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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레터
이동진의
이동진
문학동네 200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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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죽음조차 소유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한
2.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3. 고전을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
4. 아름다움의 기준까지 바꿔버리는 힘의 논리
5. 영혼의 흔들림, 구원의 가능성

저자 소개 1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 자체가 복이었는지 혹은 액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일을 지난 20여 년간 한국에서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내가 디디고 선 땅 위에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내가 호흡하는 공기를 다룬 영화들이 서서히 끓기 시작해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을 코앞에서 목도하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영화들처럼 나의 세계도 정점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시간 역시 가끔씩 끓어오른다. 그리고 기포가 사라진 한참 후까지 지치도록 반추한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쓰고 또 쓴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 자체가 복이었는지 혹은 액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일을 지난 20여 년간 한국에서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내가 디디고 선 땅 위에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내가 호흡하는 공기를 다룬 영화들이 서서히 끓기 시작해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을 코앞에서 목도하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영화들처럼 나의 세계도 정점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시간 역시 가끔씩 끓어오른다. 그리고 기포가 사라진 한참 후까지 지치도록 반추한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쓰고 또 쓴다. 일평생 무언가를 수집하며 허덕허덕 살았다. 혀를 차는 사람들에게 이건 유전자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제 와서 되짚어보니 어쩌면 나는 물건을 모은 게 아니라 이야기를 모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추억을 연결하고 있는 실들이 움직이는 마리오네트다.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필름 속을 걷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질문하는 책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밤은 책이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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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84g | 151*224*20mm
ISBN13
9788982811685

예스24 리뷰

삶을 무척 사랑하는 신문기자의 영화에세이
--- 00/01/03 김선희(rosak@hanmail.net)
신문기자가 영화평을 이렇게도 쓸 수 있을까. 어느 날 신문 한 귀퉁이에 프린트되어 있는 '이동진'의 <시네마레터>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신선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감독이 누구라는 것을 알려주고 대충 스토리를 잡아주는 것이 통상 제가 알고 있는 영화의 리뷰라는 것이었는데... 굳이 분야를 따지자면 영화에세이가 될까... 그런데도 그의 글은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조선일보의 영화섹션 중에서 그의 글을 제일 먼저 읽게 되었고, 그가 뽑아내는 인생 철학을 마치 제 것인 냥 흉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화의 바다에서 건져 올렸던 철학, 그 곳에 들어가 헤엄을 치곤 했지요.

신문기자 '이동진'은 정말 아는 게 많은 사람입니다. 문학 서적도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종교학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가 안내해 주는 철학얘기는 어쩔 땐 꽤 현학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 얌전한 문체가 절대로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듭니다. 또한, 간혹 삼천포로 빠져 영화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곳에서 인생의 실타래를 풀어대지만 그 진지한 삶의 시선을 결코 외면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요.(이건 완전히 '이동진'의 문체군요.^.^)

수줍음 잘 타는 계집아이처럼, '이것은 이게 아닌지요' 하고 묻는 우회적인 질문은 너무 완곡해 보여 퍽이나 여린 사람처럼 보이지만 가만 읽다 보면 그래도 할 말은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철철 흘러 넘치는 그의 지적 재산 덕분인 듯 싶습니다. 한 마디로 단정해 버릴 수 없는 언어의 오류마저 잘 알고 있기에, 쉽게 한 문장으로 개념을 가두어 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 그가 삶에 냉소적이고 냉철하다고 말하면 조금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삶과 세상을 보는 눈이 굉장히 냉정합니다. 인간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인간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줄 안다면 너무 억지스러운가요?

아직 30대 초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인생을 뚫어 보는 시선은 단지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통철하게 그리고 절절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도 그것이 인생이지요' 라고 말할 때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거든요.

그가 이 영화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계기가 책 말미 작가의 후기에 적혀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 글이 아닌, 대충 요령과 형식에 얽매인 글을 쓰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문장에 저는 존경을 표합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삶을 사랑하고자 노력하시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책 속으로

우리의 절망은 정말 왜 이리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걸까요. 왜 우린 자식이 죽고, 사랑했던 단 하나의 사람이 떠나가도 끝내 허기를 느끼며 뭔가를 입에 집어넣어야 하는 걸까요.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통곡하며 문상객을 맞다가도 왜 결국 피곤을 못 이겨 쓰러져 잠들곤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존재 조건은 정말 허약하기 이를 데 없습미다. 맛없는 오믈렛과 말라비틀어진 빵, 식판에 돼지먹이처럼 담겨 나오는 식사와 바닥에 나뒹구는 사과는 슬픔과 절망, 두려움까지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고 나약한 육체 앞에 번번이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우리 모습에 대한 기나긴 탄식 같습니다.

--- p.

살아가는 동안, 고통은 바로 백신 속 약한 병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고통은 더위와 피곤에 지쳐 죽은 듯 빠져드는 여름날 오후 낮잠에서 우리의 삶은 여지없이 흔들어 깨우는 자명종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건 우리 영혼을 순결한 불길로 태워 불순물을 없앰으로써 반짝이는 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고통스런 나날들이 계속된다 해도, 지나고 돌이켜보면 괴롭고 무가치한 세월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 pp.56~57

사람들은 누구나 보고 싶은 것만을 봅니다. 그렇게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려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익숙함은 죄악이기도 합니다. 익숙한 눈길과 손길은 종종 익숙하지 않은 삶의 진정성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치고 현실에 안주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악덕을 쌓아가는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지요.

[시네마레터]는 제게 익숙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것은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제 자신을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아직은 내가 살아 있다고 끝없이 외쳐대는 함성이기도 했습니다. 직업적으로 점점 더 많은 영화를 보아나가면서 관성으로만 글을 써나가거나, 익숙한 비평 공식대로 영화에 기계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깨어 있는 눈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려 할 때, 세상에 '나쁜 영화'는 없었습니다. 모든 영화는 다 저마다의 그릇으로 제게 가르침을 쏟아 부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고전으로 평가받는 위대한 영화를 억지로 보려고 하지 마세요.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법칙>이나 칼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 같은 걸작들을 과감히 지나치세요.

영화 역시 다른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사조와 계보를 지니고, 탐구할 만한 역사를 지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문맥을 파악해보려는 자세로 달려들 필요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문가나 영화학도가 아닌 이상, 만일 그런 고전들이 지루하다면 몸을 비비 틀어가며 보는 괴로움을 자청할 이유는 없습니다. 두꺼운 영문법 책의 '제1장'만 열었다 닫았다 하기보다는 영어소설을 읽거나 관용어구를 익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학습법이 아닐는지요.

좋은 영화들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감동받거나 즐릴 수 있는 영화만 보기에도 삶은 턱없이 짧은 게 아니겠습니까. 권위를 무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매니아가 될 수 있습니다.

--- p.147

출판사 리뷰

영화 속에 있는 삶­단순히 영화비평이라는 좁은 장르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독창적인 경지
이동진의 시네마 레터』는 주제가로 쓰인 사라 본의 〈A Lover? Concerto〉와 더불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우리 영화 〈접속〉에서부터 최근에 개봉되었던 스필버그의 신작〈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이르기까지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실린 글들에서 그의 텍스트는 영화 자체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의 영화 읽기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자 개성은 날카로운 시선과 독창적인 사유로 영화와 삶의 이음새를 찾아 드러내준다는 데 있다. 난해한 분석틀이나 갖가지 전문 용어를 동원하여 영화를 해부하거나 아니면 공허한 미사여구로 과대포장하는 류의, 영화를 위한, 혹은 비평을 위한 영화비평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영화는 삶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면서 삶의 지침을 제시하는 나침반이자 인생을 밝혀주는 철학의 보고(寶庫)와 같다.


영화가 삶의 터럭 끝 하나라도 다치게 한다면 영원히 영화 ‘따윈’ 보지 않아도 무방할 겁니다. 영화가 아무리 큰 울림을 주더라도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꿈같은 스크린 속이 아니라 잔인하도록 생생한 삶의 현장입니다. 그 삶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맨발로 설 때 어떤 부조리가 우리를 덮치더라도 말입니다.(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맨발로 서기―〈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영화)


지금 이대로를 사랑하고 살면서, 가지 않은 길을 마음의 고향으로 두고 안식을 취할 수는 없습니까. 미처 가지 못해 그리움의 공간으로 아직 남아 있는 꿈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되지 않나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두렵다”는 파블로의 말에 샐리는 “그래서 우리가 만난 것”이라고 대답하지요. 둘의 사랑처럼 현실과 꿈이 제 위치에서 만날 때 비로소 삶은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움의 공간으로 꿈의 자리 남겨두기―〈탱고 레슨〉의 가지 않은 길)


때로 언어는 구원일 수 있습니다. 웅변이나 격언이 아닌 잡담도 종종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지요. 언어에 수없이 절망하면서도, 그렇기에 사람들은 또다시 다른 이의 말에 조심스럽게 귀기울이곤 하는 거겠지요. (잡담도 때론 희망이 되고―〈체리 향기〉의 언어)


살아가는 동안, 고통은 바로 백신 속 약한 병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고통은 더위와 피곤에 지쳐 죽은 듯 빠져드는 여름날 오후 낮잠에서 우리의 삶을 여지없이 흔들어 깨우는 자명종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건 우리 영혼을 순결한 불길로 태워 불순물을 없앰으로써 반짝이는 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 같은 것일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고통스런 나날들이 계속된다 해도, 지나고 돌이켜보면 괴롭고 무가치한 세월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고통스런 나날 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모르핀)


추억과 향수는 갈 길 바쁜 삶의 여정에서 자꾸 뒤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는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인간은 뒤돌아보는 횟수만큼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요. (되돌아보는 횟수만큼 성장하는―〈딥 임팩트〉의 시차)


영화와 삶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한 올 한 올 엮어가는 그의 글은 독자들에게 단지 영화를 올바로 감상하고 이해하는 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혜안을 밝혀준다. 그는 영화가 내보이는 삶의 모습들에서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짚어내고, 대면하고 싶지 않은 그 속내까지도 똑바로 응시하고 보듬어안는다. 삶 죽음 사랑 언어 영화 사회 역사 시간 공간 등 우리 삶의 무게를 형성하는 중요한 면면들을 화두로 펼쳐지는 그의 영화 탐색은 영화와 삶이 한몸으로 어울려 때로는 구도의 길을 가듯 진지하고, 때로는 내려치는 죽비처럼 날카로우면서 동시에 세상사의 고통과 그 고통의 이면을 볼 줄 아는 따뜻한 시선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때리고 부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B급 오락 영화조차도 그의 언어의 그물을 통과하면 심오한 삶의 진실을 담은 경전으로 승격된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삶을 우려내는 그의 독특한 영화 읽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영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 그리고 그보다 더한 삶에 대한 사랑에서 발원한다.

세상사에 대한 겸허한 시선을 담은 한 편의 미려한 수필처럼 혹은 인간들의 사랑과 눈물, 심지어 광기까지도 노래하는 서정시처럼 읽히는 그의 영화 이야기는 단순히 영화비평이라는 좁은 장르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독창적인 경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영상 매체(시네마)와 문자 매체(레터)의 행복한 결합이 제공하는 새로운 독서 체험은 독자들에게 가슴 절절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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