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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Ⅰ. 민주주의와 매채 Ⅱ. 적을 봉쇄한다 Ⅲ. 표현의 한계 Ⅳ. 정부의 부속물 Ⅴ. 해석의 효용 부록 편집자의 말 |
黃義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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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폴란드의 압제정권 지원을 비난하는 데는 증거가 필요 없다. 그러나 미국의 인도차이나 침공이나 여러 해에 걸친 아랍-이스라엘의 분쟁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미국이 방해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런 사실들은 쉽사리 문서로 뒷받침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이란과 리비아가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의 역병인 이 테러를 미국과 그 우호 국가들이 뚜렷하게, 그리고 주도적으로 조직하고 자행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놀라움과 경멸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런 관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아무리 분명한 것일지라도 부적합한 것으로 취급된다…….”
“소련이 적대적인 세력들에 의해 포위되고 터키에서처럼 발사 준비를 갖춘 미사일을 가진 NATO 기지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로 간주되지만, 반면에 니카라과 (산디니스타가 집권하고 있는 민족주의 정권 하의 니카라과를)가 일상적인 미국의 침투에 대항하여 그 영공을 지키기 위해 제트기를 구입하면 그것은 미국의 비둘기파와 매파 모두에 의해 미국의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행동을 정당화시키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미국이 지지하는 엘살바도르의 독재자 두아르테의 보안군이 엘살바도르라는 미국의 우호국에서 독립적인 미디어를 검열이나 정간 정도의 수단이 아니라 살인과 신체 절단, 물리적 파괴(사옥이 폭파되고 불태워졌다)라는 수단을 써 제거했을 때 (라 크로니카 델 푸에블로와 엘 인디펜디엔테가 당한 수난을 가리킨다) 미국의 언론인들, 언론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우리는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다. 그 반응은 침묵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그 당시에도 그후에도 이 무도한 행위에 대해 뉴스 칼럼이나 사설에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미디어가 중앙아메리카의 언론의 자유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엘살바도르의 두 신문에 대한 침묵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니카라과의 야당계 신문 라 프렌사의 경우이다. 미디어 비평가 프랜시스코 골드먼은 이 신문이 고난을 당하는 사례가 4년 동안에 뉴욕 타임스에 263차례나 보도되었다고 보고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는 분명하다. 엘살바도르의 신문들은 미국 추종자들의 살인적 폭력에 의해 잠잠해진 독립적인 목소리였고 ?라 프렌사?는 니카라과를 전복시키려는 미국의 캠페인의 도구이며 따라서 ‘중요한 희생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신문에 가해지는 박해는 분노와 고통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미디어들은 이스라엘의 적들, 특히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테러와 파괴만을 일삼는 악의 화신이라고 묘사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특별한 호의를 베푼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와 레바논의 소도시들과 마을들을 폭격하여 폐허로 만들었다. 이 작전으로 많은 민간인을 포함하여 수십 명이 죽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상했다, 그러나 이 작전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고 별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은 ‘공산주의의 괴물을 피해 도피한 다수의 사람들이 경험한 공포’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수는 1977년 필리핀에서 빠져나온 10만 명 이상의 보트 피플과 미국이 후원한 테러를 피해 티모르에서 빠져나온 수천 명 등 아시아에서 그들의 고향을 등진 수십만 명 가운데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미국이 후원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빠져나온 수만 명이 더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칼럼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겉핥기 이상의 취급을 받지도 못했다.” ---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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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동의를 제조하는 언론!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하는 신문” 하면 우리는 맨 먼저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를 떠올리게 된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뜨려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싱턴 포스트?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두 신문은 미국의 주류 언론을 대표하는 언론매체로, 고급지로서의 권위를 누리면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들 미국의 주류 언론은 정말로 ‘언론의 자유를 누리며’ ‘정확하고도 공정하게’ 언론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주류 언론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이 질문에 대한 촘스키의 대답은 한 마디로 “아니다”이다. 그리고 바로 이 책에서 ‘어떻게’ 아니며 ‘왜’ 아니냐를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있다. 2004년 5월 ?뉴욕 타임스?는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 문제를 다루면서, 그들의 신문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었던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에’ 대한 많은 정보를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망명세력과 정보원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굴절 가능성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정보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2004년 8월 12일 1면에 실린 장문의 기사를 통해 “편집 간부들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했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꺼렸다”고 실토했다. 두 신문의 이러한 발언은 이라크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보도가 정부 편향적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인데,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들이 이런 ‘반성문’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을 만들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도 미국의 언론들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수행에 치어리더 역할을 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묻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물어야 하는데, 미국의 언론은 제 역할과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더 많은 책임이 부시 대통령에게보다 미국의 언론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류 언론이 이라크 문제를 둘러싼 보도에서 공정성을 상실하고 편향보도를 했다는 이와 같은 지적은 노엄 촘스키가 이 책에서 열거한 수많은 불공정 보도의 사례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미디어들은 지배 엘리트들의 여론을 대변한다!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는 미국 언론들의 이러한 ‘비대칭 보도’의 사례는 촘스키의 이 책에서 거듭 이어지고 있다. 정확하고도 공정한 보도를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삼고 있다는 미국의 언론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촘스키는 미국의 언론은 이데올로기에 관련된 중요한 기관들 중의 하나로 사회구성원들의 사고와 사상을 통제한다고 강조한다. 이 기관들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허용될 만한 테두리 안에 가두고 기존의 특권층이나 권위에 대한 잠재적 도전을 방향이 빗나가 버리도록 돌려버린다. 물론 언론도 시장 메커니즘 속에 있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 역시 그 사회의 지배 엘리트와 정부의 지배 하에 놓여 있다. 촘스키에 따르면 미국의 미디어들은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또한 지배 엘리트들의 여론을 대변한다. 그의 프로파간다 모델에 따르면 미국 주류 언론의 여론은 지배 엘리트들의 컨센서스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최선의 판단자가 아니며, 최선의 판단자는 엘리트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엘리트들에게 그들의 의지를 강요할 수단이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엘리트들은 그들의 여론을 국민 전체의 여론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동의를 제조”해낸다. 설득과 암시 등 동의의 공학을 사용한다. 촘스키는 이와 같은 프로파간다 모델의 작동원리를 이 책에서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촘스키가 에드워드 S. 허먼과 함께 쓴 동의를 제조한다(Manufacturing Consent)는 저작과 더불어 그가 심혈을 기울여 미국의 언론을 탐구한 대표적 저서 중의 하나로,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주류 언론이 쏟아내고 있는 정보와 평가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또한 미국의 언론뿐만 아니라 미국의 언론을 모델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의 언론을 보는 데도 유익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참다운 언론이란 무엇이냐는 언론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언론을 위해 언론 종사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며 시민들은 언론이 주는 피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자문을 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