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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조선왕조 왕권의 역사와 영의정직의 변화(경종~영조) 경종 시대 111 조태구趙泰耉 - 소론의 영수, 경종이 가장 신임한 영의정 소론의 영수, 경종을 지지하여 총애를 받다 청나라 사신의 국정간섭과 노론과 소론의 대처 조태구의 졸기 승진과정 112 최규서崔奎瑞 - 소론의 영수, 20년간 출근하지 않고 영의정에 오르다 소론의 영수로 경종의 신임과 영조의 존중을 받다 대제학 사직 후 20년간 출근하지 않고 승진만 거듭하다 인간적인 접근으로 최규서의 마음을 돌린 영조 최규서의 졸기 어서각 승진과정 영조 시대 113 이광좌李光佐 - 소론의 영수, 이항복의 5대손 소론의 영수로서 영조의 신임을 받다 목호룡 고변 사건에 대한 친국과 처단 탕평책을 무시한 노론 김재로와의 원한관계 1 이광좌의 졸기 정미환국丁未換局 나주괘서사건 승진과정 114 정호鄭澔 - 청렴 강직한 성격으로 탄핵을 많이 받다 일생을 갈등관계로 보내다 60대의 관직 생활 끝없는 유배, 복직, 파직, 유배 편당, 인재등용, 근검절약에 대한 상소문 정호의 졸기 승진과정 115 홍치중洪致中 - 탕평파로서 원만한 인간관계로 영의정까지 오르다 노론 온건파로 탕평파의 핵심인물 일본 통신정사로 다녀와 일본실정을 보고하다 공명첩에 대해 논하다 홍치중의 졸기 승진과정 116 심수현沈壽賢 - 원만한 인간관계를 지킨 청송 심씨 집안 5번째 영의정 원만한 인간관계로 위기 때마다 영조의 은택을 입다 박문수를 전라감사에 추천하다 정치의 요도要道에 대한 상소문 심수현의 졸기 승진과정 117 이의현李宜顯 - 당파를 좇다가 17일 만에 영의정직에서 물러나다 대제학을 지낸 노론의 영수 과거시험 부정사건을 밝힐 것을 논하다 노론 이조판서가 소론 이조참의의 인사에 불만을 품다 붕당의 폐단에 대한 지평 이재후의 상소와 삭탈관직 이의현의 졸기 승진과정 118 김흥경金興慶 - 영조와 사돈관계를 맺은 탕평책 반대론자 노론으로 탕평책을 반대한 영조의 사돈 당파를 일삼다가 파직되다 김흥경의 졸기 적선동 백송과 추사고택의 백송 승진과정 119 김재로金在魯 - 탕평을 외치면서 소론과 등을 돌린 노론의 영수 영조의 총애를 받은 노론의 영수 김재로의 영남인에 대한 평 부친을 논박한 소론 이광좌와의 합석할 수 없었던 원한관계 2 김재로의 졸기 승진과정 120 조현명趙顯命 -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영의정, 풍양 조씨 가문의 기틀을 일으키다 영조와 사돈관계를 맺은 형 조문명의 덕을 입다 임금이 지켜야 할 탕평 만언소 시국과 관련 수차례 상소문을 올리다 3정승의 비리 고발 상소문이 접수되다 조현명의 졸기 영조·정조 시대의 당파 인물 분류 승진과정 121 이종성李宗城 - 이항복의 5세손, 기지와 혜안을 가졌던 명정승 좌의정 이태좌의 아들로 소론의 영수 공주의 제택공사 폐단에 대한 이종성의 상소 양역의 폐해를 상소하다 사도세자의 입장과 시국에 관해 아뢰다 각종 세금과 부역의 현황의 폐단에 대해 상소하다 이종성의 졸기 승진과정 122 이천보李天輔 - 사도세자 평양 나들이 사건을 책임진 의리파 노론으로 탕평책에 앞장서다 영의정 재직 시 남의 아내를 빼앗은 죄로 탄핵받다 이천보의 졸기 사도세자 평양원유사건 승진과정 123 유척기兪拓基 - 금석학 권위자로 소신에 따라 출근을 거부한 노론 노론으로 탕평책을 반대한 고집스러운 소신파 사도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아 궤 안에 가두다 유척기의 졸기 승진과정 124 김상로金尙魯 - 사도세자의 죽음을 외면한 노론 벽파의 지도자 노론 벽파의 지도자 김상로의 죽음 안양 만안교와 과천 찬우물 그리고 김약로의 묘 나경언의 고변사건 1 승진과정 125 홍봉한洪鳳漢 - 사도세자의 장인으로, 살기 위해 사위를 버리다 영조의 사돈, 사도세자의 장인으로 급속 승진하다 나경언의 친국 심문 조서 2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홍봉한의 상소문 홍봉한의 졸기 승진과정 126 신만申晩 - 영조와 사돈지간, 사도세자의 폐서인을 주장하다 노론으로 당파색이 강했던 영조의 사돈 당파싸움으로 전직당하다 신만의 졸기 승진과정 127 윤동도尹東度 - 명재 윤증의 집안 출신으로 소론계 영의정 사도세자의 일탈로 삼정승이 자결하자 정승에 오르다 사도세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윤동도 윤동도의 졸기 논산 돈암서원과 윤증고택에 얽힌 송시열과 윤증의 회니시비 윤동도를 길러낸 종학당宗學堂 승진과정 128 서지수徐志修 - 3대 정승가문, 왕에게 직언을 하다가 수없이 파직당한 영의정 정승집안에 정승이 나오다 서지수의 졸기 승진과정 129 김치인金致仁 - 10번의 영의정, 영조와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재상 우의정 김구의 손자이자 영의정 김재로의 아들 사헌부 지평의 탄핵을 받다 왕이 주선한 김치인의 재혼, 이를 거절한 조선의 여인 임금의 탄신일을 모른 자를 두둔하다가 삭탈관직당하다 청나라 상납품으로 가져간 은을 잃어버려 파직당하다 다시 반포된 탕평책 김치인의 졸기 승진과정 130 김상복金相福 - 김장생의 후손, 사도세자의 죽음을 방관한 죄로 유배 언사로 파직, 삭직, 유배가 끊이질 않았던 김장생의 후손 서명선의 상소와 김상복의 답변 승진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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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를 마치고 돌아와 헌납, 이조정랑, 교리, 부수찬 등 청요직을 두루 지냈고, 1688년 39세 5월에 대사간과 승지를 거친 후 6월에 양주목사로 나갔는데 여환이라는 요승이 스스로를 신선이라 하면서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다니는 일이 발생했다. 여환의 세력은 자못 커서 서울 바깥뿐만 아니라 도성 안에도 소문이 퍼졌고, 이에 미혹되거나 가담하여 일을 꾸민 사람이 11명이 된다고 하였다. 최규서는 양주 목사로 재직하는 중에 여환의 무리에 대한 진상과 실상을 자세히 조사하여 조정에 알렸지만, 조사 과정에서 백성들 사이에 큰 혼란이 생기자 책임을 물어 파직을 당하였다.
--- 「최규서」 중에서 시문과 글씨에 능했던 정호는, 60여 년 뒤에 청백리로 추천될 만큼 늘 가난하고 여생이 초라하였다. 그가 낙향하여 충주에 살고 있던 어느 날 임금의 명을 받은 도승지 이형좌가 그를 찾아왔다. 백발 노구로 밭둑에 배나무를 심고 있던 정호를 보고 도승지가 “어느 세월에 배를 따시려고 수고로운 일을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나 정호는 “허허!” 웃기만 하고 배나무 심기를 마쳤다. 여러 해 뒤, 그때의 도승지가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부임 인사차 정호를 찾았다. 정호는 조촐한 주안상에 배를 몇 조각 깎아 대접하며, “이게 그전에 내가 심었던 배나무에서 딴 것이네!” 하고 말했더니, 관찰사 이형좌는 몹시 부끄러워했다. --- 「정호」 중에서 김재로는 영조 초기에 탕평론을 주장했으나 후기엔 노론의 선봉에서 영수 구실을 하였다. 영의정 재임 기간 중 영춘추관사를 겸해 한천이혁절목 10조와 과거의정절목 8조를 제정하고 왕실의 상복제를 바로잡는 등 치밀한 정사를 폈다. 50여 년을 관직에 있으면서 거의 절반을 의정부 정승으로 지냈다. 결백하고 검소한 성품으로 박식하며 예학에 깊었고, 상하가 신망하는 재상으로서의 풍모를 지녔다. 벼슬을 그만둔 뒤 집에 있으면서도 국사를 잊지 않았다. --- 「김재로」 중에서 60세에 홍국영의 기민한 수습으로 풀려나온 뒤 직무없이 급여를 받는 봉조하로 임명되었다. 64세에 정조가 즉위하니 8월에 성균관 유생들이 역적 홍봉한 등을 죽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세손의 외할아버지로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친정 오빠인 김귀주 세력과 권력 다툼을 하였다. 영조시대 중반 이후 김귀주 중심의 남당에 대립하여 홍봉한은 북당의 중심 인물로 평가되었다. --- 「홍봉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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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치닫는 왕가의 가족사를 지켜본
영의정 20명의 이야기 조선왕조 519년 동안 173명의 영의정이 배출되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은 황희, 정인지, 신숙주, 유성룡, 이원익 등 불과 10명 안팎이다. 세종 시대 황희 정승처럼 이름을 만세에 남긴 정승도 있지만 세조의 조카로 29세에 영의정에 올랐다가 30대에 죽은 이준, 포악무도했던 예종 시대 홍윤성, 중종 시대 조광조를 모함했다가 흉인이 된 남곤처럼 오명을 남긴 정승도 많다. 영의정에 오르지 못하고도 현대인에게 알려진 이순신, 이황, 이이, 신사임당, 정약용, 허준 등의 인물들은 민족과 국가를 위해 크게 이바지했다. 결국,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당대의 직위와 신분이 높아짐으로써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책과 직위에서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느냐가 후세의 평가를 받는 데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고위직 관료들은 어떤 철학을 갖고 관직에 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철학도 없이 권력을 손에 쥐었던 자들의 말로는 대한민국 수립 이후 대통령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영의정의 벼슬경력과 업적과 그 졸기 평가를 저술함으로써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권력의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