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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 독립운동의 동반자 21부부 1장. 독립운동을 ‘살린’ 부부독립운동가 1. 민족독립운동 기초를 닦으며 ‘가사’도 지은 김우락과 이상룡 2. 군자금을 모은 노영재와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김붕준 3. 한국독립운동에 뛰어든 중국여성 이숙진과 군사전문가 조성환 4. 서간도 세찬 바람에 맞서 항일한 허은과 이병화 5. 북간도, 블라디보스토크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한 이인순과 정창빈 2장.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에 참여한 부부독립운동가 1. 3.1운동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이애라와 이규갑 2.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숨은 일꾼 오건해와 신건식 3. 북간도·임시정부에서 함께한 이의순과 오영선 4.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한 방순희와 김관오 5. 임시정부와 광복군에서 활동한 김효숙과 송면수 6. 광복군 동지로 임시정부에서 함께한 김정숙과 고시복 3장. 전문직 여성의 부부독립운동 1. 여의사 현덕신과 기자 최원순의 국내항일운동 2. 간호사 최혜순과 임시정부의 주역 김철 3. 송죽회와 수양동우회 활동한 교사 박현숙과 김성업 4. 미주독립운동의 동반자, 교사 차경신과 사업가 박재형 4장. 의열투쟁에 함께 한 부부독립운동가 1. 의열 활동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한도신과 김예진 2. 독립운동 지원한 간호사 임수명과 독립군 명장 신팔균 3. 고려혁명군과 광복군에서 활동한 김마리아와 이범석 5장. 사회주의계열의 부부독립운동가 1. 3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정종명과 사회주의자 신철 2. 최초의 고공투쟁 노동운동가 강주룡과 소년의용군 최전빈 3. 일왕 암살을 기도한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 ■ 나가며 부록. 서훈받은 부부독립운동가(76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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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으며 다시 여성 독립운동을 생각해본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여성들이 항일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시기가 1919년 3.1운동에서부터였음은 이미 다 아는 바와 같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성들은 단독으로 또는 가족과 함께 항일민족운동 전선에 과감히 나섰고 기여한 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11월 현재 서훈자 총 18,664명 중 여성 676명으로 3.6% 정도에 그치고 있다.
--- p.13 고난의 이동을 마친 임시정부는 중국의 전시수도 충칭에 정착하여 1945년 광복 때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중략)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고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이숙진 역시 임시정부의 장정 시기에 조성환은 물론 임시정부 요인들을 챙기며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 pp.83-84 이인순은 남편 사업을 도우며 한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의 기독교계 삼일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아버지에게 배운 민족교육의 교육관을 현장에서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인순이 재직하던 삼일여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항일 독립운동의 산실로 평가될만한 학교다. --- pp.112-113 결혼 후 이애라와 이규갑 부부는 교육사업을 함께 펼쳤다. 3.1운동에 참여하며 백일도 안된 딸을 잃는 아픔을 견디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조국에 바친 이애라와 한성정부와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을 주도한 이규갑은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있었던 부부이다. --- p.121 이규갑은 1919년 7월 7일 개회한 제5회 임시의정원부터 충청도 의원으로 참여하였다. (중략) 이규갑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상해 대한적십자회에도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1920년 이후 이규갑은 만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 독립군을 양성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 p.132 오건해가 처음 독립운동 자료에 등장한 것은 1940년이다. 중국으로 망명한 지 14년 정도 지난 시점이며,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들이 상하이를 떠나 장정하다 1940년 충칭에 안착한 후였다. 오건해는 임시정부의 장정 시기에 신건식은 물론 임시정부 요인들을 챙기며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 p.142 김효숙은 임시정부가 거처를 옮기고 생활 근거지를 이동할 때마다 망명의 땅에서 우리 교포 자녀들을 위한 한글교사로 활동하였고, 여성광복군으로서 광복군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 p.206 김정숙은 1943년 4월 13일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1944년 3월 최형록(崔亨祿)과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서무·재무의 두 개 부(部)를 맡았으며,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김정숙은 1944년 5월 31일 임시정부 법무부 비서로 임명되어 1945년 2월 19일까지 근무하는 중에 1944년 6월 19일 법무부 총무과장으로 겸임 임명되었다. 이후 임시의정원 속기사, 김구의 개인비서 일도 때때로 했다. --- p.233 박현숙은 신홍식, 길선주 등과 같은 민족대표들과 비밀회합을 가지며 3.1운동 준비 과정에서부터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며 3월 1일 평양의 만세 시위에 만세 군중을 동원하고, 그들이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 운반하는 임무를 치밀하게 계획 실행에 옮겼다. --- p.290 차경신은 대한민국회, 부인향촌회 등 국내 항일여성단체와 계속 연락하면서 군자금 모금과 연락망 구축을 위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외에 상하이 청년을 중심으로 면려청년회를 조직하여 신앙을 통해 동포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자 하였다. --- p.306 대한통의부의 과감한 국내진입작전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신팔균의 탁월한 통솔력과 살신성인의 자세에 있었다. 그는 병사훈련을 통한 전력강화에 매진하는 한편, 모든 전투의 최전선에서 지휘관으로서의 용맹성을 입증하며 부대의 사기를 드높였다. --- p.356 그때 이범석은 적의 공격으로 불타는 사무실을 향해 비밀문서를 가져 나오기 위해 혼자 돌진해 들어가는 김마리아를 목격하고는 여군복의 김마리아가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독립투사라는 첫인상을 갖게 되었다. (중략) 이범석이 전력을 다해 강력한 요새 스빠스가야를 함락시킬 때 김마리아는 자원해서 간호요원으로 활동하였다. --- pp.369-370 정종명은 또한 공장의 여성노동자를 주목하여 사회주의 여성운동에 열성을 더해 갔다. (중략) 최초의 사회주의 사상의 여성단체 조선여성동우회를 서울에서 조직,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동회는 ‘여성의 해방과 단결’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회원 자격에 ‘본회의 목적을 달하고 의무에 복종할 만한 굳은 뜻이 있는 18세 이상의 조선여성으로 회원 2인 이상의 보천(保薦)과 집행위원의 결의를 얻어야 한다’고 했듯이 만만한 대중 단체는 아니었다. --- pp.396-397 마침내 일경의 간섭으로 공장에서 쫓겨난 강주룡은 을밀대(乙密台) 지붕으로 올라가 무산자의 단결과 노동생활의 참상을 호소하였다. 광목을 찢어 줄을 만들고 감아 올려 줄타기하듯 올라간 지상 12m 을밀대 지붕 위에 앉은 투사 강주룡은 평양의 새벽을 가르고 ‘여성 해방, 노동 해방’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 p.421 1926년 2월 26일 도쿄 대심원 법정에서 열린 공판에서 조선 치마저고리를 입고 출정해 자신을 ‘박문자’라고 밝힌 후미코야말로 일본인이지만 조선인으로서 불의에 맞서는 당당함을 한치의 에누리 없이 보여주고 있다. --- p.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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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6권은 부부 독립운동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21쌍의 독립운동을 서술한다. 첫째, 남편의 투쟁을 지탱하며 운동을 ‘살린’ 부부, 둘째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참여한 부부, 셋째 교사·의사·간호사 등 전문직 여성으로서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적극 전개한 부부, 넷째 의열투쟁에 참여한 부부, 다섯째 사회주의(및 아나키즘 포함) 계열에서 활동한 부부를 통해, 부부 독립운동이 지역·계층·이념·국적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음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기존 자료 조사와 연구 업적 분석, 서훈 여부 확인, 생존자·가족 구술 보완, 남녀 역할 및 활동의 구분 분석 등 체계적 서술 원칙을 바탕으로, 여성 독립운동의 구체적 행적을 최대한 복원했다.
이 책은 연구자만을 위한 연구서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기획된 대중서로서, 독립운동사의 그늘에 가려졌던 여성의 기여와 ‘부부 독립운동’의 새로운 면모를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나아가 여성 독립유공자 비율이 4% 미만에 머무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유공자 선정 기준의 개편과 보훈 기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과제도 함께 제기한다. 역사·여성·미래는 이번 총서 발간이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함께 싸운 역사’로 확장하고, 여성사 인프라 구축과 여성 독립운동의 공론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