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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한지혜
교유서가 202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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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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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외출
이사
사루비아
왜 던지지 않았을까, 소년은
목포행 완행열차
햇빛 밝은
호출, 1995
자전거 타는 여자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집으로 『안녕, 레나』와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가 있으며, 각각 문예진흥원이 뽑은 우수문학도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뽑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일간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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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06g | 130*200*14mm
ISBN13
9791191278576

책 속으로

“어쩌면 가장 깊고 큰 마음은
처음 출발하던 그 자리에 여전히 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 (…)
그러하다. 이것이 나의 처음이고, 나의 시작이고, 나의 길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출근길에 나는 늘 두 사람을 만난다. 한 사람은 여자이고, 한 사람은 남자이다. 한 사람은 어린아이이고, 한 사람은 이제 막 머리가 희끗해진 노년의 신사이다. 한 사람은 나를 보면 말을 걸고 싶어 안달이고, 한 사람은 그저 소리 없이 나를 훑어보기만 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되도록 만나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내게는 동일인물이나 마찬가지이다.
--- 「외출」 중에서

가끔은 유서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말 죽을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상상은 권태랄까 나른함이랄까 하는 것들을 잠시 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별것 아닌 것이 돼버리는 까닭이었다. 죽는 이유는 유서를 쓸 때마다 달랐다. 어떤 날은 가난을 견딜 수가 없어서 죽고, 어떤 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죽고 (…) 그리고 대부분은 지루해서 죽었다. 마지막 이유는 언제나 마음에 든다.
--- 「외출」 중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언제나 같이 찾아온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듯싶다. 내 경우에는 대개 좋은 일이 먼저 찾아온다. 그러고 난 후에 찾아오는 나쁜 일은 언제나 앞서 찾아온 좋은 일들을 취소시키거나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린다. 이번 여름에도 마찬가지였다.
--- 「이사」 중에서

그런데 왜 아파트에서 살긴요? 그래도 맘만 좀 독하게 먹으면 아파트가 살기는 편해요. 그냥 안에서 문 단단히 걸어 잠그고 누가 와도 나 몰라라 하면 되거든요. 잡상인이 찾아와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부녀회에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관리실에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몇 번만 그렇게 살면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요. 그냥 자기들 관심 밖에 내놓는 거죠.
--- 「사루비아」 중에서

어쩌다가 모여서 입이 심심하거나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우르르 모여서 입을 댓발이나 내밀고 궁시렁거리겠지만, 뭐 섞여 산다고 안 그러겠어요. 사람 사는 데서 말 나오지 어디 딴 데서 나오나요. 살면서 젤 무서운 게 사람이에요.
--- 「사루비아」 중에서

승리는 다른 자잘한 기억들을 묻어두게 만드는 법이다. 승리에 취하면 다른 아픈 것들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너도 실패했고, 나도 실패했다. 하기야 그 거대한 축제 앞에서 우리가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 「왜 던지지 않았을까, 소년은」 중에서

초상 치면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요? 사람들은 그래도 서방이라고 설워 우는 줄 압디다만 그 잘난 서방 떠난 게 섧기는 머시 설워. 그 화상하고 살아온 내 팔자가 또렷하니 생각나면서 그게 설워 눈물이 납디다. 이 갈듯이 뽀득뽀득 갈아서 강물에 뿌려주고 솔솔 떠내려가는 거 보면서 내가 그날은 담배 한 대 피웠소.
--- 「목포행 완행열차」 중에서

사람은 죽는다. 누구나 죽는다. 죽음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유일하고 공평하게 나눠 받은 신의 선물이다. 누구도 그걸 받지 못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기 혼자에게만 닥칠 일이 아닌데도 그러하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되도록 그 순간을 늦추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 「햇빛 밝은」 중에서

실제로 자살률은 비가 오고 흐린 날보다 한없이 맑고 푸르고 따뜻한 날 더 높다고 한다. 당연하다. 햇빛 찬란한 날씨는 사람들을, 삶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내 속사정일랑 아랑곳없이 맑고 환한 시절을 보면 죽고 싶어진다. 뭐지? 이렇게 세상이 밝은데, 난 왜 여기 있는 거지 싶다.
--- 「햇빛 밝은」 중에서

“어떤 사람이죠? 남자였나요?”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향한 중년 남자의 등을 향해 물었다. 망설이는 듯 가만히 서 있던 중년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냥 1995년이었습니다.”
--- 「호출, 1995」 중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엄마는 한 마리 나비 같았다. 그대로 어딘가 훨훨 날아가도 좋을 것만 같았다. 홀린 듯 넋을 잃은 채 엄마를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목구멍 안쪽에서 떫고 쓰고 독한 그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 「자전거 타는 여자」 중에서

내 직업은 이야기꾼이다. 정확하게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가 오면 사람들은 나를 찾아온다.

---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중에서

출판사 리뷰

“그냥 1995년이었습니다”
산문집 『참 괜찮은 눈이 온다』와 소설집 『물 그림 엄마』를 연이어 출간하며 사랑을 받았던 한지혜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이 17년 만에 다시 찾아온다. 신춘문예 등단 이후 7년간 발표한 소설들을 묶어 2004년에 출간한 『안녕, 레나』는 한국 소설을 좋아한 이들에게는 보석 같은 작품집이었으나, 더 많은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절판돼 있었다. 여전히 생명력이 유효한 이 소설집은 눈 밝은 몇몇 독자들의 기다림에 응답하듯, 새 옷을 입고 좀더 다져진 문장으로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담담한 문체로 삶의 역설을 날카롭게 꿰뚫었다’는 호평을 받았던 이 소설집에는 등단작 「외출」과 표제작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를 포함해 총 아홉 개의 단편을 담았다.

죽는 이유는 유서를 쓸 때마다 달랐다. 어떤 날은 가난을 견딜 수가 없어서 죽고, 어떤 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죽고, 어떤 날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기 위해서 죽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루해서 죽었다. 마지막 이유는 언제나 마음에 든다.
--- 「외출」 중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것과 소설 쓰기의 구분을 거부하는 저자는 1998년 IMF외환위기 이후 사회의 경계선에서 자꾸만 밀려나는 젊은이들의 위태로운 풍경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이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더욱 야만적으로 가속화된 경쟁사회에서 간신히 버텨내는 MZ세대의 현재 모습과 소스라치게 닮았는데, 이십여 년 시간의 격차가 무색하게 만듦으로써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서글픈 위로를 건넨다. 특히 「목포행 완행열차」는 한지혜 소설의 중추를 이루는 굴곡진 여성 서사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불행에 짓밟힌 자가 휘청거리면서도 삶을 이끌어나가는 의연한 자세를 보여준다. 대다수의?사람이 행복보다 불행에 밀착된 퍽퍽한 일상 속에서도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굴려 가는 것처럼,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어제의 우리가 불렸을 혹은 내일의 우리가 불릴 또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도 나도 믿을 수 없을 때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 「사루비아」 중에서

고통스러운 기억조차도 뭉글한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원래가 스스로 자기 길을 만들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응어리진 서사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대체로 차가운 공간에 내팽겨진 쓸쓸하고 우울한 젊은 존재들이다. 출판사에서 정리해고되자 도서관에서 시간을 죽이는 ‘청년실업자’(「이사」), 광고대행사의 인턴사원으로 일하며 정규직 전환을 꿈꾸지만 결국 해고된 ‘현경’(「외출」), 아버지의 투병생활로 가장이 되어버린 ‘직장인 딸’(「자전거?타는 여자」), 실연을 당할 때마다 자살을 시도하는 ‘여자 R’(「햇빛 밝은」)와 같이, 욕망마저 박탈당한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초상화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거나 음습한 분위기만 풍기는 것은 아니다. 고된 농사일을 노동요를 부르며 견뎌내듯, 「목포행 완행 열차」는 “세상에 신파란 신파를 죄 갖다 엮으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이요”라고 씩씩하게 읊조리는 나이든 여성의 일인칭 독백으로 서술된다. 여성은 자신의 박복한 인생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데, 이는 불행을 겪은 자만이 터득한 알싸한 위로를 건넨다.

“너는 그 경기장 안에 서 있었다”
이 책을 통해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한지혜 작가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작가는 첫 문장부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속절없이 끌어당긴다. “그 불씨가 처음 피어오른 것은 대림아파트 102동 아파트 복도 맨 끝 현관이었다.”(「사루비아」), “그러던 어느 한 날, 나는 생애 최초로 축구 경기를 보았다. 너는 그 경기장 안에 서 있었다.”(「왜 던지지 않았을까, 소년은」), “결혼식을 일주일 남기고 옛 애인들과 관계된 물건을 정리하기로 했다.”(「호출, 1995」), “마을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들어오는 길이고, 하나는 나가는 길이다. 들어오는 길은 푸르고, 나가는 길은 붉다.”(「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에서 알 수 있듯이, 각 이야기의 문을 열면 흡인력과 호기심을 상승시키는 한지혜 작가만의 문장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마음도 스스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읽지 못한다는 것이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읽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싶다. 일단 그들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 당연하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에서

2021년을 사는 우리에게 이 소설집에 담긴 작품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오는데, 그때의 청년과 지금의 청년이 겪어야 하는 사회문제의 뿌리가 사실상 똑같기 때문이다. “20년도 전에 쓴 소설을 다시 꺼내놓는다. 다시 읽어보면서 두 번 놀랐다. 우선은 우리가 여전히 비슷한 풍경 속에 살고 있구나 하는 자각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실업과 자조에 갇힌 청년 세대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빈부의 양극화와 고립의 문제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작가의 말」) 이 책은 이미 그 시간을 통과했던 20년 전의 청년들과 현재 그 시간을 관통하는 청년들의 자화상이자 각기 다른 세대를 연결하는 꼭짓점으로, 그리하여 그때나 지금이나 온통 회색으로 물든 청년들의 감정에 새로운 색깔과 이름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 『안녕, 레나』(새움, 2004)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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