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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비망록 / 8
카투사(katusa)로 배속받다 / 42 빨간 스카프의 女人 / 74 실버그린 하우스 / 94 달밤에 체조하다 / 117 양공주가 된 여대생 / 136 슬래키 보이(slack boy) / 168 여자는 흔들리는 갈대 / 185 누가 양공주에게 돌을 던지랴 / 209 팀 스피리트 훈련 / 230 버림받은 여자 / 250 그녀와 마지막 춤을 추다 / 270 벙어리 뻐꾸기 집을 찾다 / 293 에필로그(epilogue) / 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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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는 슬픈 이름의 군인이었다. 한국군이 미군 제복을 입고 미군의 명령을 받는 병영에서 근무하는 군인이다. 그렇다고 의용군은 아닌 소속이 분명한 한국군인이었다. 한국전쟁 때부터 카투사는 GI의 정보통이며 길 안내자며 통역관이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승리를 거둔 전투는 카투사의 정보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주한 미군에 귀속한 소수 요원이지만 한국전쟁 때 6만여 카투사가 있었고 4만여 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그들 전사자 명단은 한국군엔 없고 미군에 있었다. 죽어 시신조차도 확인 못 한 상태에서 그 이름만 웰링턴 국립묘지에 묻혔다. 1950년 8월 16일 313명의 카투사가 차출되어 일본으로 건너가서 2주 군사훈련을 받고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일본에 유학 가 있는 한국인 대학생들이 카투사 장교로 지원하였다. 그때 아버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가 카투사로 지원하였다. 아버진 영어를 잘해 카투사 통역장교로 픽업되어 그해 8월 24일 배속을 받고 전쟁에 투입되었다. 그 후 한국에서 차출된 총 8,637명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2주일간 훈련을 받고 미 제7사단에 카투사로 배속되었다. 한국 현지 미군에서도 카투사를 차출하여 미 제1기병사단, 제2사단, 제24사단, 제25사단에서 훈련을 받았다. 미군은 전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부대별로 카투사를 실제 운용하거나 카투사만의 소규모 독립부대를 운영하였다. 당시 각 사단에 500명씩 총합 8,300명의 카투사를 배속시켰다. 카투사는 제도적으로 한국군이었기 때문에 봉급과 행정처리는 한국군 명을 받았으나 급식과 일용품에 군수용품은 미군으로부터 지원받고 미 군영에서 근무하였다. 한국전 내내 카투사는 미군과 생사를 같이했다. 카투사 없이는 전투할 수가 없을 만큼 그들은 미군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주로 경계, 정찰, 정보 등 특수 업무에 종사하였으나 위급 시엔 중화기 중대에서 무거운 기관총, 박격포, 무반동총과 탄약을 운반하는 일까지 하였다. 나아가 한국의 지리와 기후에 익숙하지 못한 미군들에게 유능한 안내자가 되었고, 방어진지를 찾아내거나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일을 도맡아 하였다. 또한, 전투기술을 익혀가면서 적과 두려움 없이 싸우는 용감한 모습은 미군들을 놀라게 하였다. 미8군에서도 GI와 카투사 간의 이런 사소한 문제로 인한 충돌을 염려하고 있었다. 미군은 군율이 엄격한 군대지만 병영을 벗어나거나 업무시간을 벗어나면 상황이 달라져 한없이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 군대라고 하여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건드리지 않는다. 기지촌은 한국이지만 독특한 미국의 이질 문화를 갖고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주객과 거의 발가벗은 모습으로 유혹의 추파를 던지는 양색시들의 작태가 혼란스러웠다. 섹스와 돈의 즐거움을 누리는 군상들이다. 그러나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듯이 미군 병사와 양공주 간에 섹스를 초월한 애틋한 사랑이 감동을 주곤 하였다. 때론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인 성징이 슬프지만 그 속에서도 순애보는 있었다. 색시들은 미군 병사가 좋아서가 아니고 물질적인 편향으로 미군을 사로잡았다. 기지촌 카페에 간혹 양색시가 아닌 여성들이 미군과 이성적인 교제를 원하지만 그들은 오직 성적인 욕정을 갈구할 뿐이었다. 한바탕 소란은 일단 끝났지만, 공동 막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카투사와 GI 간의 반목이 더욱 팽배해진다. 도난사고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운전병들이 주유한 기름을 팔아먹는가 하면 자동차 기계 부속을 낡은 것으로 교체하여 팔아먹기도 하고 PX 물건을 반출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시중에 나도는 물건들이 다 그런 물품들이다. 미군들은 무조건 카투사에게 누명을 씌웠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니까 누명을 쓰곤 하였다. 근거 없이 떠드는 미군에게 항의하고 물증을 추궁하였다. 차량이 아니면 훔친 물건이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배차계가 짜고 벌인다는 소문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곤 하였다. 억울함을 파견 대장에게 호소한다. 미군 영내엔 한국군 장교가 파견 대장이란 명목으로 나와 있었다. 미군 장교들이 파견 대장을 추궁한다. ‘도난 사건에 카투사가 연루되어 있으니 교육을 잘하세요, 하고 고발하면 사실로 받아들이고 카투사를 징계하였다. 카투사의 어려움을 대변해 주러온 파견 대장이 사건을 엄밀히 조사하고 물증을 대라고 강하게 항의하여 누명을 벗겨주기는커녕 징계만 하는 허수아비였다. 미군들은 그를 장교 대우를 안 하고 카투사 사병과 같이 취급하였다. 그런데 온다던 하신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낮에 전투 준비를 하고 밤이 되자 강변의 야전 텐트에서 술을 마시고 노는 병사들의 함성이 밤공길 가르고 있었다. 밤은 깊어 가는데 디호벤 중사와 강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출신과 성장에 관한 이야길 털어놓았다. 자긴 ‘오키나와 주둔 미군과 일본 양색시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닌 그를 고아원에 버렸다. 자라서 아버지를 찾았고 미국적을 얻었는데 도망간 어머니가 나타났어. 그걸 용서할 수 있겠니?’라고 분개하며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가련한 병사였다. 맥주를 마시며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깊은 이야길 한 것이다. 밤은 깊어 가는데 강변엔 병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이렇게 작전지에서 술을 퍼마시고 노는 자유가 보장된 군인이 또 있을까.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들은 세계 최강의 군대이고 그들은 엄격한 법령 아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공사에 엄격한 군대였다. 규율위반은 절대 용서가 안 된다. 그래서 자기 일은 완벽하게 책임지는 것이 GI들의 장점이었다. 그녀는 기지촌에서 돈을 벌었으니 고통받는 양색시를 위한 사업을 하였다. 나이 든 양색시들을 불러 노후 복지사업을 시작했던 것이 오늘날 실버그린 하우스였다. 그가 기지촌에서 퇴물이 된 늙은 양색시를 실버그린 하우스로 불러들이는 데 공헌하였다. 아무튼 훌륭한 자선 사업이었다. 두 사람은 정부의 도움을 받아 노인 복지사업가로 변신했다.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며 사는 삶이었다. 그래서 평생 벌어 놓은 재력을 모두 실버그린 하우스에 투자하였다. 돈 많은 사람은 고가의 회원비를 내고 들어오지만 기지촌의 양색시들은 무임으로 기거하고 있었다. 그 사업 내용이 미8군에 알려져 전국에서 나이 든 양색시들이 모여들었고 오갈 데 없는 불행한 양색시들이 찾아와 노후를 즐기고 있었다. 사실 강자연을 불러들인 것은 하신해였다. 그녀는 강자연의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불러들여 실버그린 하우스 노인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즐거운 인생을 보내게 하였다. 그녀는 춤으로 봉사하며 노인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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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김영민-소설가(카투사) 강자연-양공주 스텝판 보먼-미군 중대장 하신해-양공주 리앙 자보라카-미 여군 장교 스완 데이비스-미군 소령 디호벤-미군 중사 김태호-하우스 보이 민해경-강자연의 친구 이로니카-김영민의 딸 기타 : 김윤호. 제임스 빌. 왕상분. 하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