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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석기... 있는 그대로의 자연
2. 신석기... 추상적 법칙의 발견 3. 이집트... 거대 농경문명과 영원한 예술 4. 그리스... 고전주의 예술의 완성, 예술가의 고향 5. 헬레니즘... 분열된 세계, 이질적인 것들의 혼합 6. 로마... 활짝 열린 실용주의 7. 비잔틴... 소박한 신앙의 화려한 표출 8. 로마네스트... 성과 속의 완전한 통합 위에 선 예술 9. 고딕... 어지러운 세상, 쇠퇴하는 믿음, 무한히 덧붙이기 10. 르네상스... 고전주의 짧게 끝나버린 이상주의와 천재의 시대 11. 매너리즘... 근대의 혼란, 예술가의 고뇌와 절망 12. 바로크... 부르주아 계급의 환호성 13. 로코코... 몰락하는 귀족들의 마지막 치장 14.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혁명의 열정, 그러나 사라진 희망 15. 인상주의... 순간의 감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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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이여, 컨텍스트 속으로 …
고대 이집트인의 예술 작품 속에는 ‘정면성의 원리’라는 것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을 표현할 때 얼굴은 언제나 측면만이 보이고, 정면에서 본 한 쪽만 보이도록 했다. 어깨와 몸은 반드시 정면을 향하고 여성의 몸은 한쪽 가슴만 측면으로 보이도록 구성하였다. 팔다리는 늘어진 자세로 측면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정면성의 원리’는 표현 형식의 미발달에 의한 것은 분명 아니다(물론 그렇게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대상의 특징이나 성격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방식 대신, 자신들이 알고 있는 대로 그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정면성의 원리’는 회화의 표현양식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정면성의 원리’를 통해 이집트인의 신념체계, 대상에 대한 개념적 파악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주목한다. ‘정면성의 원리’는 현실의 사회질서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신분이 높은 인물을 표현할 때에는 정면성의 원리를 적용했지만, 미천한 신분의 인물은 그 적용에서 제외되었고 동식물의 경우에는 자연주의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권위에 대한 복종과 존중을 유도했고, 후대의 예술에서도 같은 목적을 위해 은밀히 사용되었다. 이 책에는 이처럼 ‘예술 작품’에 사용된 원리가 단순히 작품의 구성원리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반영이기도 한 사례를 계속 해서 발견해 내려한다. 저자들은 ‘예술 작품’을 보면서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컨텍스트에 좀 더 깊숙이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고대 이집트의 ‘정면성의 원리’를 보면서 당시의 시대를 벼려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령 구석기 시대의 ‘작품’(동굴벽화 등)들을 둘러 볼 때는 주객미분(主客未分)의 상태 즉, 물리적?현실적 공간과 논리적?주관적 영역의 구별이 없었던 그들의 의식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야 하고, 바로크 시대의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잡기 위해서 운동하는 나’ 즉 데카르트적 자아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또 로마네스크에 대응하는 사상으로 교부철학을 탐구하기도 하며, 고딕시대에 상응하는 사상으로 스콜라 철학을 엿보기도 한다. 물론 이 둘 사이의 단절과 예술 작품의 변화도 이들의 탐구 대상이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의 작품을 보면서는 ‘각각의 사물들이 존재의 의의를 가지게 되었을 때, 세상은 이렇게 보인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증명해낸 시대였음을 보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예술 작품을 성립시키는가? 이런 저자들의 분석은 저자들에게서는 낯설지 않은 작업이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강유원은 얼마전 출간된 『책과 세계』(살림, 2004)를 통해 ‘책’ 자체가 아닌 세계, 즉 책이 놓인 공간 속에서 책의 의미를 살펴보는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텍스트가 아니라 컨텍스트에 주목해 ‘책’에 대해 다시 난도질을 한 것이다. 『책과 세계』의 서문에서 강유원은 “책, 넓게 말해서 텍스트는 본래 세계라는 맥락에서 생겨났다”고 파악한다. 그런데 어느덧 텍스트는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거짓을 앞세워 자신에 앞서 있던 세계를 희롱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텍스트는 그것 자체로 일정한 힘까지 가지게 되었다고 밀고나간다. 저자의 다른 저작인 『서양문명의 기반』에서 역시 서양문명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양의 역사를 ‘기반’에서부터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앞선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저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예술 작품’을 성립시키는가를, 그러니깐 도대체 무엇이 ‘예술 작품’의 ‘기반’인가를 묻고 있다. 이 책 속에서 저자들은 작품 스스로는 불가능한 ‘무엇’을 짚어내고 있다. 객관적인 감각 데이터가 스스로 보편타당한 진리임을 입증할 수 없고, 결국 주관에 의해 구성되어야만 하듯이 예술 작품이 예술작품임을 입증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에 의해 ‘구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무엇’인가를 보면서 항상 컨텍스트로 돌아왔다. 삶이 늘 우리를 배반하는 현실에서 예술 즐기기 책의 저술에 참여한 이들은 책을 쓰기 위해 먼저 공부를 해야 했던 사람들이다. 모두 다섯 명으로 구성됐던 ‘모임’에 참여했던 이들은 당시 모두 직장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술 전문가가 아니었다. 현실에서 ‘밥벌이’를 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이 책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예술에 관한한) 이들은 스스로 아마추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삶과 현실과 시대에게 늘 배반당하면서도 그걸 어쩌지 못하고 예술가처럼 밀쳐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때때로 예술 작품을 보면서 작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예술 작품을 들여다보는 순간만큼은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여실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