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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제1장 ‘지역보건의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제2장 지역보건의료 방법론 제3장 지역 불평등과 정치경제 제4장 지역보건의료의 조건 제5장 건강과 보건의료, 사회적 결정요인 제6장 지역보건의료 체계, 정책, 사업 제7장 지역보건의료 거버넌스 제8장 주민참여 제9장 지역보건의료 ‘개혁’의 방향과 전망 제10장 지역으로부터의 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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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역 개념이 정부나 행정체계와 연관된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엄밀하지 않고 관행에 따른 용법이지만, ‘지역’은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를 ‘지방’은 광역자치단체인 시·도를 가리킬 때가 많다. 이러한 지역 개념을 정부나 행정이 전유할 때 지역 개념의 국가화, 정부화, 행정화 현상이 나타난다. 즉, 주민이나 지역사회를 포함하는 공동체 개념과 달리 지역은 국가와 정부 내부를 대표하거나 설명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지역보건법’이라는 법률 이름에서 한국어의 공동체나 영어의 ‘community’를 감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보건법과 지역사회를 연결해서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 p.14 국가 수준이든 지역 수준이든 한국 보건의료의 ‘자본주의화’를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제도이자 정책이 ‘국민건강보험’이다. 흔히 한국 의료의 공공성을 증명하는 핵심 근거로 동원되는 이 제도가,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시장과 자본주의 원리의 핵심 요소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 또는 반감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의료 이용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국민건강보험이 공적 제도이고 따라서 공공성을 포함한다는 것은 분명하나, 이런 의미의 공공성은 국민건강보험이 의료 이용뿐 아니라 의료 ‘생산’의 토대이자 틀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공공성이 유/무의 이분법적 개념이 아니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자본주의체제와 시장원리에 기초한 국민건강보험의 성격을 엄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 p.12 지역 불평등의 구조는 분명히 다중적, 다면적, 다차원적이지만, 여러 사회적 불평등이 공간적으로 실현되고 드러나는 것으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복잡계 이론과 시스템 사고를 활용하면 복잡한 상관관계를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하나, 구조와 메커니즘을 하나의 종합적, 총체적 현상과 경험으로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지역 불평등의 핵심 요인은 경제적 불평등이다. 예를 들어, 경제적 불평등은 어떤 지역주민의 삶을 결정하고,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한다. 불리한 지역의 인구는 정체 또는 감소하면서 생산과 소비를 비롯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해진다. 총체성, 관계성, 형태발생론적 접근 등과는 관점이 다르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격차와 불평등이 발생하는 다차원과 복합적 경로는 〈그림 3-1〉과 같은 ‘인과순환 구조’로 나타낼 수도 있다. --- p.116 예컨대 지역과 지역주민이 건강 데이터 생산과 소비에서 소외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강과 의료불평등 문제에 직접적이고 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참여하는 당사자, 즉 시민이 직접 지표 생산에 개입하는 방안이 있다.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 일부 시민참여의 기전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통치나 실무 등의 이유로 온전히 이행되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수동적인 정책대상자로 여겨졌던 시민이 지표 생산의 전 과정(지표 설정 → 데이터 수집 → 통계 생산 → 환류 → 지표 (재)설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기전을 확보하여, 지표가 국가 통치의 도구가 되는 것을 견제하고 지표 생산의 과정과 결과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 p.233 지역보건의료체계의 한 가지 구조는 명백히 보건의료 또는 그와 관련된 영역이다. 전체성이라는 관점에서 흔히 고려하지 않는 측면은 나머지 두 가지 구조, 즉, 정치체계와 경제체계로서의 지역보건의료체계이다. 한국 의료는 특히 의료보험제도 실시와 더불어 ‘국가화’와 ‘경제화’ 경향이 크게 강화되었고 지금도 그런 과정 중에 있다. 의료체계가 생산하는 의료는 정치체계가 필요로 하는 생산물인 동시에 경제체계가 필요로 하는 생산물이다. 체계 관점에서 보면 각 체계 내에서 고유 생산과 자기 재생산이 일어남과 아울러 공동 생산도 이루어진다. 지역보건의료체계도 마찬가지다. --- p.264 하지만 연구자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해당 분야 지식과 기술의 전문가이지만 정치적 활동을 기획하는 전문가는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결합은 필수적이다. 물론 이 단계에서 결합하는 시민사회단체 또는 활동가에 대한 지역의 평판, 지역주민과의 결합도, 지역의 정치적 지형 등이 연구자, 전문가, 시민사회 활동가 간 시너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과 지역주민들이 지역 보건의료개혁의 정치적 주체가 된다는 것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것이라면 지역의 활동가들이 결합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p.435 |
시대의 화두 ‘지역’, 그리고 그 중심을 차지하는 보건의료
‘지역’ 문제는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공동체가 직면한 중요한 도전이자 해결 과제이다. 건강, 보건의료, 돌봄은 주민이 안심하고 일상을 살아갈 조건을 좌우하기에 그 중심을 차지한다. 인구가 줄고 노인인구의 증가로 대표되는 인구분포의 변화로, 보건과 의료의 조건 또한 새로 관련 제도를 만들고 체계를 구축하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변화했다. 보건의료의 조건과 환경을 구성하는 인구, 경제, 정주 공간, 교통 등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는데도 대응 방향과 원리, 방법은 늦어지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변화한 사회와 지역보건의료 국가 보건의료체계를 구성하던 ‘나라 만들기’ 시기에 목표로 삼았던 접근성, 형평성, 효율성 등을 성취하기 어려운 지역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인구 ○○당 ○○이라는 식의 국가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보는 기준으로는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도 흔하다. 규범과 현실 사이에 틈이 점점 더 벌어지고 해결할 방법은 마땅치 않은, 일종의 기능 부전 상태가 심해지고 있다. 지역보건의료를 비롯해 이와 관련이 있는 사회적 실천, 공적 개입, 정치와 정책의 실행이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무력감이 커지는 상황도 간과할 수 없다. 지금까지 보건의료를 지탱하던 근본 구조였던 시장이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인구가 줄고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시장은 축소하고 시장원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비도시 지역에서 의료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거나 응급실이 문을 닫는다거나 하는 현상은 바로 이런 구조와 원리에서 비롯된다.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시장의 축소 또는 시장의 부재는 시장 외부에서 해결책을 구해야 함을 뜻한다. 새로운 지역보건의료를 향한다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늦고 정확하지 않은 이유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지만, 보건의료의 경우 특히 ‘지식’의 책임이 크다. 사회적 실천 대부분은 지식 의존적이고 이론 의존적이지만, 미래의 문제를 다루는 보건의료는 특별히 지식 의존성이 더 크다. 그중에서도 인구 집단의 건강을 다루는 보건과 건강정책은 그 정도가 더욱 강하다. 새로운 조건과 환경에서 어떤 지식을 보태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접근과 방법 또는 메타 지식이 필요한지가 여기서 말하는 ‘새로움’의 요체라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측면에 유의해 이에 관해서 논했다. 첫째, 지역보건의료를 사람들의 삶, 그리고 사회 여러 영역과 통합적으로 보려 했다. 보건의료는 거의 전적으로 사회적인 것일 뿐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간 삶 또는 사회와 상호 관계를 구성한다. 지역보건의료는 지역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에서도 경제, 문화, 정치, 사회 등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지역보건의료는 자연과학 실험과 달리 개방 체계로 이해해야 한다. 두 번째로 비판을 강조했다. 여기서 비판은 평가하고 비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존 지식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거나 가정하는 것, 또는 과학적, 합리적 방법으로 수용하는 주류 이론, 다수가 수용하는 권위를 가진 지식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뜻이다. 셋째,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을 추구하는 행동과 실천의 주체를 사람과 주민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포함했다. 전통적으로 보건의료의 체계, 제도, 정책에는 주로 국가와 중앙정부, 의료제공자, 전문가 관점이 반영되었다. 이런 권력관계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 중심’ 또는 ‘주민 중심’의 관점을 보완해야 기울어진 지식의 권력관계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동기와 문제의식 자체, 그리고 새롭게 제안하는 틀과 방법이 새로운 지역보건의료에의 길에 초석이자 좀 더 많은 공부와 논의를 함께 하자는 초대이며, 나아가 좀 더 풍부한 사회적 지식이 생산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