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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여는 글 - 바울과 예수운동 역사의 예수와 예수 전승 바울의 구약성서 인용과 해석 1부 - 바울은 예수운동에서 무엇을 배웠나 바울 이전 전승 예수 호칭 믿음 고백문 세례 전승 빵 나눔 전승 2부 - 바울의 새로운 사상 인간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 구원 윤리 교회 종말 맺는 글 - 바울 편지 연구와 최근 연구 동향 머리글 바울 편지 연구 바울 연구의 새 흐름 인용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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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역사의 예수를 만난 적 없었다. 바울은 역사의 예수를 알았기 때문에 부활한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 부활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역사의 예수를 돌아보게 되었다. 역사의 예수에게 감동하여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아니고, 부활한 예수를 만난 사건으로 인해 예수를 받아들였다. 바울과 예수운동 공동체는 역사의 예수와 부활한 예수를 같은 분으로 고백하였다(고린토전서 12,3; 필립비 2,11; 로마 10,9). 역사의 예수를 단순히 역사의 예수로 본 것이 아니라 부활하고 드높여진 예수로 본 것이다. 마가복음은 공통년 70년경 쓰였다. 바울과 바울이 세운 공동체는 아직 복음서를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 바울은 역사의 예수에 대한 전승을 여기저기서 들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최후 만찬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남겼다는 말씀이다.
--- 「여는 글, 역사의 예수와 예수 전승」 중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로마 5,8; 14,15; 데살로니카전서 5,10) 헌신 문장은 믿는 사람을 위한 그리스도 죽음 의미를 말하고 있다. 헌신 문장은 전치사 위하여 ?π?ρ와 연결되어 표현되었다. 단어 ?π?ρ는 위하여, 유리하게, 대신에 등 여러 뜻이 있다. 그 문장 뒤에 대속 뜻이 있는지, 그 문장이 그리스 사상에서 왔는지 유다교 사상에서 왔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함께 고백되기도 했다.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데살로니카전서 4,14a; 로마 14,9). 부활 문장과 죽음 문장은 바울 전에 이미 합쳐졌다. --- 「1부, 바울 이전 전승」 중에서 메시아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통치는 평화와 정의가 넘치는 나라로 노래 불리었다(이사야 9,1-6; 예레미야 23,5; 미가 5,1-5). 평화는 폭력과 전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과 정의가 실천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메시아는 다윗 가문에서 나오고(이사야 11,1; 예레미야 23,5; 미가 5,1), 다윗 왕좌에 앉을 것이다(이사야 9,6; 에제키엘 34,23; 사무엘하 7,11-16). 다윗 가문 출신이 메시아를 나타내는 중요한 표지 중 하나가 되었다(로마 1,3; 마가 10,47; 12,35-37). 신약성서 시대에 유다교에 메시아 희망이 하나로 통일되지는 않았고, 솔로몬 시편과 꿈란 공동체 문헌에서처럼 여러 가지로 존재했다. 예언자, 왕, 사제 세 직분이 그리스도의 세 직분으로서 16세기 개신교 신학에 받아들여졌다. --- 「1부, 예수 호칭」 중에서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 인간은 이미 죄의 힘에 억눌려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로마 3,23). 죄를 바라보는 바울 심정이다. 공기처럼 햇빛처럼 인간은 죄에 싸여 있다. 그렇다고 바울이 죄에 대한 인간 개인의 책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저항하기 어려울 만큼 죄가 커다란 권세를 부리고 있다는 현실을 바울은 주목하였다. --- 「2부, 인간론」 중에서 바울에게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 부활시키신 분이었다(데살로니카전서 1,10; 고린토후서 4,14; 로마 8,11). 바울에게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지만,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신 분이다. 세상 끝 날이 아니라 바울 생전에 하나님이 사람을 부활시키셨다는 사실에 유다인 바울은 놀랐다. 유다교는 세상 끝 날에 부활을 믿었지만, 세상 역사 중에 부활은 말한 적이 없었다.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신 예수는 대체 어떤 인물일지 바울은 주목했다. 그래서 바울에게 예수는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까지 예수나 다름없었다. 예수의 나머지 역사는 바울에게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 「2부, 예수 그리스도」 중에서 최근 바울 연구에서 다섯 가지 주요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다섯 가지 흐름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 바울을 유다교와 가까이 놓고 새롭게 보려는 흐름도 있다. 루터에 의해 행업 유다교처럼 왜곡된 유다교 모습을 올바로 고치려는 바울 새 관점 학파가 대표적이다. 샌더스는 바울이 자기 시대의 행업 유다교와 싸웠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애썼다. 행업 유다교는 존재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인간의 허약함에서 논의를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해답에서 시작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행업이 아니라 하나님 자비의 행위 덕분이라는 가르침에 유다교가 반대하겠는가. 바울 생각에 유다교의 잘못을 요약하자면, 유다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 「맺는 글, 바울 연구의 새 흐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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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상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이 책은 2년 전 저자의 전작인 『바울 전기』의 질문, “예수의 죽음이 왜 무의미하지 않은지, 예수 운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지, 바울 사상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연장선이자 그 논제를 마무리하는 책이다. 『바울 전기』가 바울의 일곱 편지를 각각 다루었다면, 『스핑크스 파울, 피라미드 예수』는 바울 사상의 논점들을 서로 연결하고 비교한다. 이 책은 바울 사상이 인간을 피조물로 인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예수운동의 핵심 단어를 믿음으로 내세운다. 하나님이 인류 역사의 주인이시오.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믿음에서 시작해서 예수가 누구인지, 바울 사상이 최근에 어떻게 변화해서 우리 믿음을 채워줄지 때로는 이해하기 쉬운 간결한 문장으로, 때로는 불트만, 케제만, 슈바이처 등의 관점으로 확장하여 설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