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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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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ko Mikuni,みくに まりこ,三國 万里子
洪美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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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 도안은 나의 언어였다. 악보를 연주하듯, 시를 낭독하듯, 사람들이 내 도안으로 뜨개를 하며 내가 체감한 행복과 전율과 고난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세상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했던 긴 시간이 지나고, 나는 책이라는 형태로 나를 세상 속에 내놓았다.
--- p.33 나는 점점 평범해져 갔다. 동료가 있었고 산이 있었고 일을 했고 때로는 혼자서 놀러 나갈 수도 있었다. 「얼렁뚱땅 반쪽이네」에 나오는 반쪽이 아빠가 말하는 “이대로 좋아”와 같은 행복이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5개월 만에 산을 떠나 왔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사는 곳이 그리워서였다. 북적이는 거리가 그리웠다. 그곳이 파리가 아니어도 좋았다. 프랑스행은 어찌 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은 돈은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도쿄에서 다시 생활해도 될 만큼 충분했다.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다. 제멋대로라는 생각은 했다. 건강을 되찾은 만큼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도쿄로 돌아가자고 결심했다. 모르는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 p.190 봄이 왔고 딸기는 여전히 맛이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계속 아파서 세상의 좋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좀 더 둔감해져서 사는 게 쉬워질까. 하지만 그러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둔감해지면서까지 산다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그날의 일기에 적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둔감해졌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살아가기 편해졌냐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래도 산다는 것은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네’라는 답을 할 수 있다. 이유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삶은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고, 모르던 것을 깨달으며 강해졌다. 그것을 둔감해진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지금은 타인과의 견고한 관계를 원하게 되었고, 힘들어도 나의 힘으로 주변의 상황을 조금씩 바꿔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것이고, 세상에 속하길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 pp.220-221 처음으로 물건을 팔아 번 돈은 2만 몇천 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장씩의 행주와 냄비집게, 앞치마였는데, 동생이 근무하는 레스토랑의 계산대 앞에 진열해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2, 3일 안에 순조롭게 팔려 나갔지만, 내가 손님을 만날 기회가 되지 않아 물건을 사준 사람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대신 손님을 맞았던 동생이 매일 저녁이 되면 전화를 해서 ‘이런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사 갔다’라는 식으로 보고해 주었다. 나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대고 들었다. 기쁨에 뱃속이 따뜻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232 전시판매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자 이 일을 일단락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전시 마지막 날 밤, 갤러리의 주인이 그해의 판매액을 계산한 후에 나에게 물었다. “자, 송금이 좋아? 아니면 현금이 좋아?”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현금으로 부탁합니다.” 주인은 끄덕이면서 돈을 가지고 와 두 번 세어 보더니 명세서와 함께 흰 봉투에 넣어 건네주었다. “밤도 늦었으니 조심해.” 나는 손바닥에 놓인 봉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내가 살아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만들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은 증거가 두툼하고 묵직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봉투를 가방에 넣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헤어지기 전에 서로 새해 인사를 나누고 보니 오늘이 25일이었다는 생각에 “메리 크리스마스”도 덧붙였다. --- p.2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