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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익, 〈사랑에는 돈이 들어〉
서윤빈,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김아직, 〈봐라니 연가〉 정명섭, 〈할머니 수사단〉 전현진, 르포르타주 〈사랑의 매뉴얼: 그녀와의 10일〉 기획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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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있었다. 돼지, 젖소 그리고 고라니. 돼지는 공들여 키우다가 한 방에 잡아먹는 용도였다. 반년 전에 윤과 상필이 AI 영상으로 결혼 약속과 함께 뉴욕 오피스텔 계약금을 받아냈던 여자가 그 부류에 속했다. 반면 젖소는 경계가 심해서 찔끔, 찔끔, 짜내야 하는 인간이었다. 이 부류는 서서히 액수를 높여가며 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도식은 체급이 큰 젖소였다. (…) 상후에게 윤은 고라니였다. 시끄럽고 무용한 존재들….
---「봐라니 연가」중에서 담장 근처에 작은 소각장이 있었는데 장갑을 낀 감식반이 그 안에서 꺼멓게 그을린 대퇴골과 해골을 꺼내고 있었다. 무릎에 힘이 풀렸다. 다 끝났다. 체념은 격렬한 분노를 불러왔다. 그전까지 그는 살의를 모르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지난 며칠 동안 이곳에서 부유하는 악의 포자를 들이마시며 영혼 어딘가가 변질된 느낌이 들었다. ---「사랑에는 돈이 들어」중에서 현실이 과연 그것보다 좋은가? 사랑과 진실, 그럿을 현상과 그 이면의 진실이라는 가로축으로 나누지 않고 세로로 나눈다면, 유령 놀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절반은 진실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중에서 “처음에는 혼자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어요.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어떤 존재인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산 거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니까 넘어가고 말았어요.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같은 일이죠. 얼굴도 못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지다니….” ---「할머니 수사단」중에서 박가인은 매혹적인 존재임이 틀림없다. 누구라도 좋아할 법한 이 여성. 명랑한 그녀는 간혹 화상대화를 할 때면 편안한 옷차림에 밝은 미소로 반겨준다. 긴 생머리의 아름다운 그녀는 나만의 연인이 아니다. 그녀와 연락한 이들은 알려진 사람만 104명이었다. ---「사랑의 매뉴얼: 그녀와의 10일」중에서 로맨스 스캠을 해외에선 돼지 도살 사기(Pig Butchering)라고 한다. 돼지를 공들여 살찌운 뒤 도축해 잡아먹는 것처럼, 로맨스 스캠은 적당한 돼지를 찾아내고, 키워서, 도살하는 과정을 거친다. 낯선 이에게 다가가 호감을 주고, 사랑에 빠지게 해서, 돈을 뜯어낸 과정이 이에 대입된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에게 귀중한 돈을 맡기게 되는 피해자들은 돈보다 먼저 마음을 빼앗긴다. 마음을 빼앗긴 이들은 쉽게 돈까지 내놓는다. 얼굴 한 번 보이지 않고 마음을 빼앗는 로맨스 스캠 노하우는 진화를 거듭하며 매뉴얼과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 ---「사랑의 매뉴얼: 그녀와의 10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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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네가 진짜 너일까?
사랑을 해킹당한 시대의 잔혹동화 미스터리 “세상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있었다. 돼지, 젖소 그리고 고라니. 돼지는 공들여 키우다가 한 방에 잡아먹는 용도였다.” 로맨스 스캠을 ‘돼지 도살 사기(Pig Butchering)’라고 한다. 적당한 돼지를 찾아내고 키워서 도살하듯, 낯선 이에게 다가가 호감을 주고, 사랑에 빠지게 해서, 돈을 뜯어낸다. 시대를 날카롭게 읽어내는 미스터리 작가 다섯이 낭만적 사랑마저 해킹당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질문한다. · 박하익, 〈사랑에는 돈이 들어〉 #첫사랑과의 운명적 재회 “가보지 않았으니 정론이나 떠들지. 세상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데가 있어.” 영상 편집자로 일하는 윤찬은 마음이 조급하다. 헤어진 지 5년이 넘은 첫사랑 현진이 캄보디아의 범죄 조직에 납치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공조 수사와 방송국 탐사팀까지 뛰어든 가운데, 윤찬은 첫사랑을 구출하기 위해 프놈펜까지 날아간다.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공조 끝에 현진을 구출하는 데 성공한 그. 하지만 사랑을 되찾았다고 믿은 순간,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가 사랑한 네가 진짜 너일까? · 서윤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순정 #엄마의 남자친구가 수상하다 “네가 사랑에 대해 뭘 안다고 유세니, 유세는.” 페이스북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남성 ‘이수진’과의 연애에 푹 빠진 어머니. 어머니는 그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동창이라고 믿지만 아무래도 수상하다.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수법 같은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생기 넘치는 어머니에게 진실을 밝히는 것이 옳을까?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을 가리키는데, 어머니는 평소 연애에 요령이 없다시피한 아들의 우려를 가벼이 여긴다. 결국 MZ 사립 탐정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가 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판을 설계하는 아들. 어머니는 과연 진실을 깨닫고 아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인가. · 김아직, 〈봐라니 연가〉 #사냥꾼이 사냥감이 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덩어리는 들여다볼수록 볼품없어지는 법이었다. 그건 사랑이라는 미끼로 인간의 본질을 낚으며 사는 상후가 다다른 진실이었다.” 시골 마을 어느 농막. 그곳에 사는 노인 최도식은 로맨스 스캠 조직이 점찍은 완벽한 먹잇감이며 체급이 큰 ‘젖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계획대로 움직이던 수금원과 조직원들이 한 명씩, 소리 없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 사기를 치러 온 사람들이 오히려 실종되는 곳. 조직의 리더 상후는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직접 최도식을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농막에서 그가 마주한 빌런은 상상도 못 한 얼굴. 시골 농막에서의 끝장 액션을 상상할 수 있는가? ‘봐라니’의 뜻이 밝혀지는 순간, 깊은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다. · 정명섭, 〈할머니 수사단〉 #고독한 이들의 상호 구원 “나는 내 마음대로 살면 안 되니? 나는 새로운 사랑을 꿈꾸면 안 돼?” 모두 동일한 ‘미국인 애인’ 한 놈에게 돈을 뜯긴 네 명의 할머니들이 경찰서 보이스피싱 특별조사반에 모인다. 사무적인 경찰의 냉소 어린 응대를 뒤로하고 실버카페에 모여 분연히 일어서는 그녀들. “증거, 우리가 찾아요.” 그들은 ‘할머니 수사단’을 결성하고 대범하게 직접 미끼가 되어 수사에 나선다. 과연 이들은 조직의 정체를 밝혀내고 복잡한 디지털 기술 뒤에 숨어 유령처럼 부유하는 자들에게 철퇴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 전현진, 르포르타주〈사랑의 매뉴얼: 그녀와의 10일〉 #사랑에도 대본이 있다면 “어쩌면 진짜 허점은 박가인을 사랑하고 싶어한 당신의 마음에 있을지도 모른다.” 캄보디아에서 기업형 범죄센터를 구축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 실제로 사용한 문서 〈박가인 시나리오〉와 중국의 스캠 조직 매뉴얼을 현직 기자가 입수해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한다. 이 자료들은 도살의 매뉴얼이자, 낯선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의 매뉴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가상의 인물 ‘박가인’과 사랑에 빠지고 있을지 모른다. 사랑에도 설계도가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당신이 믿었던 사랑은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시대를 날카롭게 읽어내는 미스터리 작가 다섯 명이 던지는 이야기 폭탄 인간이 그동안 쌓아올린 낭만적인 사랑의 허상을 정조준하는 웰메이드 사기극, 로맨스 스캠은 외로운 개인들의 시대가 만든 현상이자 사건이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을 믿고 싶었다. 사랑을 믿어야 살 수 있었다. 다섯 명의 작가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먹이로 삼는 로맨스 스캠을 미스터리로 그린다. 이 앤솔러지는 『계간 미스터리』 89호에 수록한 단편 소설 네 편을 수정하고, 전현진 기자의 르포르타주와 기획의도 글을 더해 엮었다. 『선암여고 탐정단』 시리즈와 『종료되었습니다』로 탄탄한 플롯과 독창적인 캐릭터 조형 능력을 보여준 박하익,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SF와 미스터리 장르의 신선한 목소리 서윤빈, 2025년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작가적인 역량을 각인시킨 김아직, 괴물처럼 작업물을 쏟아내고 있는 정명섭. 그리고 『계간 미스터리』에 미스터리 르포르타주 〈길고양이 킬러를 추적하다〉로 디테일과 열정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인 전현진 기자가 각자의 역량을 한껏 끌어올려 글을 완성했다. 박하익의 〈사랑에는 돈이 들어〉는 빈틈없는 플롯과 잔인한 반전을 통해 지금 시대 사랑에 대해 강렬하게 뒷통수를 친다. 서윤빈의 〈누구를 위하여 경종을 울리나〉는 너무나 뻔해보이는 수법을 로맨스라 믿는 어머니에게 당황하는 아들의 모습을 찰지게 그려냈다. 김아직의 〈봐라니 연가〉는 일견 잔인해 보이는 액션 속에 진한 여운을 담아냈고, 정명섭의 〈할머니 수사단〉은 직접 복수를 감행하지만 오지랖 넘치는 인간미와 정을 보여주는 할머니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찡하게 풀어냈다. 전현진 기자는 최근 실제 로맨스 스캠에 사용된 시나리오와 매뉴얼를 입수해 피해자들을 현혹한 가짜 로맨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 4월에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로맨스 스캠 신고 건수는 2192건, 피해 금액은 1360억 원에 달했다. 박가인의 처지에서 보면, 사랑에 눈먼 이들은 누구나 도살장을 향해 걸어갈 돼지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수많은 박가인은 ‘나도 멋진 사랑을 할 자격이 있다’고 외치는 이들에게 다가가 ‘아름답고 멋진 상대가 아무 인연도 없는 나를 사랑할 리 없다’는 간단한 이치를 잊게 만든다.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이 로맨스 스캠의 가장 잔인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