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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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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문학의 몇 가지 기능에 대해
<천국 편> 읽기
『공산당 선언』의 문체에 대해
발루아의 안개
와일드:아포리즘과 역설
학사 예술가의 초상
라만차와 베발탑 사이에서
보르헤스와 영향에 대한 나의 고민
캄포레시이 대해:육체, 피, 삶
상징에 대해
문체에 대해
빗속의 신호등
형식에서 지저분한 것들
상호 텍스트적 아이러니와 읽기의 층위들
『시학』과 우리
반미3세대에 걸친 미국의 신화
거짓의 힘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

저자 소개 1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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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한마디
에코가 보기에 문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리의 집단적 유산인 언어를 생생하게 살아 있게”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문학은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창조”(13쪽)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아울러 “‘운명’과 죽음에 대한 …가르침”(29쪽) 역시 문학의 주요 기능들 중 하나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Umberto Eco,움베르트 에코

철학자이자 기호학자 및 소설가. 1975년부터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 교수로 건축학, 기호학, 미학 등을 강의했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총 42개에 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명예 훈장을 받았다. 유럽 문명의 역사를 다룬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엔사이클로미디어Encyclomedia를 기획, 제작했다. 에코의 이름을 알린 소설 『장미의 이름』은 40여 개국에 번역돼 3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 소설로 프랑스 메디치 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출발점은 철학이었다. 토리노 대학에
철학자이자 기호학자 및 소설가. 1975년부터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 교수로 건축학, 기호학, 미학 등을 강의했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총 42개에 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명예 훈장을 받았다. 유럽 문명의 역사를 다룬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엔사이클로미디어Encyclomedia를 기획, 제작했다.

에코의 이름을 알린 소설 『장미의 이름』은 40여 개국에 번역돼 3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 소설로 프랑스 메디치 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출발점은 철학이었다. 토리노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 교수가 되었고, 『일반 기호학 이론』, 『구조의 부재』 등 기호학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을 펴냈다. 소설가이자 학자로서 그는 스스로를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진지한 철학자’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분야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펼쳤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 이론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 『대중의 슈퍼맨(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논문 잘 쓰는 방법』 등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다른 상품

역자 : 김운찬
1957년에 출생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 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지도하에 화두(話頭)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이태리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에코의 <백과사전> 개념 연구’ 등 기호학과 이탈리아 문학에 대한 다수의 논문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에코의『미네르바 성냥갑』, 『논문 잘 쓰는 방법』, 『소설 속의 독자』, 『대중의 슈퍼맨』,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 『낯설게 하기의 즐거움』, 칼비노의 『마르코발도』, 『코스미코스케』, 파베세의 『피곤한 노동』, 과레스키의 『신부님 우리 신부님』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3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70쪽 | 539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904221

책 속으로

우리는 이 등장인물들이 살아가고,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우주의 공간을 찾아보아야 할 겁니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 및 다른 사람의 삶의 모델로 선택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다고, 가르강튀아 같은 식욕, 돈키호테 같은 행동, 오셀로 같은 질투, 햄릿 같은 의혹이 있다고, 또는 치유할 수 없는 돈 후안 같은 인물, 또는 페르페투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 무엇을 말하려는지 분명해지지요. 문학에서 이것은 단지 등장인물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물건들에서도 일어납니다. 미켈란젤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여자들, 담벼락 위에 꽂힌 날카로운 병 조각들, 눈부시게 작렬하는 태양, 사악한 취향의 좋은 것들, 한 줌의 먼지에서 나오는 두려움, 울타리, 맑고 신선하고 달콤한 강물, 잔혹한 식사. 이런 것들은 무엇 때문에 집요한 은유들이 되어 매 순간마다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아니면 우리가 아닌 것과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반복해서 말해 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 p.22~23

바벨의 도서관의 진짜 영웅은 도서관 자체가 아니라, 그곳의 독자, 새로운 돈키호테입니다. 그러니까 유동적이고, 모험적이고, 지칠 줄 모르고 창조적이며, 연금술처럼 조합적이고, 풍차를 지배하여 무한하게 돌아가도록 만들 줄 아는 독자이지요.
그런 독자에게 보르헤스는 바로 조이스에게 헌정한 다른 시에서 일종의 기도 또는 믿음의 선언을 암시해 주었습니다.
보편적 역사는 새벽과 밤 사이에
이루어진다. 밤중에 나는 내 발치에서
유대인의 방랑, 사라진 카르타고,
지옥과 영광을 본다.
주여, 이 여행의 끝까지 올라가도록
나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소서. --- p.162~163

프톨레마이오스의 이야기를 다시 고찰해 봅시다. 오늘날 우리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가설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지성은 이미 코페르니쿠스적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지각은 아직도 프톨레마이오스적입니다. 우리는 태양이 동쪽으로 떠올라서 하루의 궤도를 따라 여행하는 것을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태양이 돌고 우리는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요. <해가 뜬다, 하늘 높이 떠 있다. 진다, 저문다…….> 천문학 교수도 그렇게 프톨레마이오스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지각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거짓이라고 인정하는 많은 이야기들에서 출발하였다고 인정한다면, 우리가 지금 진리로 간주하는 이야기들도 끊임없이 다시 문제 삼을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현명함이라는 기준은 우리 지식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에 토대를 두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양 있는 인간의 첫 번째 의무는 매일 백과사전을 다시 쓰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입니다. --- p.419~420

토마스 아퀴나스 미학의 문제에 대한 학위 논문을 심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두 번째 지도 교수의 반박(아우구스토 구초 교수. 하지만 그분은 나중에 나의 작업을 그대로 출판해 주셨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분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실질적으로 자네는 자네 연구의 여러 단계들을, 마치 하나의 탐문 작업인 것처럼, 나중에 버린 가설들과 그릇된 길까지 지적하면서 무대에 올려놓았군. 반면에 성숙한 학자는 그런 경험들을 겪지만 나중에는 단지 결론만을 (최종 판본에서) 대중에게 돌려준다네.> 나는 내 논문이 바로 그분이 말한 대로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을 한계로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로 그 순간, 나는 모든 연구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후의 모든 내 평론 작업들을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 p.428~429

『푸코의 진자』를 위해서는 이야기의 일부 주요 사건들이 벌어지는 <기술 공예 박물관>에서 폐관 시간까지 며칠 저녁을 보냈다. 또한 성전 기사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들 고위직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프랑스의 포레 도리앙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주인공 카소봉이 한밤중에 <박물관>에서 플라스 드 보스제까지, 그리고 에펠탑에서 파리를 가로질러 가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나는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휴대용 녹음기를 들고 거리 이름들과 교차로들이 틀리지 않도록,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면서 며칠 밤을 보내기도 했다. 『전날의 섬』을 위해서는 물론 남태평양에, 내가 이야기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리적 장소에 가보았다. 하루의 다양한 시간에 바다와 하늘, 물고기들, 산호들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나는 그 당시의 배의 모형과 그림들에 대해 2~3년 동안 작업하였는데, 선실이나 다락방이 얼마나 컸는지, 어떻게 한 선실에서 다른 선실로 갈 수 있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 p.440~441

어떤 작가들은 아침 8시에 일어나 8시 반에서 12시까지 타자기 앞에 앉아 있고, 그런 다음 중단하고 저녁까지 산책을 간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도 소설을 쓰는 데 있어 글을 쓰는 작업은 나중에 한다. 먼저 책들을 읽고, 카드들을 작성하고, 등장인물들의 초상화와 장소의 지도들, 시간적 연쇄의 도식들을 그린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펜이나 컴퓨터로 하는데, 그것은 내가 있는 장소와 시간, 소설적 아이디어의 유형이나 기록하고 싶은 자료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기차 안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기차표의 뒷면에 쓰고, 때로는 공책이나 독서 카드에 쓰거나, 볼펜으로 쓰거나, 녹음기로 하거나, 또는 만약에 필요하다면 과일 주스로 쓰기도 한다.
그러다가 내동댕이치고, 찢고, 구기고, 어느 곳에 두고 잊어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공책들, 다양한 색깔들의 메모장들, 얇은 종이들, 심지어는 서류 용지들로 가득 찬 상자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무질서하고 다양한 보조물들이 나에게 기억을 도와준다. 내 기억으로 어떤 메모는 런던의 어떤 호텔 이름이 위에 인쇄된 종이에다 끼적거려 놓은 것이었고, 또 어떤 장의 첫 페이지는 내 연구실에서 옅은 푸른색 줄이 쳐진 카드에다 <몽블랑> 만년필로 기록하였고, 반면에 그다음 장은 처음에 시골 휴양지에서 재생 용지의 뒷면에다 썼던 것이다. --- p.457~458

나는 내 소설 중의 하나가 끝나 간다는 것을 깨달을 때, 말하자면 자신의 내적 논리에 따라 이제는 그것이(또는 그가, 또는 그녀가) 끝나야 하고 또한 나는 그만두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언제나 거부감을 느꼈다. 그것은 만약 내가 더 계속한다면 더 나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이다. 아름다운 것, 진짜 즐거움은, 바로 여러분이 조금씩 세워가는 세계, 그리고 여러분의 것이 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 6년, 7년, 8년 동안(가능하다면 무한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소설이 끝날 때 슬픔은 시작된다.
이것이 곧바로 또 다른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이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서두를 이유는 없다. --- p.464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질문하곤 한다. 만약 내일 우주의 파국이 온 세상을 파괴하고 따라서 내일 누구도 오늘 내가 쓰는 것을 읽지 못하게 될지라도, 나는 오늘 글을 쓸 것인가?
첫 순간의 대답은 <아니요>이다. 만약 누구도 나의 글을 읽지 못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쓸 것인가? 두 번째 순간의 대답은 <예>이다. 왜냐하면 은하들의 파국 속에서도 어떤 별이 살아남아서 미래에 누군가 나의 기호들을 해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묵시록의 전야에도 글쓰기는 여전히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이다.
글이란 오로지 <독자>를 위해 쓰는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쓴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는 놀라울 정도의 무신론자이다. 엄격하게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그렇다.
불행하고도 절망적인 사람, 미래의 <독자>에게 말을 건넬 줄 모르는 사람이다. ---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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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문학은 즐거움을 주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이다
이 글들의 일부는 무엇보다도 이론가로서의 나의 활동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의미에서 자서전적이거나 자기비판적이다. 일반적으로 나는 두 가지 역할의 혼합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학이란 무엇인가 설명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도 필요하다. ……더군다나 <문학론의 선언>이라는 장르는 아주 광범위하게 공인되어 있다. (서문, p.6)


성공한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 세계에 대하여 밝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스티븐 킹의 경우처럼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드러내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폴 오스터의 경우처럼 작가로서 성공하기까지의 고난에 찬 여정을 보여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글쓰기의 매력과 냉정한 현실을 이중적으로 드러내는 자전적인 소설의 모습을 띨 수도 있다. 전자의 관심이 실용적인 차원에 기울어 있다면 후자는 노스탤지어로서의 개인적 체험에 거의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하지만 에코의 경우는 좀 다르다. 에코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문학의 <기능>, 그리고 소설가와 이론가, 독자, 텍스트로 이루어진 문학 세계에 대한 분석, 즉 문학이라는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분석이다. 따라서 서문에서부터 <문학론의 선언>을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문학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이론이나 다른 작가들의 세계를 참조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문학이란 무엇인지 말하기 위해 자전적인 요소들을 참조하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에는 ‘문학의 몇 가지 기능에 대해’에서부터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까지 총 18편의 글이 실려 있다. 문학의 기능을 논하고 있는 첫 번째 글에서 에코는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말하면서 그 첫 번째 근거로 문학 그 자체의 즐거움을 든다. 하지만 곧바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럴 경우, 문학은 조깅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우선 문학은 우리의 집단적 유산인 언어를 생생하게 한다. 단테가 없는 통일된 이탈리아, 호메로스 없는 그리스 문명, 루터의 ‘성서’ 번역이 없는 독일의 정체성, 푸슈킨이 없는 러시아어, 건국 신화의 서서사들이 없는 인도 문명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학은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말한다. 그래서 문학은 우리에게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
이어지는 글을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한 가지는 단테, 마르크스, 네르발, 와일드, 조이스, 보르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과 영향에 대한 분석이고, 다른 하나는 문체, 상징, 형식, 아이러니 등 문학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한 분석이다. 작가의 작품론은 하나의 주제를 통해 한 작가의 근본적인 특징을 짚어 내고, 개념에 대한 분석은 그 개념의 근원적인 의미를 다시 캐물으면서 그 개념의 핵심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예를 들어 <상징에 대해>라는 글에서는 각 시대가 상징을 이해하는 여러 방식을 보여 주면서 우리가 상징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

이 책의 마지막 글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에서, 에코는 비로소 자신의 문학 세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다.
먼저 에코는 어린 시절의 글쓰기에 대한 추억, 습작 시절의 실패담, 그리고 철학적 성찰과 평론 활동에만 전념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후 30년 동안 이 결심을 지키기까지, 소설가가 아니라 이론가로 산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그는 이러한 결심 때문에 전혀 <괴로워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에코는 창조적 글쓰기에 절망하여 <어쩔 수 없이> 학문적 글쓰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플라톤적인 경멸적인 시선으로 시인들을 거짓말들의 포로, 모방의 모방자들로 보았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에코는 마흔여섯 살에서 마흔 여덟 살 사이에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쓴다. 그리고 이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에 이르기까지 에코에게는 소설을 쓰게 만든 동력이 되었던 <씨앗 관념>이라는 것이 있었다. 에코는 이 글에서 그러한 씨앗 관념들을 펼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를, 즉 각 작품의 서술을 위한 현장답사와 시대에 맞는 문체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자신의 글쓰기 습관, 컴퓨터가 자신의 글쓰기에 미친 영향, 그리고 어느 순간에 어떤 필기구로 어떤 종이에 썼는지에 이르기까지, 실제 작업 순서와 소설의 전반적인 집필 과정을 세세하게 독자와 문학 지망생들이 궁금해할 만한 모든 것에 대해서 압축적으로 일러 준다.
에코는 글쓰기의 진짜 즐거움은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는 데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소설이 끝날 때 슬픔이 시작되고 바로 그러한 슬픔이 또 다른 소설을 쓰게 만드는 욕망을 일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은 오로지 어떤 <독자>를 위해 쓰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쓰는 글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독한 무신론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반미 3세대에 걸친 미국의 신화’와 ‘거짓의 힘’

그러나 두 가지 분류에 해당되지 않은 두 개의 글이 더 많은 주목을 끈다. 하나는 ‘반미 3세대에 걸친 미국의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의 힘’이다. 먼저, ‘반미 3세대에 걸친 미국의 신화’에서 에코는 193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3세대에 걸친 이탈리아의 젊은이들(무솔리니를 포함하여)이 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고,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했으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설명하면서, 매혹과 반발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특히 에코는 당대의 지식인 청년들이 미국에 대해 쓴 많은 글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특히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죽스물네 살의 나이에 요절한 자이메 핀토르라는 청년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은 우리의 미국에 대한 감정과 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만든다(또한 에코는 서로 다른 입장들의 파노라마를 보여 주면서 격론이 오고가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글의 환기력을 강화시킨다).

이편 또는 저편에 몰두한 세력들은 우리 경험의 과정을 수정할 수도 있고, 우리를 쓸모없는 조각들처럼 구석으로 내동댕이치거나, 어느 기슭으로 안전하게 인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자신에게 제시되는 것을 쉽게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웃음을 잃지 마라Keep smiling.> 이 평화의 <슬로건>이 그 모든 건설적 음악들과 함께 미국에서 왔을 때, 유럽은 텅 빈 진열장이었고, 전체주의 국가들에 부과된 풍습들의 엄격함은 단지 파시스트 반동의 절망적이고 쓰라린 얼굴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 낙관론의 극단적인 단순함은, 인간애의 표시로 상복(喪服)을 입어야 한다고 확신했던 사람들이나, 죽은 자들의 자부심을 산 자들의 건강함보다 높게 평가했던 사람들을 격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자기 자식들에 대한 미국의 위대한 자부심은, 그들이 역사의 가장 험준한 길을 걸었으며, 또한 거의 멈춤 없는 발전의 위험과 함정들을 피했다는 의식일 것이다. 풍요로움과 관료적 타락, 갱들과 위기, 그 모든 것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유일한 역사이다. ……미국 문명을 가리키는 어리석은 말이 하나 있으니 바로 물질문명이다. 생산자들의 문명.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욕망들에 자신의 힘을 낭비하지도 않았고, <정신적 가치들>의 쉬운 함정에도 빠지지 않았던 국민의 자부심이다. 그들은 기술을 고유의 삶으로 삼았고, 집단 노동의 일상적 실천에서 새로운 애정들이 탄생함을 느꼈으며, 정복한 지평선에서 새로운 전설들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낭만적 비평가들이 무엇을 생각하든 상관없이, 그토록 심원한 혁명 경험은 침묵 속에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1차 세계 대전 후 유럽에서는 퇴폐적 문화의 테마들을 다시 취하거나, 초현실주의처럼 필연적으로 미래가 없는 공식들을 채택하는 동안, 미국은 새로운 소설과 새로운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였고, 영화를 발명하였다. (반미 3세대에 걸친 미국의 신화, pp. 360~361)
또한 ‘거짓의 힘’은 세계의 역사를 바꾼 엄청난 거짓말들을 열거하면서 이러한 거짓말들 또한 다른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진리로 간주하는 것들 또한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교양 있는 사람들의 첫 번째 의무는 매일 백과사전을 다시 쓰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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