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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남미에 간다고?
안지숙
나무달책방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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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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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말머리
남미 45일의 여정

저자 소개 1

2005년 신라문학상 수상. 작품집 『스위핑홀』 외 다수. 한동안 소설 쓰기에 몰두하다가, 요즘은 좋은 풍경에 빠져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간다. 바깥에서는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그립고, 글을 쓰려 앉으면 햇볕과 바람, 숲과 바다가 부르는 소리에 몸이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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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14쪽 | 148*210*20mm
ISBN13
9791197507823

책 속으로

페루 리마까지 오는 비행이 이렇게 지루하고 힘든 줄 알았으면 내가 과연 이 여행을 했을까 싶다.
--- 「첫 문장」 중에서

잡초로 덮인 고지의 평원은 지평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을 밀어내면서 끝 모르게 펼쳐져서는 그를 바라보는 마음을 하염없게 만든다. 어쩌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은 폐가의 마을, 황폐한 벌판과 땅을 적시며 흐르는가 싶으면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물줄기, 잡초를 뜯다 고개를 들고 어딘가로 멀고 무심한 눈길을 보내는 라마와 말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나는 까마버스의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서 그들을 품은 안데스고원을 바라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가 했다. 잠이 들 때마다 나는 버스가 아닌 안데스고원에 누워있었다.
--- p.26

일행과 떨어져 우유니의 끝자락인 베르데호수 앞에서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남미의 땅에 대해 어떤 지식도 경외감도 없이 돈 뭉텅이를 지불하고 오지에 들어선 나를 가소롭다 내치지 않고, 아름답고 거대하고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 주어 고맙다고. 그 존재를 마주한 순간의 놀라움과 환희를, 온전한 감동에 젖어 내 두 발로 서있던 시간을 잊지 않겠노라고 말이다.
--- p.41

수만 년에 걸쳐 얼어붙어 있던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는 이 거인의 땅, 42킬로의 몸쯤 가볍게 날려버릴 바람의 나라 파타고니아에서 내가 기대하고 찾으려 했던 것, 병증과도 같은 울음의 덩어리를 만날 수 있을지. 나는 기대로 마음이 소란스럽다. 비명과 신음이, 감탄과 탄성과 놀람이 울음으로 번역돼 버린 뒤로 내가 찾아온 원형의 소리를 이곳 파타고니아에서 듣게 될는지. 언어의 최초 발화 형태가 울음이니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의 언어로 울음만 한 것이 있으랴, 생각하면 울음 말고 이 땅에서 달리 무엇을 만날 것인가 싶기도 하고.
--- p.57

내일 새벽 네 시 피츠로이봉을 향해 출발해서 카프리호수에서 '불타는 고구마'(피츠로이의 일출을 의미하는 은어)를 알현하고, 정상까지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올 사람은 돌아올 거란다. 그러면 나는? 나는 안 간다.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간다. 남미 올 때 신경차단 주사를 맞고 와서 통증을 덜 느끼고 있지만 허리와 고관절, 등뼈 등 군데군데 망가지고 있는 게 요 며칠 느낌적 느낌으로 전해진다. (…) 크게 서운치는 않다. 일출이 머 별건가. 내 사는 기장 원룸에서 새벽똥 누고 뛰어가면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을 매일 볼 수 있는데. 못 먹는 신포도 아니라고!
--- p.75

백년이고 천년이고 힘차게 내려치는 폭포수를 받아내면서 상처를 안으로 품으며 맷집을 키운, 물빛 짙은 소(沼)를 들여다보노라면 끝내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슬그머니 눈길을 돌리게 된다. 그게 누구든, 무생물인 못이라 해도 마음을 그렇게나 오래 들여다보는 것은 잔인하고 은근 아픈 구석이 있다. 가만가만 눌렀던 숨을 토해내고 소에서 흘러나와 잔잔하게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자 차갑고 청랑한 물이 짜르르 손끝에서 어깨를 지나 몸으로 흘러든다.
--- p.78

등대처럼, 세상의 끝에 혼자 섰을 때, 그림자처럼 영혼처럼 나를 찾아왔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내게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멀리 보냈다. 안데스고원의 심장부로 떠났다가 세상 끝으로 달려온 우는 여자 순영을 돌려보냈다. 기암괴석의 모습으로 정체를 드러냈던 내 속의 어린 괴물을 달래서 보냈다. 내가 순영이었던가. 내가 괴물이었을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차라리 거대한 거머리처럼 바위에 몸을 얹은 물개에 가까웠다. 세상의 끝에서 슬픔을 버리고 지긋지긋한 자신을 버리고 오려고 했는데, 버릴 게 없었다. 가진 게 없었다. 나는 나를 버리지 않고, 버릴 수가 없어 세상을 버렸다. 세상의 끝을 버렸다. 끝 따위. 진작에 이랬어야 했다.

--- p.96

출판사 리뷰

여행 일기도 소설가가 쓰니 다르네요

안지숙 소설가는 남미를 여행하며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여행 일기를 썼다. 숙소로 돌아오면 씻는 것도 힘들 만큼 몸이 고되었으나 포스팅한 글을 대하는 페친들의 반응이 고무적이어서 계속 쓰게 되었다. 특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페친들의 반응이 피곤함을 잊게 했고, 힘든 여정을 견디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행 일기인데 한 편의 멋진 에세이를 만난 느낌이다, 소설가라 그런지 소설 같은 여행기가 인상적이다, 이런 댓글이 달리면 침대에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버릴 SNS의 글을 모아놓는 게 좋겠다 싶어 한글문서에 옮겨오는 과정에서 책을 만드는 데까지 일이 커졌다. 남미 45일간의 여정을 거치며 1일 1포스팅을 하고, 원고를 모으고, 책을 편집하고 만드는 이 모든 과정을 안지숙 소설가 혼자서 했다. 그 사실이 서툰 편집과 볼품없는 책의 변명이 될 수는 없지만, 1인미디어 시대에 발맞춘 소설가의 또다른 활동상을 보여준 것으로 의미 부여를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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