있으니까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즐거움을 줄여가다보면, 고작 살아가는 것 말고는 남는 게 없다. 하나씩 소거하고 나면 살아가는 이유가 빈곤해진다. 즐거움의 총량이라고 해야 할까, 총량의 절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을 다시 채우지 않으면 우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괜히 소소한 것을 권하는 게 아니다. --- p.187 「『투암기』」 중에서 아내가 계속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두 해 슬퍼하는 것으로도 길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므로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내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사랑이다. 나는 『투암기』에서 아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아내를 생각하면 『투암기』를 쓸 수가 없다. --- p.219 「『투암기』」 중에서 누나에게만, 고충을 털어놓는다. 미안하지만 한두 사람에게는 말할 수밖에 없다. 정말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버틸 수는 없는 것이다. --- p.222 「『투암기』」 중에서 겨울에는 귤이 싸니까 구내염에 도움이 될까. 사실 이미 귤을 한 박스 먹어치웠다. 노지 감귤이 저렴하게 나왔길래 잽싸게 샀다. 다행히 귤은 괜찮았다. 한 박스씩 산 귤이 맛없다는 건, 그 귤을 모두 먹어치울 때까지 서러운 것이다. --- p.226 「『투암기』」 중에서 좋아하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치료만 받다가 떠나는 것은, 의미를 잃는 일이다. 고통받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환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고 싶은 일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고 참아야 되는 일도 있고 뭔가를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 p.243 「『투암기』」 중에서 병원에 가는 날은 마음을 자리에 앉혀두기가 어렵다. 단어 서너 개를 골랐다가 방을 한 바퀴 돈다. 『투암기』는 따뜻할 수 없는 글이다. 암에 걸렸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꿋꿋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내겠다는 글은 쓸 생각이 없었다. 다만 하나씩, 블랙 유머가 되더라도 웃음은 넣고자 했다. --- pp.248-249 「『투암기』」 중에서 하루가 지났다. 하루만큼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몇 년 동안 이어졌지만 매일 슬펐던 것은 아니다. 나를 잃는 슬픔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몇 시간 정도는 마음이 나아진다. 의욕이나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원래도 의욕 같은 단어는 좋아하지 않았다) 마냥 침묵하는 것도 지겹다. 아침 일찍 아내와 같이 성북동에 있는 빵집에 갔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빵으로 식사를 했다(다음에는 역시 먹던 빵을 사야겠다). --- pp.267-268 「『투암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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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신이 특별히 남기고 싶은 흔적이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故 김학찬 작가의 소설집 『구름기』는 제7회 혼불문학제 최명희청년문학상 당선작을 포함해 청년 시절에 발표했지만 책으로 묶지 않았던 작품과 미발표작, 그리고 2023년에 펴낸 『사소한 취향』 이후 발표한 최근작까지 모두 10편의 단편을 모았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촉수가 예민해야 한다. 일상의 세계를 세밀히 들여다보는 촉수가 있을 때라야 배제되고 소외된 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 존재에 관한 본질적이면서도 범상치 않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언하자면, 김학찬에게는 바로 그러한 예민하면서도 윤리적인 문학적 촉수가 있다”는 이만영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이 소설집에서도 김학찬 작가의 그 ‘문학적 촉수’는 민감하고 예리하게 움직여, 우리 사회의 ‘경계’를 향한다. 고향을 떠나왔으되 아직 새로운 터전에 완전히 스며들지 못한 새터민 가족(?귀가?), 자본주의의 문법을 체득하지 못한 채 체제 밖을 배회하는 아버지들(?은이와 같이?, ?구름기?), 그리고 냉철한 리얼리즘을 기치로 내걸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는 화자(?미당시문학관?)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들’을 그린다. 그들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닿지 못한 채 어중간한 공간에 서 있고, 세계와 자신 사이에 생긴 미세한 균열을 감각적으로, 윤리적으로 인식해내는 인물들이다. 김학찬은 이 경계의 감각을 문학의 본질적인 윤리로 받아들이고, 이를 ‘쓰기’라는 행위의 조건으로까지 밀어붙인다. ?미당시문학관?에서 소설가인 ‘나’는 “냉철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묘파하는 혁명적인 소설만 쓴다”고 공언하지만, 그조차도 결국은 “미당문학관은 고창에 있다”라는 오기(誤記)에서 시작된 소설을 쓰고야 만다. 인과율로 단단히 조직된 현실을 재현하려는 기획은 이렇듯 매번 실패하지만, 그 실패를 자각하고도 다시금 “나는 소설을 쓴다”는 문장을 복원하는 일, 바로 그 행위야말로 김학찬이 말하는 ‘글쓰기의 윤리’이며 ‘실패한 리얼리즘 너머’의 길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이 세계에서 비켜나간 존재들, 실향민과 이방인, 체제의 변두리에서 밀려난 자들의 삶을 예민하게 포착하며, 동시에 그런 인물들을 그려내는 행위 자체의 한계를 뼈아프게 직시한다. 김학찬은 세상을 날카롭게 분석하려 들기보다는, 끝내 이해되지 않는 잔존물들을 붙잡고 천천히 말하려는 작가였다. 그는 말의 실패, 재현의 실패, 리얼리즘의 실패를 껴안으면서도, 그것이야말로 소설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김학찬의 특별한 흔적이고, 소설기에 머물던 작가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서유미) 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다큐의 언어가 아닌 단단하지만 몽글몽글한 문학의 언어로 우리가 사는 진짜 세계를 풀어낼 줄 아는 소설가”(박진규) 김학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신이 특별히 남기고 싶은 흔적이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저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당신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모든 것을 알고 싶습니다. 당신을 충분히 만족시켜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상응하는 마음을 준비해두면 좋겠습니다. _「내가 알고 있는 비밀이」에서 무엇을 해도 된다는 말은 무엇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내 일을 해야 한다. 故 김학찬 작가의 산문집 『투암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기침으로 병원에 들렀다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써내려간 글들이다. 폐암 제3세대 표적치료제의 임상실험에 참여하며 ‘렉라자맨’이 된 날부터,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겨울까지의 날들이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자신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미리 ‘투암기’라는 제목을 정해두고 틈틈이 써내려간 산문들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글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버린, 미완의 산문집으로 남았다. 1부와 2부의 형식 차이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덤덤한 적극성”(창비장편소설상 심사평)은 이 유고 산문집에서도 두드러져, 작가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사랑, 가족, 그리고 ‘살아 있음’의 의미를 가만가만 그려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떠나지 않기 위해, 무의미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신중히 반 캔의 맥주를 고르고,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을 고르고, 단어를 고르면서, “운명의 시일이 다가온다는 것은, 요리와 빨래와 세차와 운전과 여행 같은 일상이 모조리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고, 몸과 마음이 지속된다는 행운을 끝없이 상기해야만 하는 것”(남궁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죽음을 선고받는다는 건 남은 시간을 견디는 방식을 선택하라는 말일 것이다. 김학찬 작가는 그 방식으로 기록을 택”(한지혜)했고, 견디는 글, 살아가는 언어, 사라지기 전에 남기는 따뜻한 블랙 유머가, 이제는 작가를 대신해 독자들 곁에서 오래오래 숨쉴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치료만 받다가 떠나는 것은, 의미를 잃는 일이다. 고통받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환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고 싶은 일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고 참아야 되는 일도 있고 뭔가를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_(투암기, 243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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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찬 작가’와 ‘유고 소설집’이라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 없지 않나.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있었으니까. 원고를 읽고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여기에 적는다. “작가님, 이번 책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이렇게 이른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가슴에 안은 채로, 긴긴 시간이 흐른 후 언젠가는 우리가 우리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젊고 빛났던 그와 이별하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우리는 그저 이곳에 남아 그의 책을 손에 그러쥘 뿐이다. 그가 너무 일찍 우리를 떠난 작가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그의 고유한 영혼이 담긴 글 속에서 영원한 작가로 기억되기를.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비로소 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 최은영 (작가,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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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보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모르던 때를 구름기라고 부른대.”
소설 속 인물들이 구름기를 접할 때 김학찬은 독자들을 ‘소설기’로 데려간다. 김학찬의 인물들은 핍진한 현실 속에서 생의 순간들을 치열하게 누빈다. 피가 도는 이야기나 느슨하고 쓸쓸한 서사가 흐르는 순간에도 작가의 문장은 재치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함께 구름 속을 떠다니는 기분이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신이 특별히 남기고 싶은 흔적이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소설 속 키보드의 말에 대해 이 소설집은 온몸으로 응답하고 있다. 이것이 김학찬의 특별한 흔적이고, 소설기에 머물던 작가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진짜 구름은, 얼룩이 있어야 해”라는 문장이 마지막 소설집을 읽는 독자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소설가 김학찬이 보여주려 했던 구름은 진짜였고, 이것은 진짜 소설이다. - 서유미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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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리얼리즘이 돌아오고 있다 한다. 박완서, 김원일, 김소진, 정지아 등의 소설가들로 이어져오던 세계다. 그들은 현실의 풍경을 몸과 마음으로 관찰해 때론 담담하고 때론 울고 웃기는 문학의 언어로 독자의 손을 잡는다. 김학찬의 소설은 이 한국식 리얼리즘의 역사와 맥을 잇는다. 〈모범택시를 타는 동안〉에 등장하는 국문과 재학생의 과외 고교생 백일장 대리시험, 〈타작〉의 소재인 한국 종교의 문제, 〈귀가〉의 탈북 청년 고교생 이야기 그리고 삶과 죽음을 바탕으로 해학과 연민으로 이어진 이 시대 가족 서사까지. 김학찬은 딱딱한 다큐의 언어가 아닌 단단하지만 몽글몽글한 문학의 언어로 우리가 사는 진짜 세계를 풀어낼 줄 아는 소설가였다. 김학찬은 그렇게 ‘웃픈’ 세계를 담아낸 이 소설집을 남기고 떠났다.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며 두 번쯤 울고 여러 번 피식 웃는다면 통한 것이다. 그만의 별세계로 떠난 김학찬이 지구별 독자들에게 보내온 텔레파시와. - 박진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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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학교 출신에 나이도 같았으므로 언제 어디서 조우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그곳은 진료실이었고 우리는 의사-환자 관계였다. 그는 많이 야윈 채 지치고 초탈한 모습으로 실려왔다. 나는 그에게 인사와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쇠약했다. 그의 모습에 운명이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는데… 나는 그에게 입원장을 냈고, 그 뒤로 그는 나를 포함한 누구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이 원고는 그가 나를 찾아오기 전에 작성한 것이다. 이 투암기를 읽으니 새삼스레 한 환자, 한 인간이 품는 무한한 사연을 떠올리게 된다. 운명의 시일이 다가온다는 것은, 요리와 빨래와 세차와 운전과 여행 같은 일상이 모조리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고, 몸과 마음이 지속된다는 행운을 끝없이 상기해야만 하는 것일 테다. 그는 그 일상과 마음을 골똘히 노려보다가 결국 그 운명을 마주하려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어떤 평행우주에서는 다를 수 있었겠지만, 하여간 지금은 이렇게 잠시 만나고 영영 헤어지게 되는 것. - 남궁인 (의사, 응급의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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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하루키의 열혈 팬인 작가는 하루키가 더이상 집필을 할 수 없어 그의 다음 글을 읽지 못하게 되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나는 하루키의 이름을 김학찬으로 고쳐 읽는다. 비통하게도 우리는 이제 김학찬 작가의 다음 글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글은 이 산문이 전부가 아니다. 그의 소설은 언제 읽어도 새롭고 신선하다. 나는 연어처럼 그가 남긴 작품을 거슬러올라가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비통하던 마음이 괜찮아진다. 이 원고도 그렇게 몇 번씩 읽고 또 읽었다. 이 글의 제목은 투암기다. 그런데 투를 작가는 무슨 의미로 썼을까. 맞서 싸웠다는? 아니면 멀리 던져버렸다는? 혹은 묵묵히 받아들였다는? 나는 그가 쓴 투를 영어 to로 고쳐 읽는다. to 암에게. 정말로 이 산문은 코앞에 매달린 암에게 건네는 의연한 농담처럼 읽히기도 한다. 서늘하고 빛나는 농담이 끝내 암을 이기고 남았다. 죽음을 선고받는다는 건 남은 시간을 견디는 방식을 선택하라는 말일 것이다. 김학찬 작가는 그 방식으로 기록을 택했다. 문학에 목을 매달겠다 하지 않고, 삶이 목을 조를 때 묵묵히 쓰기를 택했다. 그리하여 그 절명의 순간에 유쾌하고 빛나는 문장을 남겨주었으니 그는 천생 작가다. 그를 통해 삶이 죽음 앞에서도 삶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여기에 기록된 문장들이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이 책을 펼친 당신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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