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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갈 고향길은 어디메뇨
유치환의 향수/서정주의 아득한 길/일본의 다다이스트 시인/밤차에 짐짝처럼 실려간 이시우 해방된 거리에 핀 봉선화 오장환의 ?라스트 트레인?/베토벤의 「합창」을 좋아한 다방 소년/이 바쁜 때에 다방이 뭐요 「어두운 일요일」의 「병든 서울」 두고 온 고향과 사랑이 그리워 시름 많은 북쪽 하늘 그리던 이용악/남궁연의 “8월로 돌아가자” 권투 선수 시인과 흑인과의 우정 문예서림의 여기자 문예서림의 여기자/김동리와 김동석의 문학 논쟁 여인 소극장의 꽃바람 최은희의 결혼식/여인 소극장/노란 쉐터의 멋쟁이 김수영/청년문협과 문학동맹 거리는 모두 나의 설움이다 넘어간 좌익계 연극인들/판잣집의 망년회/서장의 초대를 받은 소설가/경상도 문둥이 박용주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가거라 삼팔선아/6?25와 명동 폐허의 거리에도 꽃은 피고 잡초 우거진 명동/폐허 위에 피어난 꽃을 그리는 김환기/폐허 속에 핀 「한 송이 국화꽃」 안주는 두부 하나 저 생은 그렇게 고독하지 않으리/조지훈의 술주정/집시 남작의 애인 같은 귀걸이 마담/전혜린의 교양/황정란의 비극 막걸리에서 위스키로 박인환의 술병에선 꽃이 쏟아지고/조병화의 고독/고독한 뒷모습의 공초 오상순/양주집의 백일몽 뒷골목의 호랑나비들 이 거리에 나타난 닉슨/밤이면 너울대는 호랑나비 주머니는 적막강산이지만 김승호의 마시는 이야기/주머니는 어느 때고 적막강산 명동 샹송 「세월이 가면」 어쩔라고 그런 노래는 지었노/꽃 피기 전에 외상 술값 갚겠다더니/비오는 날의 졸곡제/술 파는 시인의 아내 정이란 이상한 것 취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검은 눈동자의 눈이 무서운 전혜린/인간은 벌거벗은 외로운 덩어리일 뿐/마담의 정 막걸리만 장마처럼 넘쳐흘러 내 고독과 설움은 술만이 알 것이다/조병화의 술집 순례/오늘은 한턱 쓰는 날이야, 작품을 한 개 팔았지/그 놈의 사랑 때문에/삭발한 김수영/술잔을 든 채 가버린 김인수/술집의 오페라 금간 사람들 비 오는 크리스마스이브/농사일보다 술집 일이 더 좋아/대폿집의 테너 가수/금 간 사람들 술잔 속의 수주 선생 약병을 들고 술집에 나타난 변영로/이해랑의 「애주가의 변」 구경꾼은 싫어요, 어서 술잔을 드세요 과거를 가진 애정에 우는 연인들/이중섭을 그리며/알콜은 지조를 지키는 데 필요한 것/혼혈아 헨리 장 세상은 모두 그게 그거 학사주점의 등장/세상은 모두 그게 그거/모든 일 잊고 가라, 광기의 눈망울 전혜린이여 모든 사람이 다 귀중하다 판잣집에서 죽어간 윤용하/ 외로운 강 아줌마, 강효실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세대 교체된 은성 주점/부용산 오리길로 가버린 조영숙/달라져 가는 판도/명동은 이제 끝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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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명동의 품에 돌아온 기분이다. 올 가을에 서울에서 가진 전시회 관계로 한달쯤 명동의 숙소에서 머무르게 되고 보니 30년 전쯤 전, 이 거리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던 일들이 새삼 뚜렷이 떠오른다. 명동과 충무로 길을 걸으며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옛날의 친구들을 애타게 그려본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던 명동, 그곳은 흙바닥의 길이 몹시 좁고 양옆으로 나지막한 일본식 건물이 서 있고, 대폿집이 줄줄이 이어진 그런 곳이었다. (…)내가 명동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1947년 경. 해방 직전, 일본에서 나와 서울에 올라온 것이 스물 댓 살의 풋내기였을 때인데, 그 당시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던 소공동?명동?충무로에 나도 드나들게 됐던 것이다. 그때는 서울이 좁기도 하였지만 문인?화가?음악인들의 수가 적었던 까닭에 우리는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꼭 벌 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모두가 가난하고 그렇다고 타오르는 정열을 집안에서 혼자 삭이기에는 모두가 너무 젊었을 때였다.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 닥치는 대로 문학?미술?음악 등을 토해내곤 하였다. 명동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산실이 아닐까? 물론 그때는 나도 젊었고 주변 사람들 모두가 젊었고, 그리고 나라도, 우리 문화도 모두 젊었을 때였다. 해방 이후 괜스레 커다란 꿈속에서 허공을 허우적거려 보려는 턱없는 욕심도, 6.25전쟁의 쓰리고 비참한 자포자기도 한물 가시고 이제는 그것들이 밑거름이 되어 어느 만큼 현실감을 가진 우리 문화가 형성되었을 때였다. 새삼 해방 직후의 그 설렁임과 6.25 이후의 스산했고 분주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생각나고 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그 영상들로 인하여 더욱 애틋이 옛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흙바닥이 질척거리던 명동거리와 대폿집에서 뿜어내던 북어 굽는 냄새, 솜털이 스칠 정도로 밀착되어 스쳐가던 그때가, 그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립기만 하다. 그리고 명동은 예처럼 지금도 살아 흐르고 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