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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1. 죽지 못한 남자
#INTRO 2. 살아남은 여자 #Chapter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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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에겐 말 그대로 아닌 밤중의 홍두깨,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엄마야. 자꾸만 이미 세상에 안 계시는 어머니를 부르게 된다. 이게 무슨 지랄맞은 일인가. 잠시 선잠에 들었다 눈을 떴을 땐, 웬 짧은 단도를 쥐고 있는 그가 보였다.
설마 그걸로 찌를 셈인가! 하고 살짝 긴장했는데 그는 웬걸 제 손목을 그어버렸다. 몸 안에 갇혀 있던 피가 튀어 오르고 흩뿌려지는 그 광경에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그가 그걸로도 부족한 사람처럼 다시 한 번 손목을 그으려 했을 때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아 막았다. 벌렁벌렁. 심장이 요동쳤다. 시엔은 급하게 기절한 그의 손목을 꿰매고 전전긍긍하며 그의 방 안을 산만하게 돌아다녔다. 세르티아를 찾아 이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그는 늘 있던 2층 거실엔 없었고, 그만큼 피를 쏟고 기절하긴 했으나 혹시라도 이 사람이 눈을 떠서 무슨 짓을 할까 하는 우려에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흰 새벽, 이제 막 해가 떠오르려는 시간 몰려드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시엔은 잠들지 못했다. 환장하겠다. 미치겠다. 그리파란 여공과 자이세파의 귀족이 누차 강조했던 ‘중한’ 분이라고 했다.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 또한 모가지다. 모가지가 뭐냐 진짜 말 그대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위험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의 목숨이 위험하다. 업무 자체엔 위험한 일이 없을 거라며 호언장담했던 고용주들이다. 그들의 말대로 업무 자체는 권태롭고 딱히 할 만한 것이라고는 청소 정도뿐이었다. 자신의 안위는 정말 위험하지 않은데 저 미친놈의 안위가 위험하다. 환자라고 하더니 이제 보니 정신병자였다. 정신이 아프다고 해봐야 시온처럼 그저 맥없이 아픈 사람인가 싶었는데 그 수준을 넘어섰다. 사기 당했다. 그제야 세르티아가 했던 의미 모를 말이 떠올랐다. 「그저 멀쩡히 살아 돌아다니게 하면 됩니다.」 그런 의미였나! 생각해보니 지난 오후 연못에 빠진 것 또한 이상하다. 사내라 주장하기엔 작은 자신의 키로도 발꿈치를 들면 숨 쉬기는 충분했다. 그런데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클 이 사람이 꼼짝 없이 물에 빠져 익사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으으…… 읏…….” 감은 눈, 다시 치솟는 열. 피는 멎었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 가슴이 벌렁거렸다. 죽지 않고 깨어난다면 다행이지만 그다음엔 어쩌지? 만약 자해가 목적이 아니라 ‘자살’이 목적이었다면 자신은 영락없이 그 옆에서 한시도 떨어져선 안 될 것이다. 자해니 자살이니 하나도 와 닿지 않는다. 자신은 살기 위해서 그토록 애를 썼는데, 나라의 높은 분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이 성에서 홀로 살면서…… ‘홀로’. 문득 그 단어가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떠올랐다. 홀로. 만일 자신이 시온조차 없이 혼자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자신에겐 유달리 상냥한 믹과 가일단의 형제들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의 가족들은 다 어디 있어? 여태까진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진지한 의문이 되어 돌아왔다. 귀한 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귀한 분이 왜 혼자 살아? 이 성의 주인이라면 돈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거느리지 않고 살아? 이 사람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도 있을 것이고, 귀족들은 어린 나이부터 정략혼을 하는 것이 관례이니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 어디 있어? 시엔이 말을 멈추고, 핏기 없는 창백한 사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 여명에 방 안이 밝아졌다. 잡생각을 잠시 멈추고 벽난로에 장작을 더 뗀 후 열로 헐떡이는 그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식어버린 접시를 들고 숟가락으로 한 숟갈, 한 숟갈. 그것을 떠먹여 넘겼다.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떠돌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단 이 사람이 기운을 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세르티아에게 말해서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조만간 사달이 나도 제대로 날 것이다. 시엔은 입가로 흐르는 식은 수프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그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수프를 흘려 넣었다. 하루 사이에 물에 빠져 죽을 뻔하고, 또 제 스스로 손목을 그은 사내는 해가 떠오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참을 방 안을 서성이던 시엔이 결국 밖으로 나왔다. “세르티아 씨. 세르티아 씨.” 아이가 엄마를 찾듯이, 간절하게 그 이름을 되뇌었다. 하지만 성 곳곳을 뒤져도 세르티아는 없었다. 일단 데이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그를 찾아 이 상황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늘 늘어져서 책을 읽던 그는 머리털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한참을 성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다니던 시엔은 막막한 현실에 2층 거실로 돌아왔다. 역시나 없었다. 다만 그가 늘 읽고 있던 책무더기들이 눈에 띄었다. ‘서재.’ 서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엔이 넋을 놓고 그 책들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재를 찾아야 했다. 그곳에 그가 있을지도 모른다. ◇ ◆ ◇ 해가 떠오르고, 시엔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데이안이 눈을 떴다. 온몸이 무겁고 지난 기억에 삼켜졌던 절망으로 전신이 고통스러웠다. 그는 꿰매진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상처는 꽤나 아물어 있다. 보통 인간이라면 불가능할 속도였다. 누구의 짓인지는 짐작할 만했다. 지난밤, 세헤웬을 보았다. 아니, 그 ‘고용인’을 볼 때면 떠오른다. 세헤웬. 세헤웬. 문득 고갤 돌려 방 안을 훑다가 그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방 안의 풍경이 평소와는 달랐다. 발에 채이던 종이다발이 깨끗이 치워져 있고, 날카롭게 반짝이던 방 안의 화병 조각이며, 유리 조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잘 정돈된 탁자며 의자며. 문득 그는 입 안에서 평소와는 다른 쌉싸름한 맛이 나는 것을 느끼고 멈칫했다. 구역질날 듯한 쓴맛이었다. 독? 독인가? 고갤 돌려 탁자 위에 놓인 빈 접시를 발견한 데이안이 으르렁거렸다. 뭔가를 먹인 것이다. 이상한 썩은 음식을 자신에게 먹인 것이 분명했다. 다 필요 없다. 그 자식을 내 성에서 쫓아내야 했다. 세르티아 파사스 이아너그가 바란 것이 이토록 감정에 휘둘리는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더 이상은 좌시할 수 없었다. 그 알짱거리는 놈을 눈앞에서 당장 치워버리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같은 공간에,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증오로 가득 찼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