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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4
조선왕조 왕권의 역사와 영의정직의 변화(효종~숙종) 16 효종 시대 2 92. 김육金堉 - 동맹휴학으로 10년간 과거응시를 정지당하다 성균관 학생회장으로 동맹휴학을 주동하다 33 대동법 시행을 끝까지 밀어부친 소신파 38 서원을 세운 뜻과 향교 경시 풍조에 대해 논하다 50 십전통보 화폐의 제조와 금속활자 주조 전승 57 구루정기 58 김육의 대동법에 대한 유언 상소와 졸기 61 93년 후 영조가 남긴 헌시英祖御製贊 64 승진과정 65 93. 정태화鄭太和 - 17여 년간 6차례의 영의정을 지내다 정승 집안에 정승이 나다 68 바닷물이 언 변괴에 대해 논하다 76 출가한 왕자녀에게 꿩고기 지급을 제한하다 78 정태화의 졸기 79 덕고개 당숲 81 회협 가훈서會峽家訓序 82 승진과정 83 94. 이시백李時白 - 호란의 수습과 국방을 강화한 무관 출신 인조반정 2등공신으로 청렴 강직한 무관 86 이시백과 정묘호란 90 강화유수가 되다 91 이시백과 병자호란 93 인조가 효종에게 이시백을 중용하라 전하다 100 이시백의 졸기 104 장기에 숨겨진 지혜 109 승진과정 110 95. 심지원沈之源 - 인조반정 1등공신으로 효종과 사돈지간 효종과 사돈을 맺은 후 특급승진을 거듭하다 113 병자호란 1년전 외침 대비 상소문을 올리다 121 심지원의 졸기 133 청송 심씨와 파평 윤씨간 392년간 이어온 산소 다툼 135 승진과정 138 현종 시대 96 홍명하洪命夏 - 청렴결백하고 직언을 잘하여 총애를 받은 인물 청렴함과 공정한 법집행으로 직언을 마다 않았던 정승 143 어린아이를 군역에 부과시키는 대책을 논의하다 155 처가살이한 홍명하와 이를 구박한 처남의 말로 156 홍명하의 졸기 157 승진과정 160 97. 허적許積 - 남인의 영수. 서자로 인하여 멸문을 당하다 남인의 영수로 서인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다 163 붕당을 가장 잘 활용하고도 붕당을 염려한 숙종 167 기생을 불러 합격 잔치를 벌인 민종도를 파직시키다 170 서자 아들 허견의 방종함으로 탄핵을 받다 171 경신대출척, 남인이 무너지다 176 허적이굴과 허견, 그리고 허목 이야기 189 승진과정 193 98. 김수흥金壽興 -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기틀을 잡다 197 갑인예송, 2차예송 201 장희빈의 출산과 원자책봉 그리고 기사환국 204 김수흥의 졸기 208 조선 8대 명당 김번의 묘 209 석실서원 210 승진과정 214 숙종 시대 99. 김수항金壽恒 - 양관 대제학을 지낸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 노론의 영수로 3대 장원급제 출신에 형제 영의정 219 과거시험에 백지 제출자가 많아 재시험을 보게하다 230 승진과정 232 100. 남구만南九萬 -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론의 영수로 강직하고 올곧았던 인물 235 남구만의 졸기 244 조설釣設 246 승진과정 248 101. 여성제呂聖齊 - 8일간의 영의정. 희빈 강씨 집안이라 이혼 소현세자빈 강씨 집안을 처가로 두어 이혼하다 251 여성제의 졸기 256 시집간 딸의 연좌 죄에 관한 논의 257 승진과정 260 102. 권대운權大運 - 송시열을 처결하고, 죄인으로 기록되다 남인의 영수로 송시열을 처형하여 죄인으로 기록이 남다 263 갑술옥사와 권대운의 유배 266 죄인 권대운의 졸기 269 임금과 술잔을 나누며 싯귀 이어 부르기 269 승진과정 272 103. 유상운柳尙運 - 도승지에 6번이나 오른 숙종의 남자 숙종의 총애를 받다 275 송시열을 귀양 보내 죽게 한 두통의 상소문 285 단종의 시호와 능호를 올리다 293 유상운의 졸기 294 승진과정 297 104. 서문중徐文重 - 치밀함과 공정함으로 숙종의 사랑을 받다 굳은 지조와 치밀하고 공정함을 잃지 않다 300 군정을 변통하는 방법을 아뢰다 313 과거시험 부정행위자에 대한 합격방을 취소 시키다. 314 북한산성 축성을 반대하다 315 서문중의 졸기 320 승진과정 321 105. 최석정崔錫鼎 - 예기유편 찬술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다 최명길의 후손,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신임을 받다 324 명재 윤증을 옹호하려다 파직되다 333 장희빈의 주술 저주사건을 보호하다가 유배당하다 337 예기유편 소동 343 최석정의 졸기 348 승진과정 351 106. 신완申琓 - 북한산성 축조를 건의한 재상 영의정 신경진의 증손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다 354 만언소를 올리다 358 북한산성 쌓기를 건의하다 362 신완의 졸기 369 승진과정 371 107. 이여李?- 스승을 끝까지 대변했던 송시열의 제자 짓밟는 자리에 가지말라는 아버지의 처세 유훈 374 스승과 제자인 송시열과 윤증의 관계를 상소하다 390 이여의 졸기 393 승진과정 395 108. 서종태徐宗泰 - 당파를 초월하려 했던 대제학 출신 심지가 굳고 청렴 단아했던 인물로 서문중의 조카 398 시정폐단 상소문 402 대제학의 선발과 이순신의 조카 이완의 정려문 설립 406 서종태의 졸기 408 승진과정 410 109. 이유李濡 - 광평대군의 후손. 북한산성을 수축하다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의 후손 413 북한산성 수축과정과 탄핵 416 이유의 졸기 418 노원구 녹천마을 420 승진과정 421 110. 김창집金昌集 -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 영조추대 1등공신 청음 김상헌의 후손, 영조 추대 일등공신 424 높은 관직과 요직을 멀리하라는 유훈 429 연잉군의 왕세제 책정을 두고 찬반으로 나늰 노론과 소론 433 노론의 왕세제 대리청정 소청과 소론의 반대 440 임인옥사(신임사화) 456 승진과정 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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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 인조 2년 1월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 이괄이 반정에서 중요한 공로를 세웠지만 2등공신에 책봉되고 평안도에 배속된 것에 불만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반기를 들자 임금이 이시백을 기복하여 협수사로 삼았다. 이시백이 이천으로 달려가 향병을 모집하여 요새를 방어하였는데, 적병이 다른 길을 통하여 곧바로 도성으로 들어갔다. 그때 길에 떠도는 이야기가 매우 불길하였으므로 이시백이 눈물을 흘리며 군중에 말하기를,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는 마땅히 적군 속에서 죽도록 싸우겠다. 부모가 있는 사람은 모두 돌아가라.”고 하니, 군사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응답하기를, “같이 죽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효종 시대 이시백」중에서 권대운은 청렴 검약한 생활로 세간의 인정은 받았으나, 시대적으로 서인과 남인의 권력쟁탈 과정에서 남인의 중심인물이었다. 권대운은 숙종의 뜻에 맞춰 장희빈 편을 들어 한 때 입신양명했으나 결국 거물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장희빈이 몰락할 때 운명을 함께 한 것처럼 되고 말았다. 남인의 입장에서는 불우한 정승으로 비추어졌으나, 서인의 입장에서는 시대를 주름잡던 성리학의 거두이자 서인의 영원한 영수인 송시열을 죽인 불천지 원수로 남았다. ---「숙종 시대 권대운」중에서 1694년 숙종 20년 50세에 인현왕후 복위와 갑술환국에 적극 가담하여, 남인 세력을 몰아내고 형조 참판에 발탁 되었다. 중궁복위 교명문을 지은 공으로 제술관에 오르고 다시 대사간이 되었다. 1695년 숙종 21년 51세에 도승지가 되었는데, 벼슬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봉양하기를 원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이때 사관은 이여에 대해 ‘재기와 도량이 단정하고 깨끗하며 문사가 풍부하고 우아하였다. 말이 구차하지 않고 조행이 확고하여 당시의 명망이 김창협 다음 갔는데, 매번 아버지의 유훈 가르침과 어머니의 병환을 이유로 몇 달도 조정에 있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숙종 시대 이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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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시대, 현종 시대, 숙종 시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영의정에 올랐을까?
조선왕조 519년 동안 영의정에 오른 173명 중 제6권에서는 효종 시대 김육, 정태화, 이시백, 심지원, 현종 시대 홍명하, 허적, 김수흥, 숙종 시대 김수항 남구만, 여성제, 권대운, 유상운, 서문중, 최석정, 신완, 이여, 서종태, 이유, 김창집까지 14명의 영의정을 다루고 있다. 173명의 영의정 중 세종 시대 황희 정승처럼 이름을 만세에 남긴 정승도 있지만 세조의 조카로 29세에 영의정에 올랐다가 30대에 죽은 이준, 포악무도했던 예종 시대 홍윤성, 중종 시대 조광조를 모함했다가 흉인이 된 남곤처럼 오명을 남긴 정승도 많다. 오늘날도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이름 석 자를 남기기 위해 억척스럽게 권력을 향해 일로 매진하고 있지만 권력 후의 결과는 칭송받는 자보다는 감옥에 가거나 악명을 남긴 자가 더 많다. 저자의 저술에 따르면 조선왕조와 대한민국 간의 기간은 가깝게는 100년 전의 일이고 길게는 628년 전의 일이다.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은 지난 과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보다 나은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인데, 농경시대였던 500~600년 전의 인재 등용 정책과 2020년대의 인재 등용 정책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고위직 관료들은 어떤 철학을 갖고 관직에 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철학도 없이 권력을 손에 쥐었던 자들의 말로는 대한민국 수립 이후 대통령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조선왕조 519년 동안 최고의 벼슬인 173명의 영의정의 벼슬경력과 업적과 그 졸기 평가를 저술함으로써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권력의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