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작가의 말
프롤로그 유럽 특파원 김인숙 박사의 실종 유혹의 욕정 집시의 무도 사랑과 애증 이로니카의 조국 어부의 요새 샹제리제의 마녀 다뉴브강의 고려인촌 비밀의 화원 고려 원정군 떠도는 부초 사랑의 종말 등장 인물 기동민-외신특파원 김혁-실종 특파원 이로니카-김인숙의 딸 한세라-한국관광공사 유럽 지사장 김인숙-북한의 사학자 반상숙-외신특파원 추인카-고려인 집시촌장 추연화-추인카의 딸 기타-김제남, 지사장, 팀장, 집시. |
김용필의 다른 상품
|
800년 전에 몽골병으로 유럽에 원정 온 고려인 병사들이 다뉴브강변에 남아 그 후손이 소수민족으로 정착하고 있었다는 그녀의 논문이 발표되자 한국의 사학계에서도 흥분을 금치 못했다. ‘다뉴브강변의 고려인 집시’는 한국인이 최초로 유럽에 정착한 민족이라는 점에서 역사학계의 이목을 받은 뿐더러 한국사를 다시 써야 할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고증을 서두르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유럽 특파원들이 역사의 현장을 찾아들었다.
대학의 교정이 바로 도시이며 거리였고 술집과 상가였다. 번화한 도시 가운데 위치한 캠퍼스는 주변이 위락장과 술집이 벽 하나를 두고 둘러싸여 있었다. 창문 밖에는 집시가 노래하고 창문 안에서는 세계적인 지성들이 향학열에 불타고 있었다. 벽 안엔 지성들이 공부하고 벽 밖의 거리엔 관광객들이 술을 마시고 춤추며 유희를 즐기는 이색적인 현상이 너무나 생소했다. 주점에서 주객들이 술을 마시고 떠들든 말든 건물 안 강의실에선 지성의 꽃을 피우는 모습이 이 도시의 풍경이었다. 이로니카는 그녀가 실종된 장소는 다뉴브강변의 고려인 집시촌이라고 전해줬고 김혁은 김 박사의 실종이 고려인촌의 집시들과 연관되었다는 의문을 갖고 그곳에 갔다가 실종을 당했다. 대체 고려인 집시촌은 어떤 곳인가. 단순히 고려의 소수민족이 집단 거주하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김인숙과 김혁의 실종을 보고 반상숙 기자는 그곳에 폭력 집단이 숨어 있다고 단정하였다. 문제는 고려인 집시와 그들 폭력단들 간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대몽골의 티모르제국은 바로 고려의 후손이 세운 나라이다. 그러니까 북원의 동몽골이 몽골 티모르를 치고 대몽골 티모르 대제국을 형성했던 것이다. 국력은 번창하여 대몽골 티모르의 후손 히즈르 왕은 인도를 점령하고 대원에 버금가는 티모르 제국을 만들었다. 바로 그들의 나라가 기황후의 후손과 고려의 신하들이 만든 제국이었다. 그들은 다시 다뉴브강을 따라 헝가리로 진출을 한 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문제는 고려인 집시촌에서 김인숙이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그녀는 조국 북한의 인권의 부당성을 세계인들에게 호소하는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다. 그래서 경계인으로 북한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북한을 탈출하여 유럽을 맴도는 탈북자를 몰래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중앙정부가 알았다. 아무튼 그녀와 연계된 김혁의 실종은 어떤 진척도 없이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왜 어머니가 탈북자를 돕는지, 왜 그들은 조국을 버리고 유랑의 생활을 하는지, 뒤늦게 안 것은 그들이 배불리 먹고 사람답게 살려고 조국을 이탈했다는 것이다. 조국을 이탈한 자들은 갈 곳이 없고 그들을 보호해 줄 국가도 없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자유이고 편안한 정착을 위해 한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으로 가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닌 그들을 고려인촌으로 몰래 불러들인 것이었다. 흥미진진한 사태가 일어날 것 같았다. 추연화 부인은 뭔가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마을을 바라보면서 이상한 연민에 젖었다. 그곳에 동족이 산다는 것이었다. 유럽에서 고려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말만으로 흥분이 되고 정감이 느껴지는 데 800년 역사를 가진 소수민족으로 숨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추연화 부인은 우릴 데리고 마을로 들어갔다. 호수에서 부는 바람이 차갑게 얼굴을 스쳤다. 한참 언덕에 올라서니 통나무집들이 가까이 다가섰다. 그녀는 발을 멈췄다. 거리는 보헤미아 집시촌처럼 혼란스럽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
|
작가의 말
적어도 작가는 보통 사람과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내게 던진 화두였다. 그렇다. 작가는 보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진일보한 생각을 갖는 사람이다. 정작 보편적인 사고에 속일 된 부류라면 작가이길 포기하라. 무슨 말인가? 그것은 상식을 벗어난다는 말인데 지극히 상식적인 미학을 갖추라는 말이다. 보편적인 진리에 맹종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 이상의 진리를 창조한다면 어폐가 있을지 모르나 난 적어도 그런 작가이길 바란다. 그것은 작가의 작품 속에서 묻어나오는 따뜻한 향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