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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내려앉았어. 그러면 나는
잠에 빠져 있는 내 인간의 손을 핥지. 이봐, 일어나. 이제 나갈 시간이야! --- p.6 내 인간은 엄청 크지만 팔과 다리는 축 늘어져 있어. 내 눈에는 꼭 아이 같아. 난 인간이랑 노는 게 참 재밌어. --- p.11 인간이 커다란 손으로 내 등을 쓸어내려. “달, 내 친구, 괜찮아. 앞을 봐. 뒤돌아보지 말고.” 난 그래도 고개를 돌려 뒤를 봐. 거기 내 모습이 보여. 깊은 눈더미 사이를 뛰어다니는 하얀 개…… --- p.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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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핥아줄게
밤 산책 끝에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소중해질 거야 『밤을 산책하는 개』는 한밤중의 산책을 이야기하는 그림책답게 모든 페이지가 어두운 먹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 위에 흰색 분필, 혹은 연필로 그리고 쓴 듯한 선과 차분히 가라앉은 색이 돋보인다. 불규칙하게 구획된 칸과 그 안에 배치된 다양한 사물들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온갖 빛과 소리, 움직임으로 가득한 도시의 거리를 풍부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압축적이고 시적인 언어와 그래픽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 밤 산책 그 자체를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상징적인 그림책 안에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할 만한 여러 사연들과 독자가 채워 넣어야 할 여백이 담겨 있다. 달은 어째서 밤이 되어야만 길을 나서는가. 이 검은 개는 예전에 살던 나무 집이 불타고 축축한 재로 뒤덮여 버려진 적이 있다. 아마도 외롭고 춥고 쓸쓸했을 과거. 그래서 지금 옆에서 걷고 있는 반려인은 달이 울부짖을 때마다 “괜찮아. 앞을 봐, 뒤돌아보지 말고.” 하며 달래준다. 검은 개에게는 오래전 눈더미 사이를 뛰어다니던 하얀 개였던 시절이 있고, 사는 동안 겪은 많은 일들은 여전히 내면에 머물러 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른 곳을 바라보며 견뎌낼 뿐. 달이 밤에 만난 모든 이들의 상처를 핥아줄 수 있는 것은 그런 경험들 때문일 것이다. 달과 함께 산책에 나선 반려인은 이따금 달이 지저분한 뼈에 관심을 보이거나 갑자기 흥분할 때 끼어들어 다독일 때를 빼고는 내내 가만히 곁에 있어준다. 그는 집을 잃고 재에 파묻힌 강아지를 데려다 정성껏 키우고 밤만 되면 밖으로 나가자는 요청도 잘 들어주는 착한 반려인이다. 아마 그 역시 낮보다는 밤이 편하고 환한 낮보다는 밤 산책이 어울리는 사람일 것이다. 외롭거나 혹은 부끄러움이 많거나. 그리고 산책의 끝에 이르면, 프랑스말로 노래를 부르는 한 여자가 등장해 자신을 ‘어둠이 내리면 노래하는 나이팅게일’이라고 소개한다. 밤이면 더 용감해지는 여자, 솔란쟈는 마침내 달을 묶고 있는 줄의 반대쪽 끝을 바라본다. 밤은 새로운 만남과 따스한 위로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사랑이 싹트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밤을 산책하는 개』는 개인주의가 일상화된 시대에 외롭고 상처 입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친구와 가족이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어두운 밤이면 환한 낮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몰려나오지만 그들은 결코 서로에게 달라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밤에 산책을 나간들 뭐 어떠랴. 좀 이상하면 뭐 어때. 밤 산책에 나서면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텐데. 보통과 다른 존재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귀 기울여주기, 이것이야말로 밤을 산책하는 이들이 터득한 지혜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