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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차례
작가의 말 프롤로그 / 백석이 온다 1. 통영 2. 진주성 3. 사슴 4. 이사벨 5. 모닥불 6. 연이 7. 이상 8. 배신 9. 출가 10. 나타샤 11. 하얀나라 2권 차례 12. 여문인 3인방 13. 함흥 14. 재회 15. 윤동주 16. 백신애 17. 망명 18. 만주비가 19. 결혼 20. 조만식과 김일성 부록 1. ‘백석과 자야의 러브스토리’는 김영한의 소설이었다 부록 2. 〈북방에서〉부터 〈나 취했노라〉까지 백석의 만주 현장을 가다 |
덕산德山 洪讚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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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갑산에도 해가 뜨고 물이 흐르고 새가 노래하고 사람이 살림을 펴더라
해골의 썩은 물도 달콤한 감로수 되듯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에도 민들레 피듯 살림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더라 착한 바람을 품은 천희가 백두산 정기와 압록강 물을 듬뿍 받은 천희가 천사 되어 삼수갑산을 즐거움의 땅으로 만들더라 아픈 사십 년을 거듭남의 바탕으로 바꿔놓더라 - 백석, 〈삼수의 천사〉 전문, 미발표 유고 --- p.20 「1권,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사슴’이라고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그분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 결과다. 그런데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벗의 생각을 들어보고 확정하자는 생각으로,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사슴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네.” “사슴, 사슴이라~, 좋기는 한데 뭔가 약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모든 일에 적극적인 신우가 반사적으로, 좀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 나를 잘 이해해주는 진은, 신우를 말리며 운을 뗐다. “석이가 사슴이라고 생각한 까닭이 있을 테니, 먼저 석의 얘기를 들어보는 게 좋지 않겠나?” “그렇기는 하네. 당사자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니까.” “사슴은 우리 겨레를 잘 나타내는 동물이네. 물론 배달겨레의 상징은 범이지! 하지만, 일제가 범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호랑이란 말을 쓰게 하고 있지 않나? 게다가 범을 모조리 잡아 멸종시켰다는 사실은 자네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네.” --- pp.84-85 「1권, 사슴」 중에서 나는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하지만 이상은 별다른 표정 없이 앉아 있었다. 흔한 인사말조차 하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김기림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 시인, 백 시인 알지? 시집 『사슴』을 출간하고 출판기념회까지 열어 장안의 화제가 됐잖은가?” 정지용도 거들었다. “한국 시단의 위대한 탄생을 알린 백 시인이 『시와소설』에 작품을 내기로 했다네.” 그제야 이상이 고개를 들고 인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건성이었다. 정지용과 김기림, 두 선배의 체면을 봐서 어쩔 수 없이 인사한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선배의 소설 〈12월12일〉과 연작시 〈오감도〉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자기가 쓴 소설과 시가 나오자 이상의 눈빛이 달라졌다. --- p.170 「1권, 7. 이상」 중에서 ‘그럼 그렇지, 이렇게 함박눈이 내리는 데 누가 이 골짜기를 찾는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강하게 흐르는 시를 들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 시에 귀를 기울였다. 번개처럼 스치던 시가 진양조로 천천히 흘렀다. 나는 얼른 허리춤을 여미고 서둘러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 원고지를 끌어당겨 흐르는 시를 받아 적었다. 마치 내가 그 시를 다 받아적을 때까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pp.251-252 「1권, 10. 나타샤」 중에서 1938년 봄이었다. 봄이 늦게 오는 함흥에도 진달래가 만발했을 때니 4월 중하순쯤이었을 것이다. 첫 시집 출판기념회 등으로 바쁘게 지낸 천명이 느닷없이 영생고보로 나를 찾아왔다. 얼굴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띠었다. “천명, 무슨 일이야? 편지나 전보도 없이, 갑자기 함흥에 나타나다니.” “내가 흰돌을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어, 동남풍을 몰고 왔지.” “뭐야? 뜬금없이.” “흰돌의 별명을 사슴에서 당나귀로 바꿔 부르는 것을 상의하려고.” “웬 당나귀?” “시치미를 떼도 소용없어. 내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보고 그렇게 정했으니까.” “아, 그 시?” 나는 1937년 겨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시를 썼다. 연이와 배신우가 도둑결혼한 고통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나는 시 초고를 천명에게 보여줬다. 고통은 나누면 줄어들고 기쁨은 같이 즐기면 불어난다는 말처럼, 배신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 p.15 「2권, 12. 여문인 3인방」 중에서 연이가 ‘나를 보고 싶어한다’는 신우의 말을 듣자, 내 눈앞에는 갑자기 연이의 모습이 펼쳐졌다. 4년 전, 이진의 결혼피로연 때 처음 본 바로 그 얼굴이었다. 두 눈이 왕방울처럼 컸고, 큰 눈 한가운데 동그랗게 뜬 검은 눈동자가 크고 맑았다. 눈동자는 호기심 많은 여학생답게 초롱초롱 빛났다. 머리는 옻칠한 것처럼 까맸고, 검은 머리는 쪽을 지어 단정하게 묶었다. 머리를 반으로 나눈 가르마가 훤한 이마 가운데로 지나 코와 입을 일직선으로 이어졌다. 오뚝 솟은 코와 살며시 다문 입술이 다정다감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었다. 배신우가 연이와 결혼한 뒤에도 1년 넘게 연이 얼굴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그때마다 술을 마셨고, 술로도 달랠 수 없을 때는 시를 썼다. 푸른 바다가의 하이얀 하이얀 길이다 아이들은 늘늘히 청대나무 말을 몰고 대포풍잠한 늙은이 또요 한마리를 드리우고 갔다 --- pp.66-67 「2권, 14. 재회」 중에서 백신애의 노래는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힘든 세상을 어렵게 살아온 체험에다 여성 특유의 애절함이 묻어 나왔다. 경산군 안심면 반야월 과수원에 살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농촌의 가난함이 배었고, 만주와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동포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스며있었다. 〈아서라 세상사〉는 내가 함흥에 있을 때, 연이와 배신우와의 도둑결혼을 안 뒤 가슴 아프게 불렀던 바로 그 노래였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이란 시에서 나는 “〈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고 절규했다. 내가 겪었던 아픔과 백신애가 체험했을 고통이 겹치면서 나는 울컥했다. 그 모습을 백신애에게 들켰다. “아니, 동생. 이 좋은 날에 왜 눈물을 보이고 그러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긴? 눈알이 빨갛고 어깨가 들썩거리는데.” “누님,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 나는 백신애의 품에 안기며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 pp.116-117 「2권, 16. 백신애」 중에서 ‘나라가 힘이 없으면 내 땅에서 다른 나라들이 제멋대로 전쟁을 하고, 내 땅을 제 땅으로 만든다. 우리는 이곳 203고지에서 청의 무력함과 일제의 잔혹함을 배워야 한다. 이곳부터 우리가 가는 곳은 모두 일제가 만주를 지배하는 현장이다. 두 눈과 두 귀를 기울여 역사의 현장을 가슴에 담아라. 힘이 없는 나라와 백성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직시하라.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해 실력을 키워야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 여러분들이 바로 대한의 희망이다!’ “힘과 힘, 야욕과 야욕이 충돌할 때 힘이 없으면 희생양이 되는 건 역사의 철칙(鐵則)이라네!” 나는 3년 전 영생고보 학생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진에게 말했다. “여기에 올라 여순항을 한눈에 바라보니 자네가 왜 203고지에 꼭 가야 한다고 했는지 금세 깨달았네. 좋은 곳을 알려주어서 고마우이!” 나는 이진의 말을 들으며 나지막하게 시 〈203고지에서〉를 읊었다. --- pp.164-165 「2권, 18. 만주비가」 중에서 “조만식 선생님의 비서로 일하는 홍사민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백 시인을 모셔오라고 하셔서.” “고당 선생님께서, 왜 저를?” “자세한 것은 직접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한시가 급하니 반드시 모셔오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래요? 고당 선생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서둘러 가십시다!” 나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길을 재촉했다. “백 시인, 어서 오게!” “선생님, 이렇게 불러 주셔서 영광입니다.” “백 시인, 내 곁에서 나를 좀 도와주게!” “물론입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네!” 나는 조만식 선생이 위원장으로 있는 평남인민정치위원회 외사과 소속으로 통역 업무를 담당했다. 고당 선생은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 사령부 군인들과 자주 만났다. 나는 그때마다 고당 선생을 모시고 통역으로 참석했다. 8월26일, 평양에 들어온 소련군 제25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장군과의 첫 만남은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 p.210 「2권, 20. 조만식과 김일성」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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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표 시와 함께 새로운 백석을 만난다
백석은 이상과 윤동주를 만나 시를 토론했다 『내 사랑 백석』 책은 김영한의 ‘창작소설’이다 『백석의 불시착』에서는 백석 시인이 이상을 만나 시담을 나누고, 윤동주와도 시를 통해 교감한 장면을 그렸다. 노천명 시인의 시 〈사슴〉과 백석의 시집 『사슴』에 얽힌 스토리와 백신애 소설가와의 가슴 아픈 로맨스도 다뤘다. 손기정 마라토너와 깊은 우정을 나눈 뒤 함께 압록강철교를 달려서 건너는 장면도 등장시켰다. 홍찬선 작가는 『백석의 불시착』의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백석의 숨결이 스쳐 간 지역을 직접 답사했다. 백석이 유학했던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대학)과 졸업여행을 다녀온 이즈반도, 백석이 1940년부터 광복될 때까지 살았던 만주의 신경(현 심양) 안동(현 단동)과 함흥고보학생을 인솔하고 수학여행을 갔던 여순의 203고지 등을 다녀왔다. 백석이 조선일보 기자 시절 다녔던 광화문과 소공동,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뚝섬 등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백석의 불시착』은 본문에서 김영한에 관한 얘기는 하나도 다루지 않았다. “김영한의 자서전 『내 사랑 백석』을 정교하게 읽고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본 결과, 『내 사랑 백석』에 나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 김영한의 창작물”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김영한의 자서전이 허구라는 내용은 이 책의 〈부록1. ‘백석과 자야의 러브스토리’는 김영한의 소설이었다.〉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홍찬선 작가는 “김영한이 『내 사랑 백석』에서 주장한 내용은 창작소설이거나 견강부회한 것이 많아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936년 가을, 함흥의 음식점 함흥관에서 영생고보 영어 선생이던 백석 시인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고, 백석 시인이 자야(子夜)라는 호를 지어주었으며 ▲김영한은 1938년 말부터 1939년 말까지 서울 청진동에서 백석과 동거했고 ▲백석의 대표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에서 나타샤가 김영한 자신이며 백석의 시 〈바다〉 〈내가 외면하는 것은〉 〈힌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에도 자신이 등장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홍 작가는 “백석의 고향인 정주(定州)와 광복 후에 살았던 평양, 그리고 공산당의 숙청으로 정배(定配) 당한 뒤 죽을 때까지 거주했던 함경도 삼수(三水)의 관평농장 등에 관해서도 소설로 재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홍찬선 작가는 『백석의 불시착』을 쓰게 된 동기와 취재과정, 그리고 2년 동안 백석이 살았던 곳을 직접 답사하면서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백석이 꿈에 찾아와서 하소연했다 - 나는 김영한이라는 기생과 깊게 사귀거나 동거한 적이 없다 - 김영한에게 ‘자야(子夜)’라는 호를 지어주지도 않았다 - 김영한이 쓴 『내 사랑 백석』이란 책은 김영한의 ‘창작소설’이다 - 홍 작가가 김영한이 왜곡한 사실(史實)을 바로잡아 나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백석의 눈과 생각으로 장편소설을 썼다 - 백석의 등단 시 〈정주성〉은 진주성을 묘사한 것이다 - 백석의 첫 시집 제목을 『사슴』으로 지은 것은 배달겨레를 상징한 것이다 - 백석의 대표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나타샤는 박경련이다 - 백석이 1940년 만주로 간 것은 망명이었다 - 백석은 이상과 윤동주를 만나 시를 토론했다 *백석이 살았단 곳을 직접 답사했다 - 백석이 유학했던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대학과 졸업여행을 다녀온 이즈(伊豆)반도 등 - 백석이 조선일보 기자 시절 다녔던 광화문과 소공동과 뚝섬 등 - 백석이 1940년부터 광복될 때까지 살았던 만주의 신경(현 심양) 안동(현 단동)과 함흥고보학생을 인솔하고 수학여행을 갔던 여순의 203고지 등 - 함흥은 직접 가지 못했지만 영생고보 영어선생 재직 때 자료가 있어 포함시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