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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살해새끼를 죽이는 암컷들 “제가 달리 뭘 할 수 있었겠어요 ” 환대받지 못한 아이들 + 더 읽기: 모계 사회 체험기2장. 유기루소의 아이들 유기 영아 박물관 고아 기차 보호출산제 3장. 방임보호 종료 청년들 국가는 어떤 보호자였나 청년 A(3년 차): “아직은 괜찮아요” 청년 B(1년 2개월 차): “아이들한테 약 먹이지 마세요!” 청년 C(5년 차): 내겐 너무 어려운 사회 요즘의 보육원 아이들 청년 D(1년 차): “공허함은 아직도 있죠” 부모 있는 고아, 조민호 4장. 입양‘수출’된 아이들 입양기관은 왜 부모를 찾지 않았나 낯선 나라에서 무국적자 나를 알권리는 기본권목소리 내기 시작한 국내 입양인들 + 더 읽기: 자살률 높은 입양인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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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죽이는 암컷들먼저, 아이들은 왜 살해당했을까. 직접적인 살해범은 대부분 엄마다. 반인륜적인 비정한 엄마일까. 저자는 인류를 포함한 동물의 진화사를 근거로 암컷이 새끼를 죽이는 일은 늘 있었음을 환기한다. 암컷은 양육에 도움을 줄 존재가 없는 등 양육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일 때 그런 선택을 한다. 또한 근원적으로 모든 암컷이 모성애를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인간 엄마의 아기 살해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를 환경이 된다면 대부분 엄마는 살해나 유기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살해당할까. 과거 신문들을 살펴보면 엄마가 과부라서, 먹고살기 힘들어서, 미혼이라서 그리고 아기가 딸이라서 죽임을 당하곤 했다. 이것은 가부장제, 부계 사회,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근원적인 살해 주범임을 말해 준다. 물론 한국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니다. 남성 중심 사회라면 어디서든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저자는 일례로 20세기 초·중반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영아 살해 사건들을 소개한다. 만만하게 취급된 아이들그럼, 국가는 살해되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국가가 고아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 ‘고아 기차 운동’이다. 미국은 1854년부터 1929까지 75년 동안 고아들을 기차에 태워 미국 전역으로 이주시켰다. 잠재적 범죄자로 여긴 고아들을 도시에서 농촌으로 보내 순화시키는 한편, 이들에게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도 줄이려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집권 초에 민심을 얻기 위해 고아 등을 황무지로 보내 개간시켰다. 서산개척단이 대표적이다. 이주지에서 사람들은 무급 강제 노동에 시달렸고 말을 듣지 않을 경우 감금, 폭행, 살해를 당하기도 했다.또한 정부는 고아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 입양 기관들은 버젓이 부모가 있는 아이들을 고아로 둔갑시켜 보내기도 했다. 해외 입양은 1970년대 북한이 “남한에서 아기는 새로운 수출품”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고소득을 남기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보육시설에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열여덟 어른’ 즉, 보호 종료 청년들은 많지 않은 국가 보조금을 받고 세상에 홀로 나온다. 간단한 집안일부터 사회생활까지 이들은 막 태어난 아기처럼 세상살이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자립’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이 늘고 있다. 저자는 보호 종료 청년 네 명을 만나 자립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책에 담았다. 원가족과 살게 지원할 것아이들의 삶을 추적한 끝에 저자는 말한다. “태어난 아이들이 잘 살아야 태어날 아이들도 잘 산다.”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해법은 보호 종료 청년, 국내외 입양인 등 당사자들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은 태어난 아이들이 원가족과 살게 지원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가족과 살지 말지는 훗날 아이가 결정하면 될 일이다. 아이의 그 고유한 권리를 국가와 사회가 앞서 빼앗는 것은 엄연한 아동 인권 침해라고 지적한다. 저자도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 저자는 최근 도입된 보호출산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왜 국가가 아이들을 계속 원가족과 분리해 더 낯설고, 먼 곳으로 보내려고 하느냐며 안타까워한다. “아이를 버리게 하고 구하는 것보다 원가족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구할 아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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