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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전설에서 역사로
로물루스의 집 포로 로마노 대경기장 치르코 맛시모 누마 왕과 베스타 신전 유피테르 신전과 유노 신전 2장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 세르비우스 성벽 비아 아피아 오품 보아리움 타불라리움 고대 로마의 감옥 마메르티눔 체칠리아 메텔라의 묘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포룸과 신전 테베레 강 3장 제국의 시작 아우구스투스 영묘 아우구스투스 포룸 마르켈루스 극장 평화의 제단 아라 파치스 오벨리스크 아쿠아 비르고 클라우디우스 고가수로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 연대표 부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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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 캄피돌리오 언덕 - 베드로 대성당
테베레 강변 일곱 언덕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로마는 네 개의 서로 다른 로마가 중첩되어 있는 도시이다. 즉 기원전 8세기 중엽부터 1천200년 동안 지속된 ‘고대 로마’, 1천년 동안 지속된 ‘중세 로마’, 400년 동안 지속된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마’, 이탈리아의 통일부터 지금까지 100년 이상 계속되는 ‘현대 로마’가 한 장소에 공존하고 있는데 이런 복합적인 도시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로마의 중심은 시청이 자리 잡고 있는 캄피돌리오 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 언덕은 로마의 일곱 언덕 가운데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곳이었다. 이 언덕 위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 한가운데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이 기마상은 멀리 바티칸 언덕에 세워진 베드로 대성당 쪽으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캄피돌리오 언덕 뒤로는 고대 로마의 중심가였던 포로 로마노의 유적이 마치 건축의 묘지처럼 눈부신 태양 아래 흩어져 있고 그 너머로는 콜로세움의 폐허가 보인다. 로마 시내 지도를 눈여겨보면, 로마제국의 위용을 상징하던 로마 최대의 건축물 콜로세움과 세계 최대의 기독교 성전인 베드로 대성당은 공교롭게도 캄피돌리오 언덕을 중심으로 일직선상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로마 역사와 기독교 역사는 떼어놓을 수 없다는 뜻일까? 현대 건축공학으로도 불가사의한 콜로세움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공사가 시작된 콜로세움은 티투스 황제, 도미티아누스 황제로 이어지면서 4층까지 완성됐다. 세 황제를 거치기는 했지만 건축기간은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는 간결한 설계와 공사 현장의 효율적인 조직과 뛰어난 시공 기술, 수많은 노예 노동력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밖에 안 걸렸다는 것은 거의 불가사의한 일이다. 오늘날의 기술로도 이 정도 규모라면 5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콜로세움의 바깥벽 높이는 거의 50m나 되고, 둘레가 527m이다. 공사에 사용된 돌의 양만도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세우는데 사용된 돌의 양과 맞먹으며 돌 블록을 연결하는데 사용된 고리쇠는 300톤에 이른다. 콜로세움은 5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고 입석까지 포함하면 7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이 정도 규모라면 웬만한 도시 인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인데도 관중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는 15분이 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1층의 80개 아치 중에서 타원의 장축과 단축 선상에 있는 4개의 주 입구를 제외한 76개는 출입구 번호가 1부터 76까지 새겨져 있어서 출입 통제가 수월했다. 네 개의 층으로 나뉜 관중석은 신분에 따라 자리가 달랐고, 시야를 좋게 하기 위해 2,3층 관중석 경사도를 37도나 되게 했으며 이보다 더 가파르게 설계된 4층은 외벽을 바깥으로 미는 힘을 줄이기 위해 목재로 만들었다. 비가 오거나 햇빛이 강할 때는 돛과 같은 천막 벨라리움을 쳤는데, 이것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기에 나폴리만의 미세눔 항의 해군기지에서 올라온 특수요원들이 담당했다. 콜로세움은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서있는 것 같지만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은 원래 모습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뼈대만 남은 폐허의 모습은 묘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보름달이 떠있는 밤이면 더욱더 그렇다. 낭만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진 나체’라고나 할까? 영국 시인 바이런이 말했듯이 ‘마력의 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capitol, calendar, people, money…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로마 역사와 건축, 예술 이야기 외에 로마에서 유래된 영어 어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575년 팔라티노 언덕 위에 유피테르 신전을 세우려고 땅을 파던 중 사람의 머리가 발견되자 사제들은 이 언덕을 카푸트 문디(Caput Mundi), 즉 세계의 머리가 될 징조로 받아들이고 이 언덕을 아울루스의 머리라는 의미에서 카푸트 올리(Caput Oli)라 했다. 언덕 이름 카피톨리움(capitolium)은 여기서 유래한다. 영어권에서는 어미를 떼어내고 capitol이라 하고 미국에서는 의사당을 the Capitol이라고 한다. 로마에서는 S.P.Q.R.이라는 표시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S.P.Q.R.은 현재 로마시의 상징으로 Senatus Populus-Que Romanus(로마의 원로원과 국민) 의 약자로 기원전 508년부터 로마의 주요 기념물에 등장한다. 여기서 포풀루스란 국민을 뜻하며 영어의 people은 포풀루스에서 유래됐다. 고대 로마의 제 2대 왕 누마왕은 달이 차기 시작할 때 백성들에게 칼렌데(calende, 매달의 첫 날)를 선포하고 로마를 수호하는 유노 여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또한 백성들에게 그달 중 공무에 종사하는 날이 언제이며 휴일이 언제인지를 알려줌으로써 백성들이 사회생활을 체계적으로 하도록 했다. 일년의 칼렌데와 공무종사일, 휴일 등을 새겨놓은 판을 칼렌다리움(calendarium)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달력을 뜻하는 영어의 calendar는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유노(Juno)는 그리스의 헤라 여신에 해당하는데 캄피돌리오의 유노여신은 결혼에 대해 충고를 해주고 나라의 재앙을 알려준다고 해서 충고하는 자, 경고하는 자라는 뜻의 모테나(moneta)라는 이름이 덧붙여져 유노 모네타가 되었다. 기원전 286년에는 유노 모테나 신전 자리에 국립조폐국이 들어섰다. 그 후 로마사람들은 이곳에서 찍어내던 동전을 유노 모테나에서 뒤 단어만 떼어 모네타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어에서 모네타라는 말은 지금도 동전, 화폐라는 뜻이다. 이 말이 프랑스로 가면서 moneie가 되었고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money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