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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들의 환대 (큰글자도서)
전석순
나무옆의자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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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원 큰글자도서

책소개

목차

빛들의 환대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저자 소개1

1983년 춘천에서 태어나 자랐다.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회전의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1년 장편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거의 모든 거짓말』, 중편소설 『밤이 아홉이라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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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12쪽 | 200*296*30mm
ISBN13
9791161572468

책 속으로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죽어야 한다는, 죽어볼 방법이 없겠냐는 말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한참 머뭇거렸다. 며칠만 더 사시다가 다음 주에 죽어보면 안 되겠냐고 능청스럽게 물으려다가 겨우 입을 다물기도 했다. 예전 어느 때던가, 안타깝게도 죽어볼 기회를 드리지 못해 유감이라고 했다가 민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겨우 체험관에서 예약 안내나 하는 주제에 네까짓 게 뭔데 그따위 소릴 지껄이냐고.
--- p.45

뒤풀이가 늦게까지 이어진 날 이후 한빛은 사소한 행동이나 표현 하나하나까지 문제 삼았다. 미연이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흙 묻은 바지를 털어준 행동에도 주목했다. 뒤풀이 날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며. 그날 한빛은 미연을 세게 끌어안았다. 한빛의 거친 숨결은 미연의 귓가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미연이 비명을 지르며 밀어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너 분명 웃었잖아. ……오리엔테이션 때처럼.”
그때부터 미연은 밖에선 절대 웃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 p.100

“네까짓 게 사는 게 힘들고 괴로워? 죽고 싶을 만큼?”
서둘러 관 뚜껑을 덮었다. 쿵 하며 내려앉는 소리가 체험실 가득 울렸다. 이어서 미연은 나무망치를 들었다. 플라스틱 못을 미리 뚫어놓은 구멍에 따라 꼼꼼하게 박았다. 퉁탕거리는 소리가 오롯이 한빛에게 가닿도록 무게를 싣고 잔뜩 힘을 주었다. 가령과 유영이 힐끗거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어 승인의 손에서 모종삽까지 빼앗았다. 봉지에서 쌀을 퍼 관 위에 후드득 뿌렸다. 흙 대신이었다. 한 번으로 모자라 한 번 더, 아예 봉지를 뒤집어 탈탈 털어냈다. 경쾌한 소리에 미연은 어깨까지 들썩였다. 어느새 미연은 중얼댔다.
“선배 용기를 내요. 여기서 용기를 얻으세요.”
그동안 미연이 생각해온, 한빛이 내줬으면 한 용기는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었다.
--- p.130

체험객들이 작성한 부고 문자가 단지 죽음만 알리는 건 아니었다. 받는 사람에 따라 마지막에야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비밀일 수도 있고 생전 못다 한 자백이나 담담한 위로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저승으로 가기 전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저주를 품거나 남은 사람들을 향한 경고와 힐난일 때도 잦았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내 장례식에 나타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체험객도 많았다. 가는 날까지 네놈의 역겨운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면서.
--- p.143

그사이 유영은 틈틈이 기종을 힐끗댔다.
카메라에 기종의 얼굴이 잡혔을 때 유영은 플래시를 연속으로 터뜨렸다. 수많은 사진 속 표정 중에서도 기종의 진짜 얼굴은 없는 듯했다. 기종은 영정 사진을 고를 때마저도 임시로 쓸 물건처럼 아무거나 되는대로 골랐다. 그러니까 임종 체험관에서도 마치 누군가를 대신해서 온 체험객처럼 굴었다. 이러다간 수의가 아니라 작업복을 건네줘도 그냥 걸쳐 입을 것만 같았다. 유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종의 진짜 얼굴을 찾아주고 싶었다. 영정 사진에서조차 임시로 대신하는 얼굴이지 않도록
--- pp.203-204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계옥은 엉거주춤 일어나 가령을 힘껏 노려봤다. 가면을 쓴 가령은 시선을 틀지 않은 채 마지막 문장까지 놓치지 않고 확인했다. 아무리 눈을 부릅떠 봐도 유서 어디에도 가령에 대한 미안함은 없었다. 고마운 사람들에 가령이 들어갈까 곰곰이 따져봤지만 명백한 억측에 불과했다.
가령은 계옥의 푸념에 다시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령은 계옥의 유서를 힘껏 움켜쥐었다가 찢어 내던졌다. 황급히 다가온 미연이 말릴 틈도 없었다. 조각난 유서가 허공에 흩날리다가 바닥으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 pp.257-258

유영은 관을 사이에 두고 영정 사진을 받아 든 기종이 한 말을 기억했다.
“당신 영정 사진은 누가 찍어주죠?”
순간 문이 닫히는 소리에 이어 사방을 막고 있던 두터운 암막 커튼이 들썩였다. 커튼이 벌어진 틈새로 햇빛이 들어와 바닥에 길게 누웠다. 아주 연약한 빛이었지만 어둠 사이에서는 제법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그림자가 비로소 길게 누웠다. 햇빛은 점점 자리를 넓혀갔다.
마치 뚜껑이 열린 관 속처럼.

--- p.359

출판사 리뷰

죽여주는 데 가자더니 여기였어요?

‘임종 체험’이라고 하면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멀리하고 누군가는 살면서 한 번쯤 해볼 만한 의미 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 지자체에서 자살률 감소를 통한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흉물로 방치된 빈 건물을 활용해 임종 체험관을 개관했다. 사업 책임자는 관장을 중심으로 안내와 예약을 담당할 미연, 영정 사진 촬영을 맡을 유영, 묘비명과 유서 작성을 도울 가령, 관(棺) 관리와 저승사자를 맡을 승인으로 구성원을 꾸렸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낙담하던 관장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험 대상이 되는 임종 체험관에 큰 기대를 걸었다.

체험관은 차별화되는 특별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로 성황리에 운영되었다. 나만의 부고 문자 만들기, 수의 구매 시 할인, 전문 상담, 공동묘지 투어, 관 속에서 경직되었던 몸을 풀어줄 아로마 마사지, 기념품 및 실제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육개장 제공 등의 서비스는 만족도가 높아 친목회, 회사 워크숍, 인성 교육 담당자, 이혼을 앞둔 부부, 중독치료센터 등에서 문의가 빗발쳤다. 그러자 야간 체험,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1인 체험, 가상현실로 미리 보는 나의 장례식, 산속에서 진행되는 리얼 임종 체험 등 더 기발한 프로그램도 준비되었다. 사업 책임자는 그만큼 자살 예상 효과도 뚜렷할 것으로 자신했다. 폭우를 뚫고 낯선 방문객이 들이닥치기 전까진.

수상한 체험객은 없었습니까?

폭우가 쏟아져 한산하던 체험관에 들이닥친 방문객은 지난 화요일 3회차 임종 체험객 중 한 명이 체험 이튿날 자살을 시도했다고 소리친다. 미연과 유영, 가령과 승인, 네 명의 구성원은 그날 수상했던 체험객들을 차례차례 떠올린다. 돌이켜보면 수상한 건 체험객뿐만이 아니었다. 네 명 모두 평소 거추장스럽다고 꺼리던 가면을 꼼꼼하게 챙겨 쓰고 헤드 마이크를 통해 변조된 목소리로만 소통했다. 정체를 들키면 안 될 체험객이라도 있는 것처럼.

색다른 이벤트를 즐기듯 죽음을 체험하러 온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반응을 언어유희를 섞어가며 생생하게 묘사하던 소설은 본격적으로 자기 삶의 첨예한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인물들의 사연을 죽음의 의례 과정과 교차하여 보여준다.

미연은 화요일 3회차 체험 때 자신을 성추행하고, 돈을 찔러주며 관계 회복을 종용했던 학교 선배 한빛을 한눈에 알아봤다. 묘비명에 ‘이번 생은 망했다’고 쓴 한빛이 임종 체험을 마친 다음 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까.

보육원 출신으로 보호자 없이 불안정한 삶을 살아오던 유영은 보육원 동기의 무연고자 장례를 치르도록 도와줬던 기종을 그날 체험객으로 다시 만났다. 유영과 기종은 서로 장례 주관자가 되어주기로 할 만큼 한때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사소한 문제로 균열이 생겨 사이가 완전히 끊어진 터였다. 체험 동기에 ‘상담사 권유’라고 쓴 기종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빌려준 돈을 못 받아내 쪼들리던 가령은 채무자인 계옥이 그날 임종 체험을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나도 언니 곤란하게 할 수 있어”라던 협박까지. 계옥이 임종 체험관에 온 건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언니 때문에 죽을 것 같다던 말에 대한 증명이거나.

화요일 3회차 체험 때 염습 시범을 보이던 승인은 자신의 어머니 현숙을 지켜보고 있었다. 치매로 생긴 인지기능 저하로 주간보호센터에 있어야 할 현숙이 불쑥 임종 체험관에 들어선 것이다. 입관 체험실에서 관을 열었을 때 현숙은 과거 승인이 장롱에 갇혔던 사건을 떠올린 것처럼 울부짖었다. 승인은 센터에서 벗어난 현숙이 스스로 죽음을 결심했을 가능성을 따져봤다.

구성원들의 삶을 상처 내고 균열시킨 이들이 정말로 체험 이튿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했던 것일까? 각자의 사정을 헤아려보는 과정에서 임종 체험관의 실체와 운영 목적뿐만 아니라 관장의 정체, 구성원들이 임종 체험관에서 일하게 된 이유까지 밝혀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빛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소설에서 체험관은 이벤트의 시간을 보여주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마주하기 힘든 자신들의 이야기와 만난다. 구성원과 체험객, 방문객의 동선이 여러 겹으로 얽힌 죽음의 제의는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한빛에게 체험이 끝난 후 부활의 의미로 주는 삶을 달걀 대신 날달걀을 건넨 미연도, 뉘우침 없는 계옥의 유서를 찢어버린 가령도, 영정 사진을 찍을 때 기종의 진짜 얼굴을 찾아주고 싶었던 유영도, 현숙의 이상 행동을 기록해 요양 등급을 더 높게 받을 기회를 엿보던 승인도 체험의 시간을 지나며 풀어야 할 문제를 달리 보게 된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무너뜨리려는 세상의 힘에 맞서 아픔의 호소에서 아픔의 공유로 이야기의 기울기가 조금씩 움직여나갈 때 우리는 희망 없이 희망을 말하는 이 소설의 특별한 능력에 기꺼이 설득”(심사위원 정홍수, 문학평론가)된다. 체험관이 있던 자리가 길이 되듯, 인물들은 세상에서 가장 긴 임종 체험을 마치고 ‘환한 빛’ 속으로 걸음을 내딛는 듯하다.

추천평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임종 체험관은 단지 미래의 죽음을 상상하는 장소가 아니다. 자신의 현재 삶과 대결하는 공간이다. 각자의 이유를 갖고 그 공간에 도착한 네 인물의 조우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질문들과 마주치게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가 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지 환기시켜준다. 바로 지금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걸. - 은희경 (소설가)
소설에서 체험관은 이벤트의 시간을 보여주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그곳에서 인물들은 마주하기 힘든 자신들의 이야기와 만난다. 죽음의 제의는 삶의 복합적인 거울이 된다. 끊임없이 무너뜨리려는 세상의 힘에 맞서 아픔의 호소에서 아픔의 공유로 이야기의 기울기가 조금씩 움직여 나갈 때 우리는 희망 없이 희망을 말하는 이 소설의 특별한 능력에 기꺼이 설득된다. - 정홍수 (비평가, 문학평론가)
‘임종 체험’이라는 서사 앞에는 치명적인 허들이 놓여 있다. 혹여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예행연습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이 극복될 리 없고, 더구나 아름다운 죽음이란 게 가당키나 한가. 그러면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 삶을 일깨우자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인가? 독자는 소설에서까지 가짜 죽음을 체험할 이유가 없다. […] 소설은 이런 허들을 가뿐히 넘고 더 흥미로운 서사의 트랙으로 내달린다. - 전성태 (소설가)
소설은 소동극으로 시작하나 싶더니 어느새 추리극으로 옮겨간다. 그렇다고 블랙코미디나 스릴러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적당한 소동과 적당한 은밀함, 그 중간 어디쯤에선가 우리 개개인의 인생이 고단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 숨겨진 아픔을 집요하게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의 몫이며 이 소설은 그 모범답안으로 불릴 만하다. 단언컨대 새로운 장르의 소설이다. - 하성란 (소설가)
죽으려는 마음을 이해한다는 목표 아래 펼쳐진 인물들 각각의 사연을 통해 작가는 우리 시대의 만연한, 그러나 더 충분히 다루어져도 좋을 문제들을 침착하게 드러내 보인다. 숙고하여 배치한 듯한 죽음의 의례 과정과 빈번히 교차되며 직조되는 각각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기울기에 따라 생과 사가 번갈아 보이는 임종 체험관의 초대권처럼 죽고자 하는 마음과 살고자 하는 마음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게 삶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 김유진 (소설가)
『빛들의 환대』는 […] 죽음을 체험하는 임종 체험관을 무대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표면적 질문이 던져지는 도입부를 통과하고 나면 즐길 거리가 풍성해진다. 주요 인물 5인에게 배부된 ‘초대권’이 어떤 방식으로 메인 플롯을 구축해가는지 지켜보는 즐거움, 삶과 죽음이 절묘하게 맞닿는 이야기적 쾌감……. 잘 연마된 문학적 기술을 체험하는 기쁨은 덤이겠다. 그리하여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사자의 공간이 결국 산 자의 길이 되는 묵직한 메시지와 마주치게 된다. - 정유정 (소설가)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고 말하는 작품은 삼류다. 삶이 곧 죽음이라고 말하는 작품은 이류다. 죽음을 체험케 하는 작품은 일류다. 『빛들의 환대』는 일류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당연한 소리를 반복하지도 않고 삶이 곧 죽음이라는 관념적 진실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의 참여가 더 깊은 깨달음을 주는 법. […] 이렇게 정교한 죽음 체험 소설은 다시 만나기 힘들다.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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