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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씀
1장 21세기 도덕 교육이 왜 중요한가? 제1부 현대 도덕 교육의 역사적 통찰 2장 도덕 교육에 대한 플라톤의 공헌 2.1 서론 2.2 열 가지 다양한 이유 2.3 비정통적 이유 2.4 결론 3장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도덕 교육 3.1 서론 3.2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종류의 우정 3.3 행복 달성을 위한 덕의 역할 이해 3.4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개발을 위한 습관화의 필요성 3.5 우정, 덕, 그리고 재습관화 3.6 덕에 기초한 우정을 준비하기 위한 깨달음 조성 3.7 초보적 인격에 기초한 우정을 통한 덕의 함양 3.8 결론 4장 신회의론과 도덕 교육 4.1 덕 윤리의 부활 4.2 왜 회의론인가? 4.3 회의적 인식론은 덕 인식론이다 4.4 과학적 회의론 4.5 두 가닥을 하나로 모으기 5장 니체와 도덕 교육 5.1 서론 5.2 니체의 도덕 교육론 5.3 이것은 어떤 종류의 이론인가? 5.4 현대 교실에서의 니체 식 도덕 교육 5.5 결론 6장 신칸트주의와 도덕 교육 6.1 소개 6.2 칸트의 교육 6.3 학술 활동 6.4 전망 제2부 도덕에 대한 새로운 접근 7장 자유주의적 권위와 도덕 교육 7.1 서론 7.2 동의와 강압 7.3 자유주의 교육 및 동의 보류 이유 7.4 도덕 교육 동의 기준 7.5 동의 기준에 대한 반대 7.6 21세기의 도덕 교육과 정치적 동의 8장 도덕 교육의 기초와 역량 접근 방식 8.1 서론 8.2 자유의 가치에 대한 평가: 역량, 주도성, 합리성 8.3 자유를 위한 교육: 책임 있는 도덕적 행위자 양성 8.4 결론 9장 인정 이론과 도덕 교육 9.1 서론 9.2 두 가지 사례 9.3 인정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9.4 학교 교육의 구체적 특성 9.5 두 가지 사례의 의미 9.6 결론 10장 맥락적 돌봄 윤리의 실천 10.1 서론 10.2 돌봄 윤리의 기원 10.3 윤리적 돌봄, 돌봄 그리고 염려 10.4 교육과 돌봄 윤리 10.5 학교에서의 돌봄 윤리 실천 10.6 돌봄에 대한 도전적 과제 10.7 비판적 돌봄의 필요성 10.8 돌봄 윤리와 글로벌 교사 이탈의 도덕적 딜레마 10.9 교사를 위한 돌봄 공동체 10.10 교사-리더 10.11 연속성 10.12 교사-학자: 교사의 역량 강화와 자기 연구 10.13 결론 및 교사 교육을 위한 함의 11장 비이상적 덕 이론과 교육의 중심성 11.1 서론 11.2 보편주의 11.3 실천 11.4 사회적 맥락 11.5 프로네시스 11.6 덕 꾸러미 11.7 정직 11.8 결론 12장 실용주의 도덕 교육 12.1 서론 12.2 실용주의의 역사적, 개념적 맥락 12.3 실용주의와 도덕성 12.4 실용주의 도덕 교육의 가치 12.5 거리낌의 잠재적 원인 12.6 결론 제3부 현대의 도덕적 딜레마 13장 가상공간과 도덕 교육 13.1 서론 13.2 선행 연구 13.3 가상공간의 구조적 제약 13.4 가상공간을 위한 부담스러운 덕 13.5 구조적 문제 해결하기 13.6 결론 14장 교육과 민주주의에 대한 소비주의의 위협 14.1 서론 14.2 소비주의는 도덕적 실재이자 도덕적 이슈 14.3 소비주의: 개인과 집단의 도덕적 함의 14.4 소비주의 사회의 도덕 교육 14.5 소비주의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도덕 교육 14.6 결론 15장 도덕 교육과 심한 불일치 15.1 서론 15.2 개념 정의 15.3 도덕 교육의 기법 15.4 자유주의적 정의의 기준 15.5 도덕 교육의 과제 15.6 공정한 대우와 공정한 기대 15.7 중요한 반대 의견 15.8 가능한 해결책 15.9 결론 16장 인격 기반 성 윤리와 성교육 16.1 서론 16.2 성 윤리와 성교육 16.3 윤리적 체계의 문제점 16.4 머독 식 성 윤리 16.5 성교육과 도덕 교육을 위한 함의 16.6 결론 17장 권태의 도덕적 명암 17.1 서론 17.2 상황적 권태 17.3 실존적 권태 17.4 집중적 실천과 주의집중 17.5 집중적 교육 역자 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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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사회생활의 지속적 특징에서 비롯되는 여러 도덕적 난점과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자신들의 윤리적 가치, 삶의 선택 또는 종교적 신념이 부모의 신념과 충돌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경쟁하는 직업 경로나 인생에서 성공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그들은 사회 정의와 같은 바람직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들은 서로 다른 종교적 세계관이나 정치적 관점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과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러한 딜레마는 복잡하고 연결된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행동의 부산물이며,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사회적 복잡성과 연결성의 증가로 악화하고 있다.
--- p.15 플라톤은 여러 이유로 도덕 교육에 대한 현대적 사고에 공헌했다. 나는 제일 먼저 좀 더 직접적인 이유, 즉 우리가 플라톤을 올바르게 해석할 때 등장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우리가 비관주의에 대한 유혹에 맞서도록 자극하고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을 알게 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와 같은 이유는 유의미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플라톤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작업을 수반하는 플라톤에 대한 접근 방식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프로트렙틱에 대해 배우기 위해 우리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를 연구할 수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세부 사항을 조사한 다음에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평가한다: 우리는 플라톤의 사상이나 그 텍스트의 의미를 분별하려고 노력하지 않고도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확실히, 플라톤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플라톤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역사의 한 단편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생산적인 방식으로 그에게 접근하는 편이 좋다: 그의 저술은 교육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살아 있는 적절한 원천이다. --- p.44 멘토링과 역할 모델링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 따라서, 그리고 습관화 과정에 대한 멘토링과 역할 모델링의 중요성에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멘토와 역할 모델이 유덕하고 그래서 좋은 지침이 절실히 필요한 개인에게 탁월한 지침을 제공할 것이라 가정한다. 가상의 학생으로 돌아가서, 이전 성장 과정에서 학생들은 부모, 교사, 친구 또는 문화가 그들을 잘 인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덕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깨달음이 필요했다. 이러한 이전의 영향은 그들을 덕으로 이끌기보다는 덕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학생들이 이제 덕을 추구하고 싶다면 이전 지침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 지침이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에게 의지하는가? 당연히 첫 번째 반응은 교사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는 일반적으로 학생에게 재습관화에 필요한 지침을 제공할 시간과 공간이 없다. 교사는 추천하고 학생들이 교사보다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지침을 발견할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다소 제한적이다. 이것이 바로 우정이 필요한 지점이다. 교사가 재습관화를 위한 첫 번째 단계를 시작하기 위해 위의 방법을 사용하면, 특히 교사가 교실에서 덕을 추구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교실 밖에서는 우정의 씨앗이 심어졌을 것이다. --- p.72 교육학과 관련하여, 칸트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이성의 힘을 적절히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이론적 영역에서 이것은 지식과 진리 주장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하는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고 정당화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주장이 실제로 정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칸트는 그의 『윤리학 강의』와 『순수이성비판』과 같은 다양한 저서를 통해 교육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 그는 두 저서에서 진리와 상황에 대한 지식을 주장할 때, 단순한 주관적 준칙(“내가 내 의견을 밝히는 것”)과 객관적 준칙(“내가 믿는 것”)의 차이를 어린이가 이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예: Kant, 1998, p. 822). 주관적 준칙을 사실로 취하는 것은 편견에 해당하며, 이는 지식 주장에 대한 정당화일 수 없다(Kant, 1992a,b, AA 9, 77). 원하는 것은 객관적 준칙, 즉 진실이나 검증된 지식 주장의 형태나 유형을 취하는 준칙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이 준칙이나 그에 뒤따르는 규칙을 곧바로 파악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모범을 활용하는(비록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지만) 소크라테스식 접근 방식이며, 수용할 수 있는 준칙을 확인하고 형성할 때 학생의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훈련이다. --- p.151 우리는 동의를 보류하는 일부 이유가 교육기관에서 권위 있는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문화적 힘의 불평등이 커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도덕 교육이 우리의 도덕 규범에 대한 문화적, 교육적 엘리트 중심적 해석이 지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이유는 우리가 많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도덕적 분열의 증가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일부 시민들은 국가 도덕 교육이 최악의 방식, 즉 종파적 전쟁터로 정치적일 것이라고 예상된다는 이유로 동의를 보류할 수 있다. 동의를 보류하는 이러한 이유와 함께 여타의 현대적 이유로 인해 21세기 자유주의국가 교육은 그 정당성과 합법성에 심각한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아마도 현대 정치권력은 이러한 도전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우리가 겸손하고 협력적이며 자발적인 정신으로 도덕성을 대부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이 항상 우리를 위해 그렇게 대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203 분명히, 우리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자기 삶에 관한 중요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갖는 존재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은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자기 존중 즉, 자신을 존중할 수 있고 존중할 만한 자격이 있다는 개념을 발전시키기가 어렵다. 또한 우리가 자기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배려를 받지 못한다면, 배려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감각을 키우기 어렵거나 세상이 그것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감각을 키우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신의 특별한 자질이 공유적 삶에 대해서, 또는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공헌했음에도 그들의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그것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자신을 보는 방식이 사회화되고 습관화되는 방식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는 방식뿐만 아니라 그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 p.231 교사 돌봄을 위한 환경은 교사의 초기 준비 단계부터 조성할 필요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교사 준비 과정에서는 지원자가 다른 교사와 돌봄 협력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Murawski & Dieker, 2013; Rabin, 2019a,b; Sanger & Osguthorpe, 2013). 교사 교육에서 돌봄 교사 관계는 협력을 지원하고(de Lima, 2003; Hargreaves, 2002; Rabin, 2019a), 집단적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다(Goddard et al., 2004). 이는 교육과 교직 유지의 감정 노동에 관한 대응과 관련이 있다.(Boe et al., 008; Kostogriz, 2012). 교사 협력은 학생 교육을 위한 공동교육 모델(Rabin, 2019a,b), 사회 교과의 교수법인 봉사 학습(Jones & Lake, 2018), 그리고 도덕적 물음을 탐구하는 학제 간 연구를 통해 함양될 수 있다. 교사 교육자들을 위한 자기 연구 실천은 실천을 목표에 일치시킬 때 중요하며, 실제로 그 교육자들은 교사 교육의 맥락에서, 특히 차이를 넘어서는 관계의 개발을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Kitchen, 2005a,b; Trout, 2018). 우리가 모든 수준에서 교사로 하여금 서로 협력하여 계속 체계적인 자기 연구를 수행하도록 지원하면 우리는 교육에서 돌봄 윤리를 실용화할 수 있을 것이다. --- p.273 우리는 때로 도덕적 판단이 옳은 것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마치 모든 상황에 어떤 옳은 일이 있고,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대부분 옳은 일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니면 최선인지를 완전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평가하고 선택해야 하는 더 좋고 더 나쁜 옵션이 있다. 이 접근 방식의 또 다른 결과는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을 다르게 인식하고, 그 안에서 다르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상황을 다르게 이해할 것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혹자는 특정 고려 사항을 알아차리는 데 더 기민할 것이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전 경험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는 또한 사람들이 이러한 고려 사항을 다르게 평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심지어 동일한 덕을 많이 “소유”하더라도?무엇을 해야 할지 다른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동일한 덕을 실천하더라도 결국 매우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프로네시스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판단의 역할에서 비롯된다. 또한 이는 우리가 덕을 실행하는 방식에서 사회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고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우며, 이러한 상호 작용을 우리 자신의 범주와 가정의 틀에서 벗어날 기회로 사용하면, 우리는 모두 더 나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있고 서로 다른 사회적 동료들과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영향은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 p.301 실용주의자는 도덕 교육을 다른 교과목과 분리하여 범주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것은 모든 교육적 실천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교과목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 방식, 학생들의 상호관계, 그리고 환경은 학생들의 도덕적 성장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도덕 교육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 방식과는 달리, 실용주의적 도덕 발달은 학생들에게 도덕적 규칙의 완전한 저장소(cache)를 제공하기 위한 별도의 커리큘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통적 프로젝트의 요소(예: 지나치게 구체적인 목표 및 결과 목표의 제시)를 포기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거리낌을 잠재적으로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실용주의자는 도덕 발달의 행동과의 관련성, 반성적 사고 기술의 습득, 과거를 검증하여 예상치 못한 일의 처리, 현 행동에 대한 사려 깊은 결정, 그리고 미래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인다. 도덕적 성장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판단 평가에 대한 기대와 의사 결정에 대한 이상적인 유지 요구를 완화할 수 있다. --- p.329 우리는 빅 데이터 알고리즘이 어떻게 사용자를 악의적인 커뮤니티로 유도하는지 이미 언급했으며, 모범과 반대되는 상황에 빠지면 도덕적, 인식론적 악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뉴스 업데이트를 본 다음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거나 이벤트에 대한 특정 평가를 조장하기 위해 봇이 생성(및 추천)한 최고 순위 댓글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댓글과 상호작용하게 되면 우리는 상황에 대한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뉴스를 업데이트하지 못하며 사건에 대한 특정 평가를 하게 될 수도 있고 사건에 대한 어떤 평가로 유도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재게시, 추천과 같은 활동을 통해 이러한 잘못된 정보나 평가를 퍼뜨릴 수 있다. 이 개인은 좋은 도덕적, 인식적 동기에서 온라인 세계에 참여할 수 있지만, 구조적 제약(예: 봇)으로 온라인에서 유덕하게 행동하고 덕을 함양하는 능력을 방해받는다. 이 예는 온라인에서 도덕적, 인식론적으로 자신을 형성하고 행사하는 능력에 구조적 제약이 자기효능감을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 p.352 소비주의는 단순한 쇼핑 그 이상이다. 그것은 엄청나게 설득력 있는 선전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광고가 얼마나 널리 퍼져있는지 알아보려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광고의 보급률만 보면 된다. 우리는 항상 음식을 소비해야 하므로 소비주의는 항상 존재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주의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을 지탱한 기본적인 생물학적 자기보존과 동일하지는 않다. 인간은 소비의 상징과 대상을 통해 정체성, 사회적 지위, 사회적 차별성을 전하는 법을 모색해 왔지만, 소비주의는 이러한 관행과 범주적으로 다르다. 소망과 욕구, 과잉과 생존 사이의 경계가 어딘지 정확히 결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의 경계에서 생존과 출산을 위한 진화론적 명령이 일련의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이데올로기(소비를 단순히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봄)로 전환된다. 즉, 어떤 시점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한 소비로부터 우리 소비가 대부분 소비주의 자체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세계로 전환했으며, 때로는 개인적, 사회적 또는 지구적 생존을 희생하며 점점 더 많이 비용을 내게 되었다. --- p.382 모욕적인 표현을 금지하는 규칙과 함께 교사와 학생은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의 비판을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요구할 것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시민성의 규칙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특정 종류의 감정적 반응을 표현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때때로 이러한 규칙은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주장에 반응하는 특정 종류의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교사와 학생은 이러한 시민성의 규칙을 균일하지 않게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알렉스가 파멜라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비판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할 수도 있다. 그들은 알렉스의 분노나 좌절을 파멜라의 비판에 대한 정당한 반응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들은 알렉스의 좌절감을 그의 생활방식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반응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알렉스가 파멜라를 비판하면, 그들은 알렉스의 비판을 단순히 파멜라의 주장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생활방식에 대한 파멜라 공격에 대한 방어로 간주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파멜라가 화를 내거나 좌절한다면, 그들은 파멜라가 자신의 신념에 대한 비판에 부적절하게 반응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더 높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알렉스가 선호하는 행동을 파멜라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불승인하는 것보다 그의 존재에서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사와 학생은 알렉스보다 파멜라에 대해 더 심하게 시민성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 p.434 성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성 윤리 원칙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는 것을 예방하고, 존중과 자율성을 증진하도록 시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강점이 있다. 그러나 성 윤리에 대한 접근 방식은 성교육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성에 대한 관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이는 그 방식이 성의 도덕적 측면을 성적 선택이나 행위의 순간으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순간은 도덕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은 예를 들어 행위의 순간에 타인 존중이나 생활방식의 준수만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의 순간이 행위자의 인격에 대해 뭔가를 드러낸다는 사실에서도 비롯된다. 이 인격은 사람들의 성에서 드러나고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성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차례로 형성된다. 그래서 성교육에서 제시하고 있는 많은 성 윤리는 다른 사람과의 성적 만남에 국한되지 않은 모든 시간과 모든 방식에서 성의 도덕적 측면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 p.457 하이데거는 의미를 만드는 진정한 자아를 실존적 목적 없음의 잿더미에서 잠재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사조로 상정한다. 이러한 해결책과 개인의 진정성을 동반하는 이상은 문화적 관심을 얻었다. 철학자 테일러가 지적했듯이, 그 해결책은 틀림없이 우리 시대의 가장 설득력 있는 이상이 되었다. 진정성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의 번영은 “우리 각자가 인간이 되는 고유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Taylor, 1991, p. 28). “나만의 고유한 인간됨의 방식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내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는다”(p. 29)는 독특한 방법이 있다. 종종 무의식적으로 추구되는 실존적 권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성에 대한 요구를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진정성에 이르는 길은 실존적 권태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는 것이다. 이 어려운 발걸음은 눈을 크게 뜨고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자유로워지기보다는 곤경에 빠지는 진실하지 않은 실천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 p.4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