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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1).
#Chapter 2 (2). #Chapter 3 (1). #Chapter 3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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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안은 이제 슬금슬금 시엔을 피하는 상황에까지 다다른 자신에게 자조했다. 그 콩알만 한 고용인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온 성을 휩쓸고 다니며 어느 순간 고갤 돌리면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재능을 겸비했기에 별 소용없는 일이었던데다가, 오찬 시간이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찾아내어 강제로 끌고 들어가 식탁에 앉히는 우악스러움까지 보이고 있었다.
추워진 날씨에 두꺼운 코트를 여미며 정원가위를 들고 방을 나선 데이안은 평소보다 적막한 성을 느꼈다. 그러다 퍽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보다 적막하다니. 이 적막은 자신이 수십 년, 수백 년을 함께한 유일한 벗이다. ‘짜증나.’ 문 앞을 지나던 데이안은, 자신의 옆방인 반쯤 열린 시엔의 방 안을 힐긋 들여다보았다. 사람 그림자는 없었고 그저 깨끗하게 정돈된 방 안의 풍경만이 그 푸른 눈에 비쳤다. 시엔의 부재를 깨달은 데이안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오전 시간이니 주방에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을 떠올렸다. 뭐, 그가 무엇을 하건 간에 시엔이 자신을 따라오기 전에 황급히 자릴 피하고 싶었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숨이 나온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이 딱이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피하던 것은 시엔이었음에 지금은 자신이 그를 피하고 있다. 빌어먹을, 평화롭던 일상을 파괴하는 달갑지 않은 현상이었다. 데이안은 조심히 사위를 살피며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인기척은 어디에도 없다. 거의 보름에 가까운 시간을 들러붙어 조잘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이상하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데이안은 모처럼의 평온을 느꼈다. 성이 워낙에 넓으니 어디에 처박혀 청소하고 있거나 주방에서 또 그 해괴한 음식들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음식을 생각하니 속이 갑자기 메슥거린다. 인간에게 자양분이 되어주는 유기물과 무기물, 자신은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제로 그것을 먹길 권한다. 자신이 인간이길 바라기라도 하는 것일까 하고 짐작해본다. 인간처럼 섭식을 한다면 적어도 인간처럼 보이기는 할 테니까. “음…….” 성 밖으로 나선 그가 살짝 몸을 떨었다. 날이 확실히 추워졌다. 나뭇잎들은 작은 바람에도 흐드러져 날릴 만큼 바짝 말라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차라리 낫다. 가을보다는 겨울이. 데이안은 가시나무 앞에 서서 정원가위를 들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나뒹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흠칫하며 시엔이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고갤 돌려보지만 그 귀찮은 놈은 웬일인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식사하세요!” 하고 그를 곤혹스럽게 하는 정오가 지난 시각이 되어서도 시엔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성안에 처박혀 있었던 거라면 이토록 인기척이 없을 리가 없는데 마치 성은 비어버린 사성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들이 바르르 몸을 떠는 소릴 배경 삼아 가위질을 하던 데이안은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언젠가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등 뒤를 쫓아다니는 고용인은 없었고, 강제로 무언가를 먹으라며 강요하는 것에 곤혹스러울 필요도 없었다. 홀로 지낼 적,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은 마음 놓고 정원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서늘한 생각을 떠올렸다. ‘도망갔나.’ 하루 정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저 그럴 수도 있겠거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데이안에게는 달랐다. 하루 종일 아무런 인기척도 없는 성. 데이안은 의미 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 성에서 자신의 정체를 깨닫고 괴물이라 부르며 도망친 이아너그의 고용인들이 한둘인가. 그들 중 일부는 아마 숲을 헤매다 죽었거나, 미쳐버렸거나, 불쌍하게도 체리아나의 손에 죽었다. 그 잔망스러운 고용인은 아무리 같다 여기려 할지언정 자신과는 다른 ‘진짜 인간’이고, 그런 그를 생각해보면 그렇게나 쉽게 자신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동안 그의 기행이 워낙 그를 혼란케 했기에 여태까지 생각하지 못한 현실이었다. 데이안은 다시 한 번 성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역시나 귀청을 찢어낼 듯한 적막만이 가득할 뿐이다. ‘차라리 잘된 거겠지.’ 고요마저 죽어버린 사성의 풍경. 데이안은 무심코 정원가위를 떨어뜨린 후 홀로 기울어진 낡은 자신의 성을 올려다보았다. 만일 그 녀석이 도망갔다면 기뻐해야 할 일인데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마음에 심장이 울렁거렸다. 데이안은 망부석처럼 멈춰 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는 오후의 시간들을 바람처럼 흘려보내고 이윽고 연못 저편, 숲을 가로질러 저물기 시작하는 노을을 응시했다. 언제나와 똑같은 그리운 평온의 하루였으나 그 이상의 불쾌감이 그의 전신을 휩쓸었다. 앞에선 그토록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던 그 조막만 한 머리의 고용인을 향한 약간의 언짢음이 밀려왔다. 또다시 혼자. 그것은 슬퍼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자신은 어디에도 섞일 수 없는 존재였으니 차라리 이편이 나았다. 만일 도망갔다면 이 숲을 헤매다 굶어 죽거나, 자신에 관한 소문이 퍼질 것을 우려하는 이들의 손에 행복하지 않은 끝을 맞을 녀석이니 도리어 동정해야 했지만. 해가 저편으로 넘어감에 발간 노을빛이 성 언저리를 어루만지고, 점차 그 빛이 사그라진다. 늘 보아왔던 광경이었으나, 오늘따라 그것이 눈을 시리게 만들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뒹구는 소리에 데이안은 돌연 자신이 꽤나 오랜 시간 넋을 놓고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한겨울이라도 된 마냥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추위가 엄습했다. 언제나처럼 무감각한 표정으로 걸음을 떼며 데이안은 비웃었다. ‘이아너그, 결국 이번에도 넌 실패했군.’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는 고용인을 데리고 와 끝끝내 그의 속을 헤집어놓았으나 결국 수십 년간 그랬던 것처럼, 다를 것 없는 결과로 귀결된다. 기억 속의 그녀와 비슷한 체모와 눈동자를 가졌기에 더욱 그를 곤혹스럽게 했던 고용인은 이아너그의 생각처럼 끈질기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데이안은 실망 대신 다시 한 번 인간의 껍데기가 얼마나 알맹이와 달랐던가 하는 것을 상기했다. 웃으며 자신을 배반하던 사람들, 자신을 사랑한다 속삭이며 그 등 뒤에서 자신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던 이들처럼. 인간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저벅저벅. 한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구두 소리가 오늘따라 고독하게 울리고 있었다. 데이안은 애써 발소릴 죽여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이제 누구의 신경도 쓸 필요가 없었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헥, 헥.” 막 성문 근처에 다다라 문을 열려던 데이안은 돌연 느껴지는 인기척과 거친 숨소리에 멈칫했다. 데이안은 문을 마주 본 채로 가만히 문고릴 잡고 섰다. “주인님!” 등 뒤로부터 지긋지긋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전신을 꿰뚫는 기괴한 감각. 파괴된 적막. 데이안은 느리게 고갤 돌렸다. 그리고 멀찍이 찌그러진 성의 철문을 지나쳐 성안으로 돌아오는 흙투성이의 고용인을 발견했다. 데이안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그 엉망이 된 꼴의 고용인을 고요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흙바닥을 굴러 다녀도 저렇게 될까 싶을 만큼 지저분한 몰골이었지만 시엔은 스스로의 꼴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바구니를 높이 들어 보였다. “잠시, 와보세요!” 또다시 자신의 수백 년의 벗인 적막이 산산조각 나며 비명을 질렀다. 데이안은 망치로 뒤통수라도 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그의 부름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그에게 다가간 데이안은 바구니에 담긴 무언가를 발견하고 물끄러미 시선을 고정시켰다. 시엔은 데이안에게 손짓하더니 그가 무자비하게 찍어 베어버린 가시나무 밑동이 있는 뜰로 향했다. “이리로.” 도망가버린 것이 아니었던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나. 데이안은 혼란함을 느끼며 멈춰 서서 시엔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시엔은 꾀죄죄한 얼굴로 그의 속을 긁어낼 때처럼 웃으며 나무 밑동 아래에 쪼그리고 앉았다. “다년생 꽃들을 찾느라. 대체 이 숲은 가시나무들이 죄다 차지해버려서 그런지 꽃 한 송이 찾기가 힘드네요.” 시엔과 열 걸음 남짓의 거리에 멈춰 선 데이안은 그가 맨손으로 땅을 파헤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 놓인 커다란 바구니 가득한 흙과 그 위에 풀이 죽은 식물들을 내려다보았다. 겨울이 찾아왔기에 말라 죽어가는 모습의 기이한 죽은 식물들. 개중엔 아직까지 색을 잃지 않은 꽃잎이 가까스로 매달린 것도 있었다. 시엔이 피로함 역력한 얼굴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죽으면 안 되는데.” “뭘…… 하려고?” 시엔은 데이안의 잠긴 음성을 들으며 쾌활하게 답했다. “이거 심으려구요. 오늘 식사 준비 못해드려서 죄송해요. 저도 굶었으니까 퉁치는 걸로 해요. 우리.” 퉁친다는 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저 고용인이 하루 종일 숲을 헤매고 다녔다는 것이다. 도망치려다가 다시 돌아온 것일까? 그런 의심을 끝끝내 지우지 못하고 멈춰 있는 데이안을 향해 히죽거리던 시엔이 파헤쳐진 땅의 깊이를 가늠하듯 손으로 이리저리 더듬거렸다. 이윽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시엔은 바구니에 담겨 있던 식물의 뿌리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다시 흙으로 덮기 시작했다. “주인님에겐 일찍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고, 또 살아나는 꽃이 더 정붙이기 좋을 것 같아서.” 저 녀석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놈이다. 데이안은 다시 한 번 확신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밀려드는 괴감각에 그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제멋대로의 고용인은 반쯤 말라붙은 식물의 뿌리 위를 덮은 차가운 흙을 마지막으로 꾹꾹 누르더니 데이안을 향해 고갤 돌려 웃었다. “이제 나뭇가지는 그만 꺾으시고, 꽃 한번 키워보시죠, 주인님. 진짜 정원 예술을 보여드릴게요.” 이상한 놈. 차라리 도망을 갔더라면 이토록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언어를 잊은 사람처럼 머릿속이 공허해지며 혀가 굳었다. 데이안의 귓가에 건방진 고용인이 건네는 말이 다시 한 번 고여들었다. ‘도망치려던 것이 아니었나? 도망치지 않나?’ “매일매일이 다를 게 없어서 나무들을 그렇게 괴롭히시는 거라면 이제부터 매일같이 피고 지는 이 꽃들을 보세요. 다년생들로 가져왔으니까. 매년, 매년, 당신이 돌봐준다면 하루하루 다른 예쁜 꽃을 피울 거예요. 지금은 겨울이라 아쉽지만,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싹을 틔울 테니까. 우리 같이 돌봐요. 이건 가위로 잘라내거나 하시면 안 돼요.” 헛소리. 헛소릴 늘어놓는 녀석이다. 데이안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고, 그것들은 마치 멀리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처럼 웅얼웅얼하는 듯 귓가를 맴돌다 흩어져 사라졌다. 시엔이 그런 데이안을 무시한 채 널브러진 마른 나뭇가지를 하나 쥐고 땅을 파내기 시작하더니, 두 번째 풀꽃을 심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꽃들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해주잖아요. 스스로가 괴물이라고 생각된다면 우리 생각을 조금만 바꿔봐요. 당신도 이 꽃과 다를 게 없다고.” 물론 성격은 지랄맞지만. 물론 주인님은 좀 이상한 사람인 것도 맞지만. 시엔이 장난스레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건방진 발언은 이미 들리지 않았다. 데이안이 주먹을 꾹 쥐었다. 전에 느낀 적 없던 격렬한 무언가가 두꺼운 코트를 꿰뚫고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에 숨을 멈출 뿐. 흙 묻은 갈색 머리칼, 겨울의 한복판을 찾은 봄을 삼킨 초록빛 눈동자, 그는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표정으로 시엔을 응시하다가 느리게, 느리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부서진 적막, 멍해진 머릿속. 자신의 구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얼굴 근육이 아릿하다. 데이안은 스스로도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기에 고개를 숙였다. 데이안은 의미 없이 중얼거렸다. 아마 고용인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 나간 놈.”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