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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살고, 쓰고, 실천한 ‘신채호’처럼!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단재 신채호 평전』을 썼고, 9권짜리 『단재 신채호 전집』도 출간했고, 신채호를 주제로 논문도 몇 편을 썼고, ‘대륙의 불꽃’이라는 주제로 신채호가 중국에서 활약했던 흔적을 찾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참여해 함께 돌아다닌 신채호 전문가이다. 그런 그가 소설을 펴낸 이유는 러시아, 만주, 중국, 대만을 거치는 긴 망명 기간, 8년여의 혹독한 감옥살이라는 ‘문자 없는’ 공간을 메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집’과 ‘평전’의 딱딱한 주석과 설명으로는 담지 못하는 이야기를 상상으로 채우고, 수많은 지식인과 언론인이 타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민족수난기를 이겨 낸 ‘신채호상(像)’을 재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어른이 사라지고, 올바른 지식인과 언론인을 찾기 힘든 혼란한 이 시대에, 저자는 조국 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바르게 살고, 바르게 쓰고, 올곧게 실천한 ‘신채호 정신’을 우리 모두의 시대정신으로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채호의 이야기를 우리가 꼭 읽고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은 신채호가 쓴 소설 『꿈하늘(夢天)』의 한 부분에서 가져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살면 대적(大敵)이 죽고 / 대적이 살면 내가 죽나니 / 그러기에 내 올 때에 칼 들고 왔다 / 대적아 대적아 / 네 칼이 세던가 내 칼이 센가 싸워 보자.” 이 대목은 그가 항일무장투쟁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면서 자신의 운명을 내다본 듯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신채호의 소설 제목으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신채호의 외침 이 작품은 신채호를 단순한 역사적 인물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채호가 추구했던 ‘진리’와 ‘진실’을 현대 사회와 연결해 재조명한다. 신채호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이지만 그는 투철한 언론인이었다. 신채호의 글이 오늘날에도 사회적 부조리와 지식인의 역할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가 만일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들을 알지 못하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키케로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역사의식을 북돋우고 현대 사회의 지식인과 언론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신채호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도전에도 귀감이 되는 원천이기도 하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 외로운 투쟁 속에서도 진실을 좇았던 사람, 끝까지 꺾이지 않은 신념과 불굴의 의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실천정신은 우리가 본받고 되새겨야 할 정신이다. 뤼순 감옥에서도 펜을 놓지 않다가 숨을 거둔 지 90여 년이 지났지만 ‘신채호의 외침’은 오늘날 우리를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어떤 내용이 허구일까? 신채호는 하나뿐인 피붙이인 조카가 친일파와 결혼한다고 하자, 망명 이후 유일하게 고국을 몰래 찾아 조카를 만난다. 신채호가 설득을 해보지만 조카가 마음을 바꾸지 않자 신채호는 혈육의 정을 끊는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자기 손가락을 자른다. 독자들은 이 장면을 보며 분명 작가의 ‘허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다. 망명할 때 신채호가 충청도 사람이라 배에서 뱃멀미를 심하게 해서 도중에 내린 장면은 어떨까? 이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대부분 사실에 근거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만큼 신채호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을 그대로 영상으로 재현하면 감동적이고 역동적인 영화 한 편이 완성될 것이다.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있을 때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안중근을 구출하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저자의 바람을 담은 ‘허구’이다. 지은이의 말 “조선 말기 이래 ‘일제강점기→해방 공간→남북 분단 시기→이승만 독재 시대→군사 독재 시대→사이비 문민 집권기’의 이른바 주류 지식인(언론인 포함)들의 행태를 보면서, 이들의 삶과 단재 선생의 올곧은 삶이 더욱 대비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이와 같은 ‘곧은 선비상像’이 지식인 사회의 주류가 되기를 바란다.” “단재 선생의 결기는 이렇듯 추상같았다. 조선 말기에 단재 같은 지식인이 10명만 있었어도 나라가 망하는 꼴은 면했을지 모른다. 「조선혁명선언」을 쓴 단재는 1927년에 무정부주의자동방연맹에 가입하여 일제와 싸우다가 1928년에 대만에서 일경에 검거되어 뤼순에서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 재판을 받으면서도 단재는 부끄러움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당당했다.” “이런 의미에서 신채호 선생은 지식인과 언론인의 전범이고, 학자의 전형이고, 선비의 모델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사실(팩트)을 축으로 하고 여기에 약간의 허구(픽션)를 버무려서 ‘실록 소설 신채호’로 들려준다. ‘실록 소설’이 마치 ‘뜨거운 얼음’처럼 형용모순일지 모르지만. 저 하늘나라에 계시는 단재 선생이 반기실까 꾸중하실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