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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하명희 | 십일월이 오면 조해진 | 혜영의 안부 인사 임솔아 |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이승은 | 피서본능 오수연 | 솥 박서련 | A Queen Sized Hole 권여선 | 기억의 왈츠 강영숙 | 남산식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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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은 찬우 선배의 시집을 열어 여백에 썼다.
주원아. 왜. 실은 오늘 하루 종일 말하고 싶은 게 있었어. 뭔데? 뭔데…… 혜영은 더 이어 쓰지 못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어떤 과정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맞느냐고, 혜영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주원이 곁에 있었다면 무슨 과정을 말하는 거냐고 되물었을 테고, 혜영은 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허공 속에서 열망의 형태가 천천히 윤곽을 드러내길 기다렸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내는 과정. 잠시 뒤 혜영은 다시 썼다. 어떤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그 시간이 문장으로 남을 수만 있다면 사는 건 시시하지만은 않겠지, 그렇지? --- 「혜영의 안부 인사」 중에서 소설집의 제목 ‘여덟 편의 안부 인사’는 이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지금이 어떤 과정 속을 지나가는 시간이기를 바라면서, 막막하지만 자신들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하루빨리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펴낸다. ■ 작가 노트 하명희 | 십일월이 오면 “내가 꺼내놓은 비밀은 울음을 낳을 수 있을까. 십일월이 오면 ‘눈이 오네요’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울지 못한 말을 당신에게, 나의 당신에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조해진 | 혜영의 안부 인사 “생김이나 이름은 잊혀도 소설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대학의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과에서, 가끔은 독립서점과 시민 대상 교육기관에서 합평 작품이 되어준 누군가의 소설들…… 그 소설들은 어디로 갔을까.” 임솔아 |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가끔은 친구들과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가끔은 아무리 멀어지더라도 함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승은 | 피서본능 “폭우가 쏟아지는 산악 도로. 차 한 대가 달리고 있다. 차 안의 부부와 아이 한 명이 프레임 안으로 등장한다. 차는 곧 멈춰 선다. 차에서 내린 남자와 아이를 안고 선 여자의 얼굴을 카메라가 비춘다.” 오수연 | 솥 “자신이 일으켜 세운 제국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때 장광제가 지었을 표정은, 인간 각자, 의식이 있는 생명 하나하나가 언젠가는 지을 표정이다.” 박서련 | A Queen Sized Hole “내가 욕망하는 것들이 내게 구멍을 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관이 구덩이를 필요로 했듯이.” 권여선 | 기억의 왈츠 “과거의 소란과 현재의 적요가 순식간에 달라붙어, 동전의 앞뒷면처럼 내 안에 공존하게 되는 동시성이 종종 나를 혼란에 빠트립니다. 그 찰나마다 다른 삶들이, 이제는 살아낼 수 없는 삶들이 자꾸 태어나니까요.” 강영숙 | 남산식물원 “2006년에 없어진 남산식물원은 내게 솔라리스 같은 장소였다. 조금은 불투명한 두꺼운 유리로 만든 팔각정 형태의 건물 안에 잎이 크고 건강한 식물들이 가득했다. 그 식물들의 호흡에, 리듬에, 생기에 무작정 기대고 싶은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