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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를 타는 순간
타작 귀가 ①②③④⑤ 영재 은이와 같이 구름기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이 끗 미당시문학관 해설│끝, 없는 이야기 이만영(문학평론가, 전북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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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고참이 꽉 쥔 주먹을 내 눈앞에 대고 물었다. 이 주먹 틈으로 뭐가 보이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이게 앞으로 니 군 생활이다. 전역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 「모범택시를 타는 순간」 중에서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부흥회,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에 감동을 느끼는 교인은 없었다. 교회 일이 몸에 밴 오십대 초반의 한 목사의 소망은 오직 하나, 성전을 짓는 것뿐이었다. 돈 좀 있다는 집사들도 자기 집만큼 성전에 관심이 많았다. 건축 헌금을 빌미로 돈과 장로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 「타작」 중에서 다들 우리 가족을 새터민이라고 불렀다.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탈북자라고 귓속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왜, 있잖아, 거기에서…… 새터민이라고 해도 마치 탈북자라고 부르는 것같이 들렸다. 탈북자라는 말은 마치 배신자라는 말처럼 들렸고 새터민이라는 말은 어딘가 어색했다. 하긴, 빨갱이라고 부르며 화부터 내는 사람도 있었다. --- 「귀가」 중에서 객관식 시험을 만든 사람은 분명 천국에 갔겠지. 천국에서 매일 시험문제를 만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객관식은 어쩐지 항상 옳을 것만 같았다. 객관적인 사람이야, 객관적으로 보면, 이런 말들은 소리조차 공평하게 들렸다. --- 「①②③④⑤」 중에서 혀로 침방울을 잘 만드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침방울을 잘 만드는 아이다. 윗몸일으키기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윗몸일으키기를 잘하는 아이다. 침방울과 윗몸일으키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모두가 피곤해진다. --- 「영재」 중에서 내 기억, 대충 맞지? 솔직히 아빠 이야기는 나중에 또 들어도 될 줄 알았어. 어차피 했던 이야기도 또 하고, 두서는 없고, 대여섯 번 들어야 앞뒤 사건이 연결도 되고, 아빠야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했던 이야기만 또 할 게 뻔했으니까. 몇 번이고 지나간 이야기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지나갈 수 없다는 걸 몰랐네. 녹음이라도 해둘걸 그랬어. 아빠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한테 물어봐야 해.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또 쓸데없는 걸 묻는다고 하겠지. 그리고 시집살이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를 시작하겠지. --- 「은이와 같이」 중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구름기期가 있대. 구름 위에 올라탈 수 있다는 마음, 구름 위 세상을 받아들이는 믿음, 구름보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모르던 때를 구름기라고 부른대. 흩어져도 다시 만나는 구름을, 똑같은 구름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대. 참, 여보,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까? 진짜 구름은, 얼룩이 있어야 해. 어두운 부분이 있어야 하얀 구름이 몽실하게 보이지 않겠어? (그럴듯하지?) 그래, 안타깝게도 구름에 올라타면 떨어진다는 과학적 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불행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구름을 믿고 살아야 하고. --- 「구름기」 중에서 저는 언제나 당신 주변에 머물렀습니다. 당신이 의식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저를 보지도 않고 타이핑할 수 있게 되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십니까? 익숙해지면 놓치기 마련이니까, 당연히 잊었겠지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키 하나하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당신의 눈동자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뜻이 화면에 그대로 표현되었던 순간의 설렘도, 신중하게 누르던 당신의 손가락 끝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괜찮다니까요. 저는 당신 편입니다. ---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이」 중에서 사람들은 좋은 패만 쥐면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화투는 실력과 무관하고, 진 이유는 어디까지나 운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글쎄요, 당신은 운이 좋으면 반달곰과(상대는 아주 운 나쁜 반달곰이라고 치고) 싸워 이길 수 있으십니까? 운이 좋다는 건 말입니다, 애초에 괴물을 만나지 않는 겁니다. --- 「끗」 중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나는 이제 텅 빈 것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부주의하게…… 후회는 소용없다. 글쎄나 하필과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미당시문학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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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신이 특별히 남기고 싶은 흔적이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故 김학찬 작가의 소설집 『구름기』는 제7회 혼불문학제 최명희청년문학상 당선작을 포함해 청년 시절에 발표했지만 책으로 묶지 않았던 작품과 미발표작, 그리고 2023년에 펴낸 『사소한 취향』 이후 발표한 최근작까지 모두 10편의 단편을 모았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촉수가 예민해야 한다. 일상의 세계를 세밀히 들여다보는 촉수가 있을 때라야 배제되고 소외된 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 존재에 관한 본질적이면서도 범상치 않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언하자면, 김학찬에게는 바로 그러한 예민하면서도 윤리적인 문학적 촉수가 있다”는 이만영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이 소설집에서도 김학찬 작가의 그 ‘문학적 촉수’는 민감하고 예리하게 움직여, 우리 사회의 ‘경계’를 향한다. 고향을 떠나왔으되 아직 새로운 터전에 완전히 스며들지 못한 새터민 가족(?귀가?), 자본주의의 문법을 체득하지 못한 채 체제 밖을 배회하는 아버지들(?은이와 같이?, ?구름기?), 그리고 냉철한 리얼리즘을 기치로 내걸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는 화자(?미당시문학관?)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들’을 그린다. 그들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닿지 못한 채 어중간한 공간에 서 있고, 세계와 자신 사이에 생긴 미세한 균열을 감각적으로, 윤리적으로 인식해내는 인물들이다. 김학찬은 이 경계의 감각을 문학의 본질적인 윤리로 받아들이고, 이를 ‘쓰기’라는 행위의 조건으로까지 밀어붙인다. ?미당시문학관?에서 소설가인 ‘나’는 “냉철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묘파하는 혁명적인 소설만 쓴다”고 공언하지만, 그조차도 결국은 “미당문학관은 고창에 있다”라는 오기(誤記)에서 시작된 소설을 쓰고야 만다. 인과율로 단단히 조직된 현실을 재현하려는 기획은 이렇듯 매번 실패하지만, 그 실패를 자각하고도 다시금 “나는 소설을 쓴다”는 문장을 복원하는 일, 바로 그 행위야말로 김학찬이 말하는 ‘글쓰기의 윤리’이며 ‘실패한 리얼리즘 너머’의 길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이 세계에서 비켜나간 존재들, 실향민과 이방인, 체제의 변두리에서 밀려난 자들의 삶을 예민하게 포착하며, 동시에 그런 인물들을 그려내는 행위 자체의 한계를 뼈아프게 직시한다. 김학찬은 세상을 날카롭게 분석하려 들기보다는, 끝내 이해되지 않는 잔존물들을 붙잡고 천천히 말하려는 작가였다. 그는 말의 실패, 재현의 실패, 리얼리즘의 실패를 껴안으면서도, 그것이야말로 소설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김학찬의 특별한 흔적이고, 소설기에 머물던 작가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서유미) 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다큐의 언어가 아닌 단단하지만 몽글몽글한 문학의 언어로 우리가 사는 진짜 세계를 풀어낼 줄 아는 소설가”(박진규) 김학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신이 특별히 남기고 싶은 흔적이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저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당신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모든 것을 알고 싶습니다. 당신을 충분히 만족시켜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상응하는 마음을 준비해두면 좋겠습니다. _「내가 알고 있는 비밀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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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찬 작가’와 ‘유고 소설집’이라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 없지 않나.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있었으니까. 원고를 읽고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여기에 적는다. “작가님, 이번 책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이렇게 이른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가슴에 안은 채로, 긴긴 시간이 흐른 후 언젠가는 우리가 우리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젊고 빛났던 그와 이별하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우리는 그저 이곳에 남아 그의 책을 손에 그러쥘 뿐이다. 그가 너무 일찍 우리를 떠난 작가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그의 고유한 영혼이 담긴 글 속에서 영원한 작가로 기억되기를.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비로소 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 최은영 (작가,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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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보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모르던 때를 구름기라고 부른대.”
소설 속 인물들이 구름기를 접할 때 김학찬은 독자들을 ‘소설기’로 데려간다. 김학찬의 인물들은 핍진한 현실 속에서 생의 순간들을 치열하게 누빈다. 피가 도는 이야기나 느슨하고 쓸쓸한 서사가 흐르는 순간에도 작가의 문장은 재치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함께 구름 속을 떠다니는 기분이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신이 특별히 남기고 싶은 흔적이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소설 속 키보드의 말에 대해 이 소설집은 온몸으로 응답하고 있다. 이것이 김학찬의 특별한 흔적이고, 소설기에 머물던 작가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진짜 구름은, 얼룩이 있어야 해”라는 문장이 마지막 소설집을 읽는 독자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소설가 김학찬이 보여주려 했던 구름은 진짜였고, 이것은 진짜 소설이다. - 서유미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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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리얼리즘이 돌아오고 있다 한다. 박완서, 김원일, 김소진, 정지아 등의 소설가들로 이어져오던 세계다. 그들은 현실의 풍경을 몸과 마음으로 관찰해 때론 담담하고 때론 울고 웃기는 문학의 언어로 독자의 손을 잡는다. 김학찬의 소설은 이 한국식 리얼리즘의 역사와 맥을 잇는다. 〈모범택시를 타는 동안〉에 등장하는 국문과 재학생의 과외 고교생 백일장 대리시험, 〈타작〉의 소재인 한국 종교의 문제, 〈귀가〉의 탈북 청년 고교생 이야기 그리고 삶과 죽음을 바탕으로 해학과 연민으로 이어진 이 시대 가족 서사까지. 김학찬은 딱딱한 다큐의 언어가 아닌 단단하지만 몽글몽글한 문학의 언어로 우리가 사는 진짜 세계를 풀어낼 줄 아는 소설가였다. 김학찬은 그렇게 ‘웃픈’ 세계를 담아낸 이 소설집을 남기고 떠났다.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며 두 번쯤 울고 여러 번 피식 웃는다면 통한 것이다. 그만의 별세계로 떠난 김학찬이 지구별 독자들에게 보내온 텔레파시와. - 박진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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