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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그리지 못해 쓴 이야기 01: 점 우라까이 그리지 못해 쓴 이야기 02: 선 귀뚜라미 보일러가 온다 그리지 못해 쓴 이야기 03: 면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그리지 못해 쓴 이야기 04: 형 빙글빙글 돌고 그리지 못해 쓴 이야기 05: 형태 대담 | 여러분, 이거 다 ‘우라까이’한 거 아시죠? _강병융×주원규(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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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가 왔다는 2000년래의 구라가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구라가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구라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구라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구라 속에 삽니다. 구라의 지층은 두껍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구라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구라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구라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구라에 만족지 못하면서 현장에도 있지 못하는 한 작가의 ‘구라’입니다.---「서문」중에서
한땐 그도 보통 사람이었다. ‘엄지족’이라고 불리지도 않았고, 작아지는 키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았다. 물론, 자신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없었고, 그것을 취재하러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들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보통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확성기를 쓰지 않아도 괜찮았고, 편의점에서 물건도 마음대로 살 수 있었으며, 스마트폰 액정을 발로 밟지 않아도 전화를 할 수 있었다. 친구나 가족의 주머니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비록 큰 키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자신보다 키 작은 사람들을 놀리며, ‘호빗’이니 ‘스머프’니 하는 농담도 할 줄 아는 남자였다. 애인도 있었다. (…) 그는 헤어진 뒤부터 자신이 작아졌다고 믿고 있었다. 확증은 없었지만, 확신이 있었다. ---「그리지 못해 쓴 이야기 01: 점(點)」중에서 살려줘유, 라고 외쳐보지만 다른 음절들은 고통 속에 파묻히고, 오직 ‘유’밖에 들리지 않는다. 온리 유! 유! 유! 헌트의 고통 섞인 고함에 노모는 오금이 저리는 짜릿함을 느낀다. 노모의 카타르시스. 희미한 숨소리와 커진 동공이 방 안을 그득 메운다. 옆방에서 할딱이는 두 남자의 살 소리가 벽을 타고 천장으로 넘실댄다. 퍽. 퍽. 퍽. 두 집의 소리가 한데 기묘하게 섞인다. 어우러진다. 퍽유퍽유퍽유. 헌트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쾅쾅 친다. 항복이유! 항보옥! 노모가 힘을 뺀다. 다리가 몹시 저리지만, 헌트는 그 순간, 다행이라 생각한다. 팔을 다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 헌트에게 다리는 없어도 되지만, 팔은 목숨과도 같다. 팔이 없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을 테니. ---「귀뚜라미 보일러가 온다」중에서 높은 파티션 뒤에 숨어, 미선은 신문 기사를 보고 있었다. 폴란드의 한 청년에 관한 기사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한 뒤, 큰 행복을 얻었다고 했다. (…) 소통을 하고 싶지 않으면, 그것을, 즉 ‘소통 거부 키트’를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대면 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시커멓고 네모난 유리판으로 얼굴을 가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 얘기할 일이 없어진다고. 하긴 누가 플라스틱판에 대고 이야기하고 싶겠는가. ---「그리지 못해 쓴 이야기 03: 면(面)」중에서 나는 국토 종주를 마치고 4대강 국토 종주 자전거 길 여행 패스포트를 들고 경찰서로 찾아갔다. 슬픈 표정의 경찰들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잡아 수사를 시작했고,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는 매일매일 내 이야기가 나왔다. 난 괜찮았다. 어차피 텔레비전과 신문은 거짓말투성이니까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나에게 ‘인간’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 괜찮았다. 어차피 세상엔 인간 같은 인간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쳤다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남편과 아빠와 자식을 잃고도 미치지 않고 사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닐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중에서 정권이 바뀌고 이상하리만치 조류독감이 자주 발생했다. 다행히도 내가 돌보던 닭 떼들은 문제가 없었다. 나에겐 잘못도, 문제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농장 주인, 그러니까 스페타네트 아가씨의 아버지는 나를 해고했다. 물론 해고하기 전에 다양한 욕을 해댔다. 임금 체불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 사람들은 사라지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새로 나오는 것들에 관심을 갖기도 바빴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은 ‘나’는 사라져버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나는 사라지는 대신 하산했다. 스스로 산에서 내려왔다. ---「빙글빙글 돌고 - 알퐁스 도데를 위한 ‘웃픈’ 오마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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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 닭의 시대가 저물고 남은 한 권의 소설집!!
웃기고도 슬픈, 신랄하고도 통쾌한 전대미문의 본격 ‘복붙소설’!! 소설이 부(富)를 가져다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오뎅보다 못할지도. 오뎅보다 못한 소설, 그래도 쓰고 싶다. _본문 중에서 도시와 산책을 주제로 한 테마 에세이 『아내를 닮은 도시』에서 열심히 류블랴나를 걸었던 작가 강병융이 소설집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를 들고 돌아왔다. 이 소설집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포스트모던’한 아재 개그 스타일 소설이자, 전대미문의 ‘복붙소설’이자, ‘병맛’을 뛰어넘은 ‘병융맛’ 소설쯤 될까? 아니면, 본문에서 말하듯이 절대 어떤 부(富)도 가져다줄 수 없는 오뎅보다 못한 소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번 책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사실 ‘강병융’이란 이름은 에세이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지콜론북, 2016년), 『아내를 닮은 도시』(난다, 2015년) 등으로 독자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작가는 늘 한국 사회에 대해 지대한 관심으로 소설을 써왔고, 그 결과물이 바로 장편소설 『알루미늄 오이』(뿌쉬낀하우스, 2013년) 이후 꼬박 4년 만에 내는 이번 소설집이다. 각설하고 말하자면,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는 MB 정권 시절(여전히 크게 달라진 건 없는지도 모른다)에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토대로 쓴 아홉 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을 아낌없이 ‘깐다’. 일단 표제작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에서 ‘인간’이라 지칭되는 주인공은 날벼락 같은 불행이 덮칠 때마다 찍찍거리며 눈앞에서 알짱대던 쥐를 잡아 껍질을 벗기고, 골절기로 자르고, 슬라이서에 올린 뒤, 슬라이스 미트로 만들어버린다. 말 그대로, 죽여, 버린다. 인간은 쥐는 고통을 느끼는 신경 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이고, 난 꽤 잔인한 방법으로 쥐를 죽여버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법원은 그 쥐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직 사람을 죽인 쥐에 대한 법이 대한민국에 없는 까닭이다. _본문 중에서 괜찮을까? 무사할까? 이쯤 되면 살며시 걱정이 되는 소설 이쯤 되면 걱정이 조금 된다. 괜찮을까? 무사할까? 독자들이 이(런) 소설을 읽어줄까? 등등. 그러거나 말거나 소설은 앞으로, 앞만 보며 나아간다. 『우라까이』에선 MB 정권 시절 나온 신문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오리고 붙여 한 편의 ‘복붙소설’을 만들어낸다. 252개의 기사로 단편소설 하나를 써낸 셈이다. 「우라까이」의 경우, 이야기 틀을 만들고, 수만 번 검색을 해서 그 이야기에 맞게 인용할 수 있는 기사를 찾았어요. 아시겠지만, 단 한 자도 제가 쓰지 않았어요. ‘Ctrl+C’, ‘Ctrl+V’만을 이용해서 만든(!) 소설입니다. _대담 중에서 점점 작아지다가 이윽고 점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연작소설 「그리지 못해 쓴 이야기」는 디자인 잡지의 원고 청탁으로 쓰게 된 것으로 점, 선, 면, 형, 형태라는 디자인적인 요소를 작가 마음대로 이야기화 해냈다. 「귀뚜라미 보일러가 온다」와 「빙글빙글 돌고」 또한 독특하고 재밌다. 「귀뚜라미 보일러가 온다」는 친구인 백가흠 작가의 소설 『귀뚜라미가 온다』를, 「빙글빙글 돌고」에선 알퐁스 도데의 『별』을 패러디했다. “왜 패러디 소설만 자꾸 쓰세요?”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멋쩍은 척하며 “결국, 세상의 모든 소설이 패러디 아닐까요?”라고 되물을 생각이다. _본문 중에서 하지만, 이 패러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정권이 바뀌고 이상하리만치 조류독감이 자주 발생했다”라는 「빙글빙글 돌고」 속 문장은 그냥 넘기기엔 무언가 찜찜하다. 여러분, 제발 이것만은 거짓말 아니게 해주실 거죠? 아홉 편의 소설을 다 읽었는데도 무언가 부족한 거 같다면 주원규 소설가와의 대담을 읽어보면 된다. 우리가 왜 하필 지금 강병융을 읽어야 하는지 그 답이 딱 나오니까. 작가는 (울부짖듯이) 말한다. 슬프게도, 정말 슬프게도 ‘광우병’ ‘촛불’을 생각하면, ‘세월호’, ‘국정논단’, ‘블랙리스트’, ‘탄핵’ 이런 것들이 생각나요. 그때는 정말 ‘광우병’, ‘용산 참사’가 더할 나위 없는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모두 알고 있잖아요. 그건 ‘차악’이었다. 너무 슬퍼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고, 또 너무 슬퍼요. 그리고 또 슬퍼져요. 정말 제발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네요. _대담 중에서 이 소설집에 나오는 물대포, 용산, 광우병 등 너무 참혹해서 작위적으로까지 보이는 일들이 실제 우리가 MB 정권을 지나며 감당했던 그리고 바로 지금도 실제로 감당하고 있는 일들이라는 게 놀랍지 않나? 그리고 우린 또 지금 어느 ‘악’들을 마주하고 있는가? 이 소설집은 허구도, 거짓말도 아니다. 누구보다 진짜고, 진실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선 (정말) 거짓말 같은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다. 거짓이었으면 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인 세상인데, 누가 소설을 읽을까? 그런 점에서 사실 소설은 낄 자리가 없는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집만큼은 끼워주었으면 한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는 소설집으로 작가 강병융은 (소설가 인생의) 역주행을 맛보게 될 것이다. 거꾸로 역주행하게 될 쥐 한 마리와 함께. “여러분, 제발 이것만은 거짓말 아니게 해주실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