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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 이송죽
김순호를 기억하다 김순호 선교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 정안덕 또 하나의 큰 바위 얼굴 ‘김순호 선교사’ - 강무순 내가 들은 김순호 선교사 이야기 - 임희국 평생 닮고 싶은 롤모델 - 박보경 선교의 불꽃으로 타오르다 - 윤효심 1부 기독교 터전에서 성장하다 Ⅰ. 김순호가 성장한 기독교 중심지 황해도 재령 1. 황해도의 지리적·문화적 특성 2. 재령 선교지부 결정과 선교사 파견 3. 재령 선교지부의 선교 활동-성경학교와 사경회 4. 재령 명신학교의 설립과 발전 Ⅱ. 김순호의 신앙과 애국심이 깊어진 정신여학교 1. 정신여학교 설립과 1910년 한일병합 이전의 면모 2. 한일병합 이후 1910년대 정신여학교의 교육과정 3. 김순호 학창 시절(1916~1919) 정신여학교 교사진 4.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동기와 선후배 5. 1919년 3·1운동과 김순호 Ⅲ. 3·1운동 이후 김순호의 만세시위와 교사 활동 1. 1919년 3월 세브란스병원간호부양성소 입학 2. 1919년 12월 19일 훈정동 종묘 만세시위 참여 3. 1921년 3월 정신여학교 졸업(제13회) 4. 정신여학교 졸업 이후 교사 활동 1) 황해도 신천 경신학교 교원 2) 함경도 성진 보신여학교 교원 Ⅳ. 김순호의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수학과 전도사 활동 1. 김순호의 출신 신학교 1)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와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졸업설 2)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졸업 여부 2.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에서의 신학 교육 1)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의 설립 2) 프랫 교장 시기(1899~1937)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교육과정 3)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의 김순호와 조선인 유학생 3. 황해도 재령 동부교회 전도사 활동 2부 선교에서 순교까지 Ⅰ. 첫 해외선교지 산둥의 첫 여성 선교사 1. 중국 산둥 선교와 첫 번째 여성 선교사 1) 한국 교회의 첫 해외선교지 산둥 2) 첫 번째 해외 파송 여성 선교사 김순호 3) 김순호와 산둥선교회 4) 산둥 선교와 도리반 2. 안식년과 선교 보고 1) 총회 선교 보고와 '여전도회주일' 제정 2) 산둥 선교 보고 활동 Ⅱ. 중국 선교의 여정 - 칭다오에서 만저우까지 1. 중국 무단장교회 선교와 일본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연수 1) 무단장교회 선교 지원 2) 요코하마 공립여자신학교 연수와 순교 여교역자 기념사업 2. 중국 칭다오 선교 1) 개척 선교지 칭다오 2) 시국 문제 발생과 본국 소환 3. 중국 만저우 선교 1) 공식적 선교 활동 2) 개인적 선교 활동 Ⅲ. 조국에서의 헌신 - 교육과 사역 1. 평양신학교 - 영원한 스승 김순호 1) 평양신학교의 변천 2) 제자들이 기억하는 스승 김순호 3) 김순호의 뜻을 이은 여성지도자들 2. 마지막 사역, 신의주 1) 왜 신의주인가? 2) 마지막 희생 부 록 1919년 훈정동 종묘 만세시위 판결문 최봉춘의 김순호 전도사 회고시 김순호가 박용길에게 보낸 서신들 김순호 연보 사진 출처 참고문헌 필자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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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신보통학교에서 공부한 김순호는 고향인 재령을 떠나 서울 정신여학교에서 유학하였다. 1919년 3월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1919년 12월 세브란스병원간호부양성소 학생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실형을 받았으며, 1920년 4월 영친왕의 혼례로 인한 특사로 풀려나 1921년 정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이러한 정황을 보면 1919년 3월에는 당시 학제에 따라 최고 학년인 4학년 진입을 앞두고 있었을 것이다. 이를 역산하면 1916년 정신여학교에 입학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p.76 김순호가 투옥되어 당한 고초도 극히 어려웠지만, 그보다도 더 견딜 수 없는 수모는 그들이 처녀들을 끌어내어 옷을 다 벗기고, 많은 사람들 앞을 지나가게 한 것이었다. 이들은 독립운동과 그로 인한 투옥으로 세브 란스병원간호부양성소를 졸업하지 못하였다. --- p.117 처녀 나이 30으로 처녀 할머니라고 사람들이 걱정하였던 김순호는 당시 남자들도 글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던 재령에서 일본 유학을 했던 신여성이었다. 그렇지만 김순호는 검정 고무신에 검정 통치마,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신여성티를 안 내면서 약간 쉰 듯한 음성으로 성경을 재미있고 감동스럽게 이야기하는 전 도사였다. 김순호 전도사는 글자를 몰라 성경책을 펴놓고 읽으려 해도 읽을 수 없고, 찬송가를 펴놓고 부르려 해도 곡조도 가사도 막히는 어린 최봉춘, 아니 당시 재령의 어린 학생들에게 글자를 가르쳤다. --- p.153~154 1934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선교 사업에 착수한 김순호는 유창한 중국어 실력으로 외촌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했고 큰 환영을 받았다. 1934년 보고에서는 그가 방문한 교회들 중 두 곳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산둥 조선선교회를 통해 현지에서의 안전을 위한 보호 및 관리를 받으며 활동하였다. --- p.200 만저우에 부임한 김순호는 “유창한 중국어로 만주 부녀들을 모아서 도리반을 열고” 말씀과 글을 가르치니 “일반 사회에서나 부녀들 사이에서는 대호평을 받고 어디를 가든지 만인들 간에는 천사같이 대우”받았다고 한다. 1941년 총회의 만저우 선교 보고에 따르면 김순호는 만저우선교회가 관리하는 솽양교회, 솽허전(雙河鎭)교회, 쏘구깨교회를 1개월씩 순회하면서 부녀도리반을 설치하고 성경 도리(道理)와 음자모(音字母)를 가르쳐서 성경을 볼 수 있는 이가 증가하였으며, 불신자 가정도 심방하는 등 열심히 전도하고 있었다. 김순호 스스로도 개척해 가는 선교에 많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 p.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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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훈정동 종묘 만세시위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던 독립운동가
김순호는 1902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황해도는 한국 기독교의 요람이라 불렸을 정도로 당시 기독교의 성장세가 두드러진 곳이었다. 김순호는 재령 동부교회 장로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았으며, 재령에서 명신학교를 졸업한 후 1916년 서울 정신여학교에 입학했다. 3·1운동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세브란스병원간호부양성소에 입학해 간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해 12월 일어난 훈정동 종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투옥돼 극심한 고문과 수모를 겪었다. 6개월 언도를 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복역 중 영친왕의 혼례로 인한 특사로 풀려났다. 그 후 정신여학교에 복교해 졸업한 뒤 신천 경신학교와 성진 보신여학교 교원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전도사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한 김순호의 학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선교사로 임명받았음을 공지한 『기독신보』에는 ‘요코하마여자신학교’ 출신이라 하고, 몇몇 논문에서는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를 졸업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공동집필한 이방원 박사는 다양한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한 끝에 1924년 일본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에 입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졸업 후 4년간 재령 동부교회 전도사로 활동했던 김순호는 1931년 9월 중국 산둥 여성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선교사가 된 것이다. 그가 지도한 산둥의 부녀도리반은 문맹퇴치로 지역사회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중국 여성들에게도 신앙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도리반은 중국어와 설교에 뛰어났던 김순호가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중국 교계에서 “진꾸냥(중국인이 김순호 선교사를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꾸냥은 ‘처녀’라는 뜻)” 하면 모두 알 만큼 신앙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여전도회주일’을 제정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김순호는 그 뒤로도 헤이룽장성 무단장교회, 칭다오, 만주 지역에 파견되어 험난한 선교를 이어갔다. 하지만 만주국의 종교정책에 따라 본국과의 연결이 끊어짐에 따라 개인적 활동으로 전환했다. 해방 후 평양신학교 교수로 제자 양성 김순호는 해방 후에는 평양신학교 여성신학부에 재직하면서 제자들을 길러내는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그때 배운 제자들 중에 이연옥, 주선애, 이동선, 조순덕 등 한국 교회 여성 지도자들이 있다. 1948년 평양신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게 되자 제자 이연옥과 조순덕이 비밀리에 찾아가 월남하자고 했으나, 김순호는 이를 거절하고 신의주로 가서 전도사로 활동하다 한국전쟁 중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자 전동현 박사는 “한국 해외 선교의 역사에서 여성 선교사 김순호의 위상은 독보적”이라며 “이후 역사적 평가뿐 아니라 당대의 활약상을 보더라도 그의 굳건한 신앙, 사람을 감화시키는 목회자로서의 탁월한 면모는 남성 교역자들과 나란히 존중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중국 산동의 “진꾸냥”』을 쓴 정안덕 전 북경대학교 철학부 객좌교수는 “김순호 선교사님을 통해 뿌려진 그 알곡들이 힘찬 생명력을 갖고 끊임없이 자라, 온갖 열매 를 맺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시종 지울 수 없었다”며 “한 조선인 여성을 통해 복음의 향기가 시공을 초월하여 중국, 일본, 미주 지역에까지 멀리멀리 풍겨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