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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아름다운 사람들 012 아름다운 사람들 013 요양원의 봄 014 핑크 수선화 016 붉은 보따리 등뒤에 두고 018 finger enema 022 게뎁을 다시 마시며 024 다시 또 밤 026 원장과 의사와 간호사 028 요양원 030 수선화 예쁘게 핀 봄날 저녁 031 당직 032 섬진강 요양원 034 DNR 036 쑤꾸쟁이, 쑤꾸쟁이 037 웃음 038 아래채 040 아무튼, 꽃길 따라 헛걸음 042 산 아래 카페 044 노란 꽃창포 제2부 finger enema 046 검은 해바라기 048 폴라리스 050 우두커니 052 복호마을 054 간병인 나니타 056 배 058 박수 059 요양병원 집중치료실 060 치매 병동 062 모나리자 064 종로 3가 066 저녁에 잠서 가야 해 067 하늘 위의 집 068 203호 069 송영 제3부 구례 072 소녀상 073 강감찬 074 골무사태 075 석주관에서 076 아버지의 주례 077 골무사태 078 금요 순댓국 080 말러리안 082 엄마 사진 083 시나몬 향처럼 가버린 084 화엄사 홍매 086 섬진강에 가면 088 아지트에 오면 우영이 입술은 빨간 립스틱으로 변한다 090 여기, 여기예요 제4부 쇤베르크 094 쉼보르스카 096 정다운 요양원 097 세사르 바예호 098 쇤베르크 100 버지니아 울프 101 조웅 102 시골 냄새 104 섬진강 105 구례장 106 알바루 드 캄푸스 107 구례 오일장 108 하늘 수박 109 숲거리 110 목소리 112 쪽밭에서 114 섬진강이 흐르는 구례 115 붉은 베틀재 옥이네 건너 116 양쟁이 깽변 118 동백 119 해설 정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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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해바라기를 통해 독자는 그의 직업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아니, 수행하고 있다. 그 점을 고려할 때 이촉 시인의 대부분 시는 ‘돌봄 노동의 고단함’과 ‘애수’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헌신의 의의와 동시에 헌신의 공허함을 동시에 비춘다. 사적인 이득이 아니라 공공적인 선을 수행하는 데 자신의 몸을 쓰는 것, 그것이 헌신이다. 그런 헌신이 사회적으로 예찬될 때조차도 실제 그에 합당한 최소한의 보상, 심지어 정신적인 보상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돌봄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것이 공허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촉의 시들은 보상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헌신의 효과에 대한 비애감이다. 임사 직전의 환자들에 대한 모든 ‘케어’는 결국은 망자의 최후를 그럴듯하게 장식하거나 불가능한 수명 연장의 시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건 헌신을 자기 위로에 쓰는 것은 아닌가?
‘돌봄 노동’이라는 체험의 다양성과 정서적 반응들과 지적 고뇌들의 복합체로서의 ‘시인의 마음과 손 사이에 놓인 의식의 회로’로부터 배출된 게 이촉의 시이며, 이 시들의 정서적 소통의 기본 주제는 ‘아무리 진실하려 해도 공허한 삶의 애수’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은 해바라기의 꽃말이 주는 힘과 긍정의 의미를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돌봄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검은 해바라기를 통해, 삶의 에너지로 우리에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있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통해 돌봄에 지쳐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시인의 말] 담벼락 아래 검은 해바라기 묘목 한 그루 옮겨 심었다. 순간순간 태양을 따라 꽃 피기를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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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finger enema)는 그러니까 이상의 「오감도 1편」의 21세기 실사 버전이다. 「오감도」가 까마귀의 눈길로 불길하게 조명하고 있는 이 질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로 한국의 독자들은 무려 1세기 동안이나 그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질주에 무언가 의미가 잠복되어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즉 「오감도」에 대한 기대는 의지와 지향 그 자체로서의 운동, 즉 ‘언어를 내장한 운동’으로서 그 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오감도」에 대한 기대는 이촉의 시 「finger enema」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독자는 이 생생한 묘사 속에 표출된 급박하고도 우왕좌왕하는 움직임이 그 자체로서 현실에 대한 모종의 증언이자 현실 그 자체를 이끌고 가는 운동이 아닌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 정과리 (문학평론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