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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한국 여의사의 탄생과 여명기
제1부.한국 근대 여성교육과 서양의학의 시작 1장.한국 근대 여성교육과 서양의학의 시작 1. 서양의학의 도래, 그리고 여성교육의 시작 2. 「여권통문」과 「여권통문의 날」 3. 한국 여성 교육 상황 2장. 조선 의녀(醫女)와 김점동 이후 여의사 1. 의녀(醫女)제도 2. 김점동을 전후한 우리나라의 서양의학 교육 3장. 김점동, 그녀의 후예들 1. 일제 강점기 시대 의학교육과 여의사들의 활동 2. 일본 유학에 의한 여자 의사교육 3. 국내 여자 의학교육과 여의사들의 활동제중원 의학교 / 경성의학전문학교 / 경성여자의학강습소 /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 검정고시합격자 4장. 활인(活人)! “지혜의 여성들이 대한민국을 구할 것이다.” 1. 1945년 해방이후 격동기 여성의학교육 2. 한국전쟁 후 안정기로 들어서며… 3. 활인(活人)! “지혜의 여성들이 대한민국을 구할 것이다.” 제2부. 12명의 초창기 여의사들 1장. 초기 벽안(碧眼)의 여의사들 1. 애니 엘러스 벙커(Annie J. Ellers Bunker, 1862-1938) 2.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 1851-1921) 3.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한국여자의사들의 어머니 2장. 초기 한국 여의사들 1. 김점동(박에스더, 1877-1910), 최초의 한국 서양의학 의사 2. 안수경(安壽敬, 1896-? 1947 이후) 3. 허영숙(許英肅, 1897-1975) 4. 정자영(鄭子英, 1896-1970) 5. 현덕신(玄德信, 1896-1963) 6. 송복신(宋福信, 1900-1994) 7. 길정희(吉貞姬, 1899-1990) 8. 유영준(劉英俊, 1890-? 1962 이후) 9. 한소제(韓少濟, 1899-1997) 3장. 맺음말: 남은 과제들 제3부. 김경실(金敬實) 어머니를 추억하며 1장. 어머니 김경실(1925.5.1.-2007.7.25.)의 삶 1. 어린시절과 꿈 2.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시절, 1942년 입학(5회 졸업) 3. 개정중앙병원의 안과 과장 4. 최고 실력의 성실한 여의사, 김안과 원장님 5. 김경실 어머니와 안봉한 아버지 6. 실질적 가장 역할 2장. 김경실 어머니에 대한 딸 안명옥의 추억 1. 집이었던 병원에서의 어머니 2. 단아한 모습과 창의성이 빛나는 어머니 3. 자식들에 대한 무한 사랑의 따뜻한 어머니 4. 모든 이에게 손을 활짝 펴신 사랑의 어머니 5. 가족 신앙의 뿌리이신 어머니 6. 여의사 자매 어머니 김경실과 이모 김경신 김경실(金敬實) 어머니 연보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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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많은 서적과 기록들을 접했고 의사로 살면서도 그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2012년 여권통문을 접한 이후 온몸을 감싸는 전율의 감동으로 나의 서재는 역사 장서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 p.5 1886년의 의사 스크랜튼의 어머니인 스크랜튼 여사가 설립한 ‘이화학당’과 1887년 엘러스 의료선교사가 설립한 ‘정동여학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외법에 의해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지 못하고 활동 범위가 가정 내에 한정되어 있던 여성들이 밖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 p.23 여권통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여성인권선언서다. ‘여권통문(女權通文)’, 여성인권선언문에는 명시적으로 ‘권리’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교육권, 노동권(경제활동 참여권, 직업권), 정치참여권(참정권,정치권) 등 크게 3가지 권리에 대한 주장을 담고 있다. --- p.26 1970년부터의 의대 입학생 성별분포를 살펴보면 여학생의 의대 입학 비율 증가 경향은 더 두드러진다. 다음 통계에서 나타나듯이 1998년까지는 의대의 여학생이 30%를 못 미치는 상황이었으나 여학생의 비율은 이미 20여 년간 30% 이상에 달하며 곧 전체 여의사의 비율은 총 의사수의 3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 p.44 조선초기에는 활인 철학에 입각, 양반 출신들이 의원진출이 두드러지고 특히 태종, 세종시대에는 백성들의 생명을 중시하는 의료제도를 매우 중하게 여기면서 의료제도 및 의학발달이 함께 이루어졌다. 세종시대에는 세종의 의학에 대한 특별한 관심에 힘입어 의녀제도가 발전하였다. --- p.50 1900년 10월 귀국 직후부터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바로 진료하기 시작한 김점동(박에스더)은 우리 국민 곁의 진정한 활인의사로 고국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하였다. 남녀를 막론하고 환자를 돌보는 첫 한국인 서양의사였다. --- p.58 근대 여의사들이 주로 담당했던 분야는 산부인과, 소아과였다. 여의사가 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사회 편견은 물론,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 어려움 역시 매우 컸다. 대단한 의지로 그녀들은 의료활동과 여성운동, 3·1 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 사회계몽운동에 맹렬한 열정으로 참가하였다. 근대 여의사들은 여성과 미래세대 교육, 여성운동의 최일선에 서서 전문가로서 인술을 펼치며 생명을 구하고 나아가 사회와 나라를 구하는 운동을 펼쳤다. --- p.77 로제타 홀은 1890년 25세 처녀로 당시 미국에서도 흔치 않았던 의료선교사로 조선을 찾은 뒤 43년간 조선 땅에 머물며 조선 여성들의 건강과 교육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한 여성이다. 그는 최초의 한국 여의사 배출을 포함하여 여의사 양성의 지평을 열어 ‘한국 여의사의 어머니’로 존경받고 있다. --- p.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