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 학자.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 본관은 장수(長水). 1888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임오 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정국의 경색과 수구파 정권의 부패를 목격하고 구례로 귀향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이때 3천 여 권의 서적을 열람하며 시문과 역사·경세를 연구하는 한편, 지역의 학교 설립을 주도하는 등 계몽활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창강 김택영과 국권운동을 전개하고자 중국으로 망명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아편을 먹어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