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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인가
묻는 남자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 너의 집이 좋아 긁지 마, 제인 어느 로프공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 해설 | 집이 왜 이래요? _전성욱(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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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봤지? 내가 블로그에 뻔뻔한 놈들에 대해 쓰고 있는 것.”
“아니, 몰라.” 왜 그랬을까. 나는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왜 몰라? 내 블로그 방문자 목록에 네 이름이 있던데.” 나는 꽉 쥔 주먹으로 내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다. “왜 거짓말해? 너도 나한테 쫄리는 일 있어?” “쫄리는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정색하고 물었던 탓일까. “야, 그냥 한 소리야. 왜 그렇게 발끈하니?” ---「이것은 소설인가」중에서 그러나 정말 이상도 하지. 그 순간 내 안에서 책을 쓰고 싶다는, 이 일을 소설답게 재구성하겠다는 의지와 욕망이 꿈틀거렸다. 이것은 소설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소설인가」중에서 발코니 창을 활짝 열었다가 다시 반쯤 닫고 블라인드를 걷었다. 문득 2호집 남자가 난간을 타고 넘어와 물을 것 같았다. 미림여고 나오셨나요? 여자는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여러 번 때렸다. 그러고는 자신이 노이로제 상태란 걸 인정했다. ---「묻는 남자」중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꼭 10년 동안 글쓰기에 매달렸다. 하지만 나는 글만 쓰는 삶을 산 적은 없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편의점, 커피숍, 음식점, 부품 공장 등등. 그래서 낮에 일하면 밤에 글을 썼고 밤에 일하면 낮에 글을 썼다. 그 원고량은 평균 1년에 책 두 권 분량, 약 36만 자 정도였다.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중에서 나는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자꾸 눈이 감겼다. 엘렌 최 부부에게 수면을 팔았기 때문에 나는 아이 옆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게 맞았다. 아침이 이상하리만치 더디게 오고 있었다.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중에서 내가 구매한 집은 신축 빌라 단지 내에 있었다. 낮에는 그런대로 봐줄 만한 전경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밤이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딘가 섬뜩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동네였다. 대로변에서 우회전하여 700미터를 진입하면 아주 커다란 검은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것은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빌라 건물이었다. 검은 마을이라 불리면 딱 좋은 곳. 어찌 된 일인지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들리는 것은 오로지 내 숨소리뿐이었다. ---「너의 집이 좋아」중에서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비디오폰을 눌렀다. 복도에는 검은 침묵만이 흘렀다. 실내등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가로등까지 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둠을 물어뜯는 듯한 사나운 개 짖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너의 집이 좋아」중에서 “아니, 행복해 보여. 그래서 불행하게 느껴져.” 제인의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 외근에서 돌아온 팀장의 손에는 커피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김대리뿐 아니라 팀원들 전부가 팀장을 냉랭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팀장과 깊은 사이가 된 지 꼭 180일 되는 날이었다. 원인 모를 피부병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긁지 마, 제인」중에서 제인은 지하철을 타고 첫 출근 하던 날을 생각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믿었던 그때를 생각하니 심장 한가운데로 찌르르한 통증이 지나갔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생각해보아야 했다. ---「긁지 마, 제인」중에서 엄마는 랑데부에 입성하자마자 하루만큼씩 시들었다. 어쩌면 랑데부에 살아서가 아니라 랑데부 5층에 살아서인지도 모르겠다. 1층부터 4층까지는 허가가 난 건물이었고 5층은 불법으로 올려 지은 무허가 건물이었다. 아래층 이웃들은 걸핏하면 우리를 깔보고 통제하려고 했다. ---「어느 로프공」중에서 아빠의 외도로 파탄이 난 가정에서 자란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불신이 많았다. 아빠 때문에 상처가 많은 엄마는 자기 연민으로 괴로워한 사람이었다. 내가 다가가면 엄마는 버거워했다. 윤오와 헤어지면서 내 과거의 슬픔까지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중에서 “승운씨, 내가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었죠? 지나고 보니 알겠더라고요. 내가 그 사람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뭔가 거절당할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능동적 피해자가 되려고 한 것 같아요.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떠나자고…….”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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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안식처가 아닌 생존의 최전선
공간이 말하는 계급과 소외 “불법의 공간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긴긴 회의가 이어졌고 마침내 우리는 무모하지만 철제계단을 없애버리기로 결정했다. 허무맹랑한 일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랑데부에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건물에서 과자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벽의 일부가 조금씩 무너지는데도 이곳은 건축물 안정등급 C를 받았다.”(「어느 로프공」) 작가는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의 결핍, 상처, 소외라는 현실적 어려움을 드러낸다. 집은 더이상 따스한 안식처가 아니다. 치열한 생존의 최전선이자 계급적 소외를 증명하는 서글픈 상징이 되었다. 「어느 로프공」에서 불법 건물 5층에 터를 잡은 극빈층 인물들은 합법 공간의 주민들에게 ‘윗것’, ‘저것’이라 불리며 멸시당한다.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은 사치일 뿐 아니라 오직 불안과 고립, 차별만을 감내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공간적 소외는 「너의 집이 좋아」에 등장하는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 대출을 받아 경기도 외곽의 신축 빌라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지만 정작 주변은 온통 불 꺼진 빈집투성이다. 유령 도시 같은 곳에서 1년째 홀로 버티는 주인공에게 주거 불안과 외로움, 이웃과의 단절을 고스란히 투영하며 더욱 깊은 고립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렇다면 합법과 풍요의 공간에 진입한 이들은 이러한 불안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울까.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는 그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다. 고급 아파트 ‘더 퍼스트 프레스티지 테라스’ 311동 2002호라는 지극히 합법적이고 선망받는 공간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주인공의 삶은 역설적이다. 타인의 풍요를 대리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오히려 더욱 선명해지는 계급적 차별과 경제적 결핍,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과 열등감은 공간의 합법성 유무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이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상과 내면을 침범하고 트라우마를 재생산하는 시선 그리고 윤리적 부채 “빌려갔으면 제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했으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이것은 소설인가」) 주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 있다. 바로 「묻는 남자」의 수영이다. 수영이 그토록 잊고 싶어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시 촉발한 것은 옆집 남자의 “미림여고 나오지 않으셨나요?”라는 질문이다. 평범한 이 질문은 수영에게 불법 동영상과 연결된 불안과 공포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런 불안과 공포는 “한 개의 문장 부호와 열두 개의 글자가 불 꺼진 조명등과 냉장고 손잡이와 개수대에 쌓아놓은 설거짓거리 같은 데로 파고들” 만큼 가장 편안해야 할 집 안 구석구석까지 침투할 뿐 아니라 “발코니 방충망에 잠을 잃은 매미들이 옆집 남자의 눈알처럼 다닥다닥 붙어 여자를 지켜보”듯 수영을 더욱더 고립시킨다. 이처럼 일상 공간마저 잠식한 시선은 수영을 더욱더 소외시키며, 결국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과 존재론적 불안을 각인시킨다. 여기 주변인의 시선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은 또다른 인물이 있다. 바로 「이것은 소설인가」의 나미다. 하지만 관철 역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그는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 대학 동기인 두 사람은 10년간 소식이 끊긴 채 지냈지만 나미가 자신의 블로그에 과거에 겪은 사건과 주변 인물들을 저격하는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다시 연락한다. 나미는 관철에게 전화를 걸어 대학시절 빌려갔던 책을 돌려달라고 한다. 이에 관철은 과거 자신의 무책임함을 반성하고 나미에게 사과한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전성욱은 이렇게 평한다. “나미의 귀환이란 바로 그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윤리적 추궁이라고 할 수 있다. 빌려갔으면 돌려주어야 하고, 잘못했으면 용서를 구하거나 벌을 받아야 한다. 소설이란 바로 그 상식적인 윤리적 감각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타인의 시선이 개인에게 주는 폭력성을 폭로하는 동시에, 그 시선 아래 묻혀 있던 과거의 책임과 상식적인 윤리 의식을 묻는다. 상처를 통한 관계의 변화, 삶을 새로 일으키는 힘 “엄마도 힘들었겠죠. 그래요. 난 엄마를 이해해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내가 감기로 몸이 아팠을 때 엄마한테 날 좀 안아주면 안 되냐고 물었거든요. 우리 엄마가 그때 뭐라 한 줄 알아요? 동희야, 네가 널 안아. 엄마도 너무 힘들어. 엄마는 내 부탁을 매번 거절했어요. 나는 거절 속에서 성장했어요.”(「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 작가는 집이라는 실존적 문제와 더불어 관계의 상처, 주변의 시선, 상실감 등으로 인해 삶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그린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주인공 동희는 아버지의 외도로 파탄 난 가정, 어머니와의 관계, 거절 속에서 성장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타인과 세상에 깊은 불신을 품고 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극단적인 자기방어적 태도를 취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고 조금씩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해나간다. 「긁지 마, 제인」의 제인 역시 가족의 해체, 모녀간의 갈등, 실패로 끝난 사랑, 사회적 고립이라는 복합적인 결핍에서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 심리적 상처는 피부병이라는 신체 증상으로 발현되어 그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이런 제인에게 에어컨은 극심한 피부병의 고통을 견디며 일상을 유지하게 해주는 생존 도구다. 그러나 제인은 에어컨 실외기를 떨어뜨린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전성욱이 “이 모녀를 사로잡고 있던 해묵은 상처를 떨쳐 보내고, 그들의 미래를 애틋한 희망으로 축복하는 것 같다”고 평한 바와 같이 이는 제인이 자신을 갉아먹던 과거의 상처와 결핍을 툭툭 털어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인물들의 아픔을 단순히 개인의 비극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주거 불안정이 삶을 어떻게 흔드는지, 해체된 가족과 깨진 사랑이 인간을 얼마나 철저하게 고립시키는지를 보여주며 현대사회의 상처 입고 결핍된 관계의 불안정성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해부한다. 삶의 막바지에 내몰린 이들이 서로의 결핍을 보듬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윤리적 관계’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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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규 작가는 삶을 과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린 작고 사소한 순간들, 그냥 넘겨버렸으나 어쩐지 개운치 않았던 감정을 꼭 붙들어 주머니 속에 넣는다. 그렇게 소설의 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활달하고 경쾌해 보이는 발걸음인데, 뒤돌아보면 바스러진 슬픔의 조각들이 점점이 바닥에 남아 있다. 그 슬픔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음껏 매진할 조건을 갖지 못한 사람들, 애써도 온당한 제 몫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 열심히 살수록 현실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그들을 바라보는 정확한 애정의 시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흠집 생긴 사과 앞에서 누가 그랬는지 궁금해하기 전에 상처 입은 사과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이 고은규 소설의 윤리이다. 진실하게 직시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그 자세가 소중하다. -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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