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보편적으로 이상(理想)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추상적인 관념이다. 적어도 국가 또는 민족이 떠맡아 진행시켜야 하는 역사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발전할 수밖에 없는데, 어쩌면 그것은 또 하나의 비극적인 모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끝없이 굴러가는 모순의 수레바퀴가 아닌가. 과거의 에스파냐는 바로 이 모순의 수레바퀴와 함께 이상을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그 기세는 마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 키호테 같았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에 국가적 이상이 실현되는가 싶었다.
1492년에 에스파냐 국민은 힘을 합해 아랍 세력을 축출하고 781년 만에 기독교의 깃발 아래 국토 통일을 이루었다. 바로 그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두 대업은 다음 세기들의 몰락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가 되고 말았다. 1588년 영국에 의해 무적 함대가 침몰되면서 에스파냐의 운명은 결정적으로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앙헬 가니베트가 『에스파냐 이상』을 집필하던 19세기 말은 바로 국운의 쇠퇴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1898년 에스파냐는 그나마 남아 있던 식민지 필리핀과 푸에르토리코를 미서전쟁에서 잃었으며, 국가가 왕당파와 공화파로 완전히 양분되었다. 게다가 이 두 세력은 무력 충돌도 마다하지 않았다. 1931년 왕정이 폐지되고 총선에 따라 공화파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어 에스파냐 내란(1936~39)이 일어났다. 36년간의 프랑코 독재정권이 종식되고 1975년 마침내 왕정이 복고되었다. 다행히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여 서구식 의회민주주의인 내각제를 강력히 추진했다. 덕분에 에스파냐 국민은 실로 오랜만에 정부다운 정부 밑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이제 에스파냐는 과거와 같은 비극적인 붕괴를 되풀이하지 않게 되었다. 한때 “피레네 산맥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유럽 인종이 아니다”라는 모욕적인 말이 콤플렉스로 가슴속에 맺혀 있던 에스파냐인들은 이제 명실공히 유럽인이 되었다. 앙헬 가니베트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에스파냐 이상’이 실현된 것이다. 앙헬 가니베트의 『에스파냐 이상』은 A, B, C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A에서 그는 에스파냐 국민의 성격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자 근간을 세네카의 스토아 학파로 삼고 있다. 인간이 삶을 누리는 데 행복하거나 불행한 일을 겪는 것은 다반사로 반복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자연스러운 현상을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며 동요하고 있다. 그러나 의지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는 자는 오직 자연에 순응하면서 그것을 즐기든지 극복하든지 한다. 만약 그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면 그것을 재빨리 절대자의 뜻에 맡긴다. 그럼으로써 늘 마음의 안정을 취하면서 삶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다. 세네카의 이 주장은 고스란히 기독교의 윤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기독교 윤리정신이 에스파냐 기질의 기본 요소로 정착하려 할 때 이슬람 교도의 침입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 열정적인 민족은 그들의 찬란한 문화를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전파하면서 에스파냐인의 민족적 기질을 마구 쑤셔놓았다. 이리하여 에스파냐 국민성의 암적 존재인 개인주의 정신이 창출된 것이다. 이교도의 정신과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사실 자체가 절대로 집단성을 지닐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B에서는 에스파냐 정치의 역사적 흐름을 분석한다. 이사벨과 페르난도 가톨릭왕 부처가 에스파냐를 통일하고 신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 에스파냐의 국운은 극치에 달한다. 그러나 그 뒤 정치가들의 부정적인 시각과 소극적인 자세로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식민지 개발에 지나치게 많은 기력을 불필요할 정도로 소모한다. 그러므로 그는 에스파냐가 이 소모전에서 빨리 탈피해야 하며, 내부적 재건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옛 전통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C에서 그는 매우 염세적인 색채로 에스파냐의 운명을 묘사한다. 에스파냐는 내부적 재건을 도모하는 데 이미 그 한계를 감지하는 동시에 그 불가능성까지 간파했다. 그런데도 에스파냐는 전통적인 방법―기독교 윤리에 근간을 두는 스토아적 방법―에 매달리지 않았다. 즉 신의 뜻에 의지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그 어떤 신비스런 방법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에스파냐가 무력증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적 중심점을 눈앞에 두고도 붙잡을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그 골치 아픈 허세 덩어리들(해외에 흩어져 있는 식민지들)을 미련 없이 내던져버리고, 모두 에스파냐 안으로 모여 재건해서 과거의 영광을 찾자고 역설한다. 끝으로 옮긴이 장선영은 이 책의 말미에 「간추린 에스파냐 역사」와 「에스파냐와 한국 역사 비교」를 덧붙였다. 에스파냐와 한국은 매우 닮은 꼴이다. 두 나라의 지형, 역사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비교해보면서 읽어보자. 그들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