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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제1부 전통 극예술의 정립과 계승 판소리를 공연예술로 끌어올린 신재효 판소리 명창이자 근대 창극의 대부 이동백 예술경영의 귀재이자 전통연극 지킴이 박승필 판소리가 도달한 하나의 극점 김소희 여성국극의 알파요 오메가 임춘앵 여성국극의 영원한 스타 김진진 제2부 외국연극의 모방과 수용 한국 신파극의 창시자 임성구 척박한 개화기 대중문예의 선구자 이기세 근대문화의 방향타를 잡아준 항해사 윤백남 신극사상 최장수 배우 변기종 한국 근대극을 위한 도전과 좌절의 여정 현철 근대 연극운동의 불사조 박승희 박복했던 여명기의 스타 이월화 신파극에서 TV 드라마까지, 공연예술의 대모 복혜숙 신무용의 개척자 조택원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 사라진 여배우 석금성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소프라노 윤심덕 연극에 죽고 연극에 살았던 의리의 연극인 지두한 제3부 대중 공연예술의 개화 (1) 대중가요의 선구적 작사가 왕평 동양극장을 세운 전설적인 신무용가 배구자 영화계의 위대한 개척자 나운규 최초의 전문 연출가 홍해성 북한 문화계의 지도자가 된 극작가 송영 눈물의 여왕 전옥 변사에서 만능 연극인으로 변신한 김춘광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柳敏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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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가 국민적인 예술로서 19세기 문화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데는 신재효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예술사를 되돌아보더라도 상류층이 외면한 예술이 번창한 예는 찾기 어렵다. 소위 귀족층을 중심으로 하여 예술을 애호하고 후원을 받을 때 예술은 크게 발전했다. 신재효는 이미 그러한 예술 발전의 속성을 간파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신재효가 서민문화였던 판소리를 양반층으로까지 확산시키기 위해 작품 개찬에서부터 원납전 제공에 이르기까지 소위 상류층을 향해 다가가려 노력한 것은 단순히 개인적 신분 상승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들을 판소리 관객, 더 나아가 후원층으로 삼기 위한 외연 확대 술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비록 서양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예술 발전 방안에 대해서 본능적 통찰력을 지녔던 것이 아닌가 싶다.
--- p.31 그는 단순히 희곡만 쓴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음악과 무용을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연극의 통속화를 촉진시킨 부정적 요인도 되었지만 연극을 재미있고 아름다운 예술로 만들어보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선구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뮤지컬이 전 세계를 풍미하고 우리나라 무대에서도 기세를 올리고 있는 점에서 그가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던 것 같다. 이러한 예견력(豫見力)과 조국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극단운동을 벌이면서 가산을 탕진하고 자신까지 던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박승희는 연극예술진흥을 통해서 우리나라 근대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대표적 선구자였다. --- p.225 홍해성(洪海星, 1893~1957)이 크게 부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연극계에서조차 잊혀진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가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그는 한국 연극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전문 연출가였다. 두 번째로 소위 연출법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도입해서 연극무대에 활용한 사람이었다. 세 번째로 그는 1930년대 이후 본격 근대극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절대적 기여를 한 인물이었다. 네 번째, 아직 극예술이라고 이름 붙이기조차 어려울 만큼 저급한 신파를 바로 대중연극이 될 수 있도록 향상시킨 장본인이었다. 본격 근대극뿐만 아니라 신파극이 무대예술로서 틀을 갖추게끔 하는 데 있어서 홍해성의 힘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이다. --- p.395~3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