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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판 재출간에 부쳐
서문 한국에서의 유년 시절 한국과 일본에서의 청춘기 천직과 자기 발견 유학, 그리고 첫 성공 납치 석방과 새출발 내가 만난 윤이상과 루이제 린저 윤이상 연보 윤이상 작품목록 |
Luise Rin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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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용으로 태어나다
윤이상에게는 별명처럼 상처 입은 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윤이상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날 때 용꿈을 꾸었는데, 용은 그가 태어난 지리산 상공을 휘돌고 있었으나 하늘까지 높이 차오르지 못했다. 상처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 꿈을 윤이상에게 있어 심각하고 중대한 운명을 예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윤이상 자신은 그 꿈을 자신의 첼로 협주곡에 비유해 설명한다. 윤이상 자신이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던 첼로가 지향하기는 하나 도달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절대의 높이 즉 신적인 음역인 트럼펫의 A음에 도달하지 못하는 운명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 절대의 순수는 윤이상이 추구하던 음악과 정신이었고, 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상처였으며, 그의 생애는 그 절대적인 트럼펫의 A음을 향한 긴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음악 수업과 음악가로서의 삶 경남 통영이 고향인 윤이상에게 있어 통영의 풍경과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그의 음악의 자양분이었다. 바닷가에서 들은 어부들의 뱃노래와 봄이 되면 들려오는 개구리의 합창, 유랑극단에서 들은 몽골의 현악기 호금과 거문고 악기 등의 소리들은 그의 내면 깊이 간직되어 있다가 후에 음악을 만드는 데 여러 가지 소재로 쓰였다. 일본에서 음악 교육을 받은 윤이상은 고향으로 돌아와 음악 교사를 지내다가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음악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파리음악원에서 작곡 기법을 배우고 1년 뒤 베를린으로 가 블라허와 루퍼 밑에서 공부한 뒤 1959년 다름슈타트 음악제에 12음 기법으로 쓴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초연해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뒤 도교와 불교, 조선의 궁중음악 등 동양적인 소재를 현대음악적 기법으로 표현한 <바라> <낙양> <가사>와 <가락> 등의 많은 작품들을 써냄으로써 유럽 음악계에 가장 논란이 되는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동베를린 사건 1967년 6월 17일 윤이상은 박 대통령의 개인 비서라며 갑자기 찾아온 한 남자에 의해 여권도 없이 돌연 본국으로 소환된다. 그는 곧장 KCIA(한국중앙정보부)에 끌려갔고 물고문과 구타 등 여러 가지 고문을 당하며 간첩 혐의에 대한 자백을 강요받았다. 그에게 씌워진 간첩 혐의는 베를린에서 반정부 정치활동을 하고 동베를린을 방문하며 북한과 접촉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윤이상은 북한을 한 번 방문한 적도 있었다. 윤이상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 민주주의 회복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토론하는 모임을 가졌고 북한으로 간 어릴 적 친구의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동베를린을 방문했었다. 윤이상은 그해 12월 무기형 판결을 받았다. 그 뒤 독일과 국내에서 대내외적으로 압력과 항의를 행사한 결과 2심에서 무기형은 15년 징역으로 바뀌었고 1968년 12월 대통령 특별 사면의 형태로 석방되었다. 이러한 쓰라린 체험은 이후 윤이상의 작품세계에서도 반영되었으며, 동베를린 사건과 윤이상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