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조화순 누님의 책에 부쳐·이현주
조화순 목사님을 생각하며·김근태 1장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언제나 청춘인 나무처럼 살고 싶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지 마라 태기산의 깊은 밤 작은 꽃 한 송이를 위한 기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생명 두더지, 땅강아지들과 함께 돼지감자 함석헌 선생의 화분에 담긴 뜻 살아 있는 것들은 따뜻하다 살림, 사람을 살리는 일 가슴이 시키는 것을 하라 그러나 언제나 사랑을 잊지 말자 늙지 않고 잘 익어간다는 것 예순여덟에 떠난 배낭여행 생명의 춤 2장 살았던 날들을 위한 기도 나는 보았다 (문익환 시) 삶의 자리를 어디에 둘 것인가 운명을 바꾼 만남 무명 작업복을 입고 흘린 눈물 공순이가 어떻게 서울대 출신으로 변했는가 여자이기 때문이라니 잡혀온 주제에 어찌 그리 당당합니까 유관순이 있던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는 그때처럼 폭력을 저주해본 적이 없다 예수가 낮은 곳으로 오신 섭리를 깨달으며 3장 이곳에 살기 위하여 이 땅의 두려운 시악씨일진저 (고은 시) 영원히 함께하고 싶지만 한 사람의 변화가 갖는 힘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겨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 지옥이 천국이 되는 순간 디트리히 본회퍼와 나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을 믿는다 학벌보다 중요한 것 목사님 선생님이 된 까닭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가족이다 |
|
■ 일흔한 살 행복한 처녀의 자연일기
훌쩍 떠나온 지 10여 년, 그는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다. 도시에서 항상 누구와 함께 있다가 자신이 지은 흙집에서 홀로 지내기 시작한 처음에는 자연이 무서웠다고 했다. 바람소리가 무섭고 십여 분은 족히 걸어야 마을이 있는데 산짐승이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는 한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모든 소리가, 이 모든 생명이 다 하나님이 만드신 거고 그 역시도 창조물에 포함된다는 것을. 그런 마음이 들자 그는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잊어버린 자연의 존재가 들어왔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작고 낯선 수많은 생명들… 그 속에서 자연이 주는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이 그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돼지감자’라는 풀이 있다. 요즘은 당뇨 치료제로 쓰여 너도나도 키우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밭을 엉망으로 만드는 잡초로 여겨져 모두 뽑아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꽃이 너무 예뻐 오히려 돼지감자 주변을 솎아 주었다. 그러다 돼지감자를 잊고 다시 밭을 다시 매기 시작한 한 달 쯤 뒤 돼지감자를 살펴봤더니 돼지감자의 생명력이 너무 강해 주변의 잡초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천사만 있는 게 아니라 악한 세력도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선한 사람을 키우고 한데 모을 생각보다는 악을 제거하는 데만 신경을 써왔구나. 사회에 선한 세력이 많으면 악한 세력이 힘을 못 쓰겠구나. 앞으로의 운동은 사회의 구조적인 악을 제거하는 운동보다 선한 세력이 연대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되겠구나.” - 72쪽 태기산이 주는 위로로 그는 현재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삶도 성찰한다.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싸움의 현장에서 바쁘고 여유 없었던 자신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들이 상처를 입지 않았는지 돌이켜 반성하고 지금도 그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춤을 추면서 살겠다.” 그가 태기산 자락에 와서 농사와 생명 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춤’이다. 미국 방문 때 성찬식을 춤으로 하는 것을 보면서 춤이 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홍신자 씨를 만나 몇 번의 춤 세라피도 받았다. 춤을 통해서 진정한 자기를 만나고 문제점을 알게 되고 또 다른 정신세계를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나이 일흔 하나. 청춘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라고 그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빌어 말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이라고 하나 그는 다시 시작이라고 말한다. 죽음도 시작이라고 말하며 언제나 청춘인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조화순! 그의 제2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노동자와 함께 산 불꽃의 사람 조화순이 가난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나서였다. 여주인공 채영신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농촌계몽운동을 꿈꾸었다. 그 꿈을 좇아 감리교의 목사가 되었고 인천 덕적도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인천에서 감리교산업선교회를 시작한 조지 오글 목사의 간청으로 산업선교에 발을 디뎠다. 처음 6개월 동일방직에 노동자로 취직하여 먼저 노동자의 삶을 체득한 후 그는 동일방직을 근거로 하여 작은 모임을 꾸려나갔다.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던 동일방직에서 그는 한국 최초로 노조여성지부장을 탄생시켰고 동일방직 똥물투척사건으로 첫 옥고를 치렀다. “사실 나도 노동조합이나 근로기준법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나 노동문제 전문가들을 초빙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하나둘 의식이 변화되고 발전하면서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서 항의하던 그들이 여럿이 힘을 뭉치면 힘이 더 커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다 직접 노동조합에 참여해 자신들의 손으로 노동조합을 이끌어 나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최초의 여성지부장과 여성으로만 구성된 노동조합 집행부였다. 내가 산업선교회에 몸담은 지 6년 만인 1972년의 일이었다.” -140쪽 마음이나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렇게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 노동자들은 진짜와 가짜를 너무나 잘 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직접 몸으로 겪고 몸으로 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진실한 사람이라고 조화순은 말한다. 조화순 목사의 별명은 감동이다. 남에게 감동을 잘 주고 또 그 자신이 주변의 사건에 쉽게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잘 흘릴 뿐 아니라 분노하는 힘 또한 대단하기 때문이다. 함께 슬퍼하고 더불어 기뻐하며 분노의 힘이 어우러지는 감동, 이것이 조화순 목사의 삶을 관통하였다. 그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 속에 결코 들어갈 수도 없고 그를 대신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의 곁에 서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