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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여권통문’의 정신을 계승한 여성들을 기억하며 5
머리글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 여권통문 11 1장 여성의 교육권을 실천한 여성 1. 한국 최초의 미국 학사학위 취득, 김란사 31 2. 한국 최초의 관립 한성고등여학교 교수, 윤정원 53 3. 한국 음악교육의 선구자, 김애식 66 2장 여성의 직업권을 실천한 여성 1. 최초의 한국 서양의학 의사, 김점동(박에스더) 83 2. 최초의 서양화가이며 여성운동가였던 나혜석 102 3. 한국 최초의 간호사, 이그레이스와 김마르다 116 4. 조선일보의 첫 여성기자, 최은희 133 3장 여성의 참정권을 실천한 여성 1. 안사람 의병단 조직한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 153 2.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최초 여성의원, 김마리아 168 3. 여성의 국정참여권, 국채보상운동에서 실천 185 맺음말 한국 여권선언문의 특징과 미래 전망 203 색인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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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통문에서 주장한 ‘교육받을 권리’는 여성들이 여학교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는 것뿐 아니라 외국에 유학을 가고,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권리도 포함하여 확장시킬 수 있었다. ‘직업을 가질 권리’는 여교사, 여교수, 여의사, 여류화가, 간호사뿐 아니라 여러 사회단체에서 회장, 부회장, 총무 등의 직함을 가지고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한 것도 포함된다. ‘정치에 참여할 권리’도 당시의 정세로 볼 때 의병활동을 포함하여 구국운동과 독립운동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을 포함한다. 이는 여권통문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다’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자각을 실천한 것이기 때문이다.
--- p.28 김애식은 국내 최초로 피아노와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이화여전의 음악선생님들에게 요구되었던 주일학교 음악감독 그리고 성가대 지휘자, 이외에도 미감리여선교회의 회원이자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교육위원회로 배속되어 있었다. 이화여전의 음악단체인 글리클럽을 이끄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글리클럽은 1930년대에는 전국 순회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글리클럽 활동을 통해 학교를 홍보하고 모금활동을 벌이는 기회를 활용하였으며 이것은 커다란 틀에서 보면 선교사업의 일환이며 여성기독교 운동이기도 했다. --- p.75 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3·1 만세 시위에 여성들이 참여한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당시 일본 도쿄에서 함께 활동했던 여자유학생친못회 회원들은 일본에서의 2·8독립선언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2월 17일 바로 귀국한 김마리아와 황에스더 등이 이화학당 지하실에서 비밀 화합을 갖고, 3·1운동에 참여할 방법을 논의하였다. --- p.109 당시 여기자들의 주된 업무는 학예면과 부인란 중심이었다. 여기자는 대체로 명사 및 화제의 인물 및 학교 탐방기 작성, 그리고 여성의 교육과 취업, 위생, 육아, 의식주 등 가정경영 관련 기사 작성, 학예기사의 집필, 원고청탁, 일본의 신문 잡지 통신에서 여성 관련 기사를 번역해 기사를 만드는 작업을 하거나 여성문제 등에 대한 간단한 시론이나 시평을 쓰는 것이 주였다. 그러나 최은희는 외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취재 활동을 나서기도 하였다. --- p.139 시아버지와 숙부 유인석, 남편이 연이어 망국의 한을 풀지도 못하고 사망하자 윤희순은 분노로 가슴을 태웠다. 이제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 아들들과 생계를 꾸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불구대천의 원수를 갚고 민족의 독립을 기어코 이룩하리라는 마음으로 세 아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노학당이 폐교된 이후 무순(撫順)의 포가둔으로 이주하고 아들 유돈상을 도와 만주·몽골·중원 등지의 중국인 동지들과 힘을 합쳐 한중연합단체인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이명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 p.162 여성단체 가운데 활동 영역이 컸던 몇 개 단체를 살펴보면, 서울에서는 대안동 국채보상부인회(대표 김규홍 전 판서 부인 신숙당), 부인감찬회(대표 이낙용 부실 김일당)을 들 수 있고, 대구에서는 국채보상탈환회, 부산에서는 감선의연회, 김포 국채보상의무소, 삼화항(지금의 진남포) 패물 폐지부인회, 창원항의 국채보상부인회, 선천의 선천의성회, 진주의 애국부인회, 제주의 삼도리부인회, 안성의 안성장기동부인회모집소, 안악군의 국채보상탈환회, 인천의 국미적성회 등을 들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끌어 갔던 서울의 국채보상부인회에서는 이준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 p.1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